‘사프란 혁명’때완 다른 분위기
일반 국민 중심의 대항 흐름에
민주진영 중심으로 존경심 저하
“지도자 역량 발휘되는지 의문”  

2007년 사프란 혁명당시 민주화 요구 시위에 앞장선 출가자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2007년 사프란 혁명당시 민주화 요구 시위에 앞장선 출가자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주황빛 가사를 수한 스님들이 앞서 민주화 시위에 나서 ‘사프란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2007년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그러나 지난 2021년 발생한 군부 쿠데타 이후 계속되는 민주화 운동에 출가자들의 참여가 미미하면서 미얀마 내에서 불교계에 대한 대중들의 실망이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월 11일 일본의 ‘토다이 신문 온라인’은 미얀마 불교 연구가인 쿠라모토 류스케 도쿄대 교수의 인터뷰를 특별 보도했다.

현재 미얀마 인구의 약 90%가 불교도이고 출가자는 약 50만명으로 인구의 약 1%에 해당한다. 버마족이 중심이 돼 최초 통일왕조인 바간 왕조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불교가 국교로 지정됐기에 국가구조가 불교를 전제로 형성됐다. 19세기 영국에 의한 식민지 지배의 영향으로 불교적인 구조는 붕괴됐지만, 미얀마는 불교를 중심으로 국가정체성을 성립했으며 현대에도 미얀마 사람들의 의식에 불교는 깊이 연관되어 있다.

쿠라모토 교수는 이러한 전제에서 “미얀마에서는 불교와 정치·민주화 운동이 역사적으로 항상 함께 해왔다”고 분석했다. 특히 2007년에 발생한 사프란 혁명의 경우 당시 군에 진압되는 일반 국민들의 항의를 대신하여 출가자들이 항의시위를 시작한 것에서 비롯됐다. 큰 특징으로는 출가자들이 국부 관계자로부터의 보시를 일체 거부하는 복발갈마(覆鉢磨)를 시행한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미얀마 불교교단은 군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항의를 불교적인 방법으로 표출, 일반대중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으면서 민주화 혁명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사프란 혁명 이후, 미얀마 내부에서 불교도 이외의 타종교도나 소수민족도 받아들여 국가를 형성하자는 진보주의적 성향이 강한 세력이 확대해 가면서, 보수적인 불교계를 중심으로 이대로는 미얀마가 불교국가가 아니게 된다는 위기감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쿠라모토 교수는 분석했다. 

미얀마의 출가자들에 의한 불교 내셔널리즘이 일어나면서 불교계를 중심으로 반이슬람, 반로힝야 운동이 이어졌다. 이 결과 샤프란 혁명의 기수였던 출가자들은 오히려 불교를 옹호했던 군부와 관계가 진전됐으며, 이후 미얀마에서 진행된 총선에서 일부 영향력이 강한 출가자들이 군부출신의 후보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특히 2021년 일어난 군부 쿠데타 이후, 사프란 혁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많은 출가자들이 군부 지지를 선언하면서 미얀마 대중들의 불교계에 대한 실망감이 고조됐다.

지난해 미얀마의 SNS에서 뜨거운 화제였던 한 익명의 투고는 “쿠데타 후, 미얀마의 테라와다 불교가 진정 신앙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코로나19와 같은 대재해를 앞두고 승려들의 지도자적 역량이 발휘되고 있는지 의문이 남으며, 오늘날 스님들의 행동은 자신들이 의지하는 사회에 대해 무책임한 것처럼 보인다”고 단언했다.

쿠라모토 교수는 “미얀마에선 지금껏 불교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금기였다”면서 “이번과 같은 일이 발생한 배경에는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 더 많은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출가자들에 대한 실망감이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또한 “사프란 혁명 때처럼 출가자가 국민 쪽에 서서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흐름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일반 국민이 중심이 되고 있다”면서 “물론 민주진영에서도 이전과 같이 출가자에 대한 존경은 가지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전통적인 불교와 미얀마 정치의 연관이 새롭게 정의되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했다.

박영빈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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