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스님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요. 잠시면 돼요.”

“그래요? 그럼 지금 할까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시작된 팔순 노보살님과의 대화.

“스님!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무슨 일이신데요?”

내용은 대강 이렇다. 남동생이 요양병원에 가게 됐는데 이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 괴로운 심정이고 잠도 편히 못 주무신다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시누이가 남동생을 요양원에서 나오게 하고 집에서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원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된다는 법이 있겠는가. 잠시 이야기를 들으며 노보살님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대개 듣는 과정은 비슷한데 괴로움을 알고 나면 서로 대화하면서 원인을 찾는다. 보통은 괴롭다고만 하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게 사람이다. 나는 보살님에게 물었다.

“그럼 아내도 아이들도 남동생 돌보는 것을 포기한 것 같네요. 거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요. 내가 생각해봐도 동생이 늘 아프다고 하고 의지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어서 힘들어요.”

“그러니 그 식구들이 긴 세월동안 견디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아마도 그래서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요?”

보살님은 그제야 동생이 안타깝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유연해지는 모습이었다. 부처님과 보살님도 누군가의 마음을 세 번 들어주는 대화 방식을 사용했듯이 나는 보살님에게 조언했다.

“지금 가장 힘들어할 분은 동생의 아내가 아닐까 싶어요. 동생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마시고 아내에게 전화해서 그분의 입장을 들어주세요. 세 번만 하시면 길이 보일 거예요.”

그날 법회를 마치고 저녁 즈음 보살님의 전화를 받았다.

“스님! 시누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입장이 이해돼요. 그동안 시누이가 부담스럽고 원망스러워서 말도 못 붙였는데 1시간 넘게 통화하고, 만나서 식사하기로 했어요. 제가 미처 시누이 마음을 살피지 못했네요.”

부산 미타선원장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하림 스님.

보살님에게서 오전 상담과 달리 많이 안정된 목소리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방이 불편하고 대화가 망설여지는 것은 나도 상대를 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화를 해보니 내 편이구나’라는 마음이 들 때 나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길이 보이게 된다. 노보살님은 이걸 바로 실행하셨으니 지혜롭고 용감하고 훌륭한 수행자시다.

마음이 힘들 때 부처님을 만나 진정되고 그런 사람들의 편이 되어 공감하고 위로해 새로운 용기 갖도록 돕는 일. “붓다가 인도하는 이 길은 근심·걱정·탄식으로부터 벗어나 열반으로 가는 길”이라고 〈대념처경〉 에서 말하고 있다. 노보살님에게 그 길을 일러준 것 같고 그로써 근심으로부터 벗어나신 것을 본 것 같아 보람 있는 하루였다.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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