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억압 넘어선 연대의 힘

〈밤에 피는 꽃〉 등 남장 여성 사극
남장 통한 겨룸으로 가부장제 극복

드라마 '밤에 피는 꽃' 포스터
드라마 '밤에 피는 꽃' 포스터

불교는 차별에 반대하는 종교다. 그렇기에 불교는 오래전부터 종교, 성 정체성, 이념 등에 의해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해왔고,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를 구성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실천행을 펼쳐왔다. 특히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은 2021년 10일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며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30㎞를 오체투지로 나아가기도 했다. 

심상치 않은 시대적 상황과 팍팍한 개인의 실존 사이에서 자신의 능력과 성 정체성 가운데 하나는 포기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남장 여자를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는 〈바람의 화원〉(2008년, SBS), 〈성균관 스캔들〉(2010, KBS) 이래 사극에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이 두 드라마와 같이 조선시대, 그것도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장 여자 이야기는 혜원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미인도〉(2008, 감독 전윤수)도 이 무렵에 개봉된 화제작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드라마 〈연인〉 이래 요즈음 사극은 병자호란 이후 시대가 사극에서 주무대가 되고 있다. 〈연인〉이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와 조선이라는 사회의 억압을 돌파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였다면 최근의 〈밤에 피는 꽃〉(2024, MBC)이나 〈세작, 매혹된 자들〉(2024, TVN)은 남장 여자를 등장시켜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에서 돌파해야 할 사회의 병폐들을 그려낸다.

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배경의 콘텐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걸까? 어떤 시대가 특정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그려내기에 그럴싸한 배경이 된다는 것은 시대적 고증에 정확하게 딱 들어맞는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되짚어 풀어내는 해석의 문제다. 그 시대에 이미 ‘인요(人妖, 남자로 변장한 여자나 여자로 행세하는 남자를 이르는 말)’라는 용어가 있었으니 남장 여자도 있었을 것이요, ‘계간’이니 ‘비역질’ 같은 말도 있었으니 분명 동성애도 그늘진 자리에서 손가락질 받고 있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콘텐츠 시장에서 상업영화나 드라마는 자본을 수십억씩 들여 만들어지는 위험 부담 상당한 상품이다. 그런 만큼 〈미인도〉나 〈바람의 화원〉이 실제의 혜원이나 단원, 정조 대의 조선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재현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문제 삼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어차피 영상에서 재현되거나 참조되는 그림들은 실제 작품들 그 자체가 원본이 있는 것이니 만큼 그림의 작품성이나 해석이 큰 문젯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림을 두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냈으며, 그 이야기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다. 

하필 두 작품 다 ‘혜원 신윤복이 사실은 여자였더라면’, 그래서 ‘단원 김홍도와 농밀한 성적 긴장 관계를 맺었더라면’이라는 가정에서 이야기를 꾸며내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21세기 관객에게 만들어내는 소통의 채널이 되도록 하는 장치였기 때문에. 그 시대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소환하는 장애가 있고, 그 장애를 넘는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남성으로 위장했을 때는 화원으로서 사회적 역할도 수행하고, 수제자로서 인간적 대우도 받고, 자식으로서 가문의 일원임을 인정도 받지만 위장을 벗고 여성성을 드러내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은 신윤복이 살았던 18세기 조선의 실상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여성이 사람대접을 받는 것은 오로지 명예남성으로 처신할 때뿐이라고 새록새록 일깨우고, 자기 안의 여성성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기다리는 것은 가혹한 처벌뿐이라는 엄혹한 현실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신윤복의 그림을 통해 영화 〈미인도〉가 보고 느끼고 그려낸 것, 그리고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이 아름다운 청춘들의 고뇌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시대가 여성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이다. 〈미인도〉에서는 혜원(김규리 분)의 입을 빌려 ‘흔들리고, 사랑하고, 유혹하는 모습이 아름답노라’고 속삭이며 명예남성으로서가 아니라 여성주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한다.

이렇게 그림으로 남은 신윤복의 미인도와 영화 〈미인도〉,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경유해서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이나 〈세작, 매혹된 자들〉의 여성 주인공들 역시 남장 여자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성균관 스캔들〉이나 〈미인도〉처럼 명예남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여성으로서 발휘할 수 없을 때 남장을 하고 마음껏 실력을 발현한다. 이들의 남장이 시청자들에게 지지를 받는 까닭은 이 여성들이 남장을 통해 드러내려는 능력과 가능성이 자신의 성장이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타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속환비를 마련하지 못해 억류된 여성들을 구하려는 것이 〈밤에 피는 꽃〉의 여화(이하늬)나 〈세작, 매혹된 자들〉의 희수(신세경)가 남장을 하게 된 계기다. 남성 중심 가부장제 국가가 희생양으로 삼은 여성들을 생과부인 여화나 정쟁으로 아슬아슬한 집안의 딸이 무술로든 바둑으로든 구해내려는 것이 남장의 시작이다.

이들의 무술과 바둑은 ‘겨루는 일’이다. 겨루고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여성이 절대로 드러내지 못하도록 했던 시대가 조선시대다. 남장 여자 사극은 긴장은 이 같은 시대적 배경에 바탕한다. 남성들이 정쟁과 명분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상황에서 억압당하는 여성들을 능력있는 여성이 구해내기 위해서는 남성의 의복을 걸쳐야 한다는 위장된 성 정체성, 그 위장이 발각되는 순간 어떤 목적으로 어떤 성과를 이뤘느냐와 상관없이 가혹하게 처벌되리라는 위기가 상존하고 있어서다. 

이들 남장 여성의 드라마는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현대사회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아스팔트 길 위에서 오체투지를 했던 것처럼 타인의 입장과 고통을 이해하며 연대하는 자리이타행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