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최주현
그림=최주현

갑진년(甲辰年) 구정도 지나고 본격적으로 청룡(靑龍)의 해에 들어섰다. 용은 12지(十二支)의 동물 가운데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은 뱀, 비늘은 잉어,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한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용을 마귀의 상징으로 언급하지만 동양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용을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 임금이 입는 옷은 곤룡포(茂龍袍), 임금이 앉는 의자는 용상(龍牀)이라 하여 왕권을 상징했다. 사찰에서도 용은 불법을 수호하거나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의 상징으로 불전의 기둥이나 외벽, 범종을 매다는 고리에 용을 그리거나 조각했다.

인류 최고의 지혜서라고 일컫는 주역(周易) 또한 중천건(重天乾)괘는 용으로서 괘사를 해설하고 있다. 주역 64괘의 모든 언어가 상징이지만 중천건괘와 중지곤(重地坤)괘는 상징 중의 상징이다. 특히 첫 번째, 중천건괘는 잠룡(潛龍), 현룡(見龍), 비룡(飛龍), 항룡(亢龍)으로서 용이 주체가 되어 세상 만물이 변화하는 원리와 인간이 올바르게 나아가는 길을 밝혀 준다. 용은 물속, 땅 위, 하늘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상의 생명체이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살 수 있고, 밝음 속에서도 살 수 있다. 작아질 수도 있고, 거대해질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며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다양한 용들 가운데 어떤 용의 모습일까? 
맨 처음, 잠룡(潛龍)은 물에 잠겨 있는 용이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형상이랄까. 이제 막 무엇인가를 시작했으니 날뛰지 말고 오직 힘을 기르면서 능력을 축적하라는 뜻이다. 무명과 미망으로 헤매던 내가 불법(佛法)에 귀의하여 조용히 공부하고 수행하는 모습이다.

두 번째는 현룡(見龍), 이제 뭍(田)으로 나와 용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느 정도 자기가 자기를 느끼는 단계이다. 슬며시 세상으로 나가보지만 아직 머리를 곧추세울 수는 없다. 현룡재전(見龍在田)이라. 몸을 드러낸 용이 밭에 있으니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가꿔야 한다. 즉 밭이란 농사를 짓는 땅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밭을 일컫는다. 탐진치(貪瞋癡)로 뒤덮인 마음의 밭을 갈고닦아 무심(無心)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5효)는 비룡(飛龍)이다. 드디어 용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내가 왕이 되고, 선생님이 되고 가장이 되었다.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는 위치에 올랐다. 하늘에 올랐다는 것은 견성(見性) 했다는 것이다. 자기의 본성을 깨달아 참 자기를 알게 되었다는 가르침이다.

마지막은 항룡(亢龍)이다. 더 나아갈 데가 없는 용이다. 내가 으뜸이라고 머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초월해서 영원을 살아간다. 참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내가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중천건괘는 용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아가는 팔정도(八正道)나 십우도(十牛圖)를 떠오르게 한다. 용의 해를 맞이하여 나는 어떤 용의 형상으로 수행하고 있을까?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