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면 전화가 울립니다. 며칠마다 오는 전화입니다. 받아야 하나 잠시 망설입니다. 그렇게 몇 번을 고민하다가 받습니다.

“스님, 제가 ○○를 가져다 놓았는데 잘 드시고요. 저는 스님에게 저를 맡기고 삽니다.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

연세가 많은 어르신의 당부입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주 이어집니다. 조금씩 오는 전화가 부담이 되어갑니다. ‘사랑 받는 자식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사랑을 받을 만큼 저는 그분을 위해 충분히 마음을 내어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매주 쌓여가는 사랑의 선물에 저의 그릇이 작아 그것을 다 담을 수 없어서 넘치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신 부처님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그래서 부처님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떠돌아다니라고 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사람은 오고가는 마음이 있으면 정을 느끼고 정이 커지면 이렇게 오고가는 마음의 무게가 점점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 짐이 커지면 서로가 힘겨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벗어보려고 노력해보기도 합니다.

그러자고 그 인연을 떠나자니 마냥 떠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전화하면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낮에는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반은 당신이 양보하고 반은 내가 양보합니다. 이렇게 하니 관계가 훨씬 편해졌습니다. 저는 고마움을 표하고 저의 불편함도 말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이해하고 노력합니다. 오늘도 조금 전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당신이 필요한 말만 하시고 전화를 끊어줍니다. 오히려 점점 관계하는 방식이 건강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10여 년 전에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절에서 키우려고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어려서 키워준 은사스님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와서 혹여 어른들의 눈치에 불편해 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 방에서 함께 자고 이곳에 정이 들도록 품에 안았습니다. 어느 날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에 절에 들어오는데 그 아이가 비를 맞으며 바깥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아팠습니다. “왜 방에 들어가 있지 않았어?”라고 물었더니 “그냥 기다렸어요”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하던 물기 젖은 눈망울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부산 미타선원장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하림 스님.

석 달 후에 부친이 다시 데리고 가긴 했지만 그 뒤로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정을 나눌 그릇이 너무 작다는 것을 느낍니다. 감당할 만큼 제가 튼튼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정이 없는 관계가 편합니다. 정이 많아서 정을 더 두려워합니다. 정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하고 어릴 적 경험이 없기 때문인 듯합니다. 아직도 두렵습니다. 전화가 두려웠던 것이 아니고 귀찮았던 것이 아니고 정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전화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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