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과학 관점서 존재란 정보
윤회도 정보의 상속일 뿐이다

“신라에서 태어난 조선 시대 장군입니다.” 
이순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챗GPT가 내놓은 그럴듯한 오답이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주는 문제해결 능력과 편의성 이면에는 진짜 같은 가짜 망상(Hallucination)이 도사린다. 생성형 AI 기술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저작권 문제, 윤리 문제 등 각종 사회 문제가 야기된다. 어디 인공지능뿐이랴!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 배설되는 가짜 영상, 가짜 뉴스들은 우리 삶을 심각하게 황폐화시키고 있다.  

가짜 문제는 깨달음에도 만연한다.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깨달음인지 팩트체크가 쉽지 않다. 필자는 몇 년 전 남인도 순례길에 티베트사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수만 명의 스님들이 공부하는 승원의 규모도 놀랍지만, 동자승을 비롯해 30년 가까이 공부하는 학승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몇 시간씩 진행되는 필수과목인 ‘딱샐’이라는 공부법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딱샐은 6세기 다르마끼르띠의 인명논리학을 기반으로 체계화된 공부법이다. 선문답과는 달리 붓다에 의해 확정된 논리에 의거한 대론식 교육법이다. 딱샐은 마치 싸움을 벌이는 듯한 토론 형식을 취하는데, 어느 한편이 스스로의 논리적 모순에 빠져 항복할 때까지 주장과 반론은 숨 쉴 겨를 없이 이어진다. 

의문이 생겨 물었다. 이치를 논리적으로 따질 때는 여유롭게 사유하며 차분히 답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뜻밖의 답이 온다. 대론은 생각할 틈 없이 몰아붙이는 속도전이란다. 정견 분석이 목적이지만, 더 중요한 포인트는 사유의 습관화란다. 정견을 뼛속 깊이 각인시킴으로써 더 이상 가짜의 노예로 살지 않으리라는 간절함이 엿보인다. 

자아에 관한 이들의 사유방식을 잠시 살펴보자. 먼저 불변하는 자아, 전체자적 자아, 자재한 자아, 그런 자아는 진짜가 아니란다. 연기적이지 않은 독립적 자아 또한 가짜란다.

온통 가짜라고 부정하는 듯하지만, 반대로 가짜 같은 진짜도 있단다. 업보, 생사, 윤회, 깨달음, 해탈은 물론 자아도 진짜란다. ‘이름뿐인 자아!’ 어이없지만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자아란다. 그것이 실재로 성립하기에 생사도, 업보도, 윤회도, 깨달음도, 해탈도 진짜란다.

한편 현대과학은 어이없어 보이는 이들의 논리에 힘을 실어준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님이 증명되고 있다. 양자역학 관점에서 대상과 관찰자 모두 정해진 바 없는 연기적 현상이다. 정보과학 관점에서 존재란 정보에 다름 아니며, 윤회는 정보의 상속일 뿐이다. 일체가 실체 없는 이름뿐이지만, 연기적 작용력은 명백히 실재한다는 결론이다. 이름하여 ‘무아’요, ‘공성’이다. 

중도의 가르침은 듣기 좋으라는 빈말이 아니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명확한 팩트체크를 통해 망상을 벗어나라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진짜를 가짜로, 가짜를 진짜로 여기는 망상이 양극단이다. 양극단만 제거하면 실상이다. 찬드라끼르띠의 〈입중론〉 구절로 마무리한다. ‘이름에 힘입어 멸제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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