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도 웃는 보현이가 1등 포교사”

양육 여력 없는 생모 친권포기
묘담 스님이 법적보호자 맡아
생후 한 달째부터 수안사 살아

선천성 장애로 수술만 수차례
힘든 상황에도 미소 잃지 않아
“보현이 존재가 곧 부처님 선물”

보현이의 법적보호자인 서울 미아동 수안사 주지 묘담 스님. 스님은 노숙자와 복지시설에 빵을 만들어 후원하는 ‘대행보현회 자비애빵’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보현이의 법적보호자인 서울 미아동 수안사 주지 묘담 스님. 스님은 노숙자와 복지시설에 빵을 만들어 후원하는 ‘대행보현회 자비애빵’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강북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요리교실을 체험한 7살 보현이. 활짝 핀 꽃처럼 환한 미소로 진우 스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보현이는 ‘미운 7살’이라는 비유를 무색하게 했다. 선천성 심장판막증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수술을 받고도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 이런 보현이의 ‘엄마’는 서울 미아동 수안사 주지 묘담 스님이다. 정확하게는 보현이의 법적보호자. “보현이는 생후 한 달째부터 수안사에서 살고 있다”는 묘담 스님의 짧은 설명에 그 인연을 듣고자 1월 10일 수안사를 찾았다.

보물이자 선물인 보현이
보현이의 생모는 묘담 스님도 일면식이 없는 재소자다. 교도소 수감 중에 아이를 낳았고, 생모가 미혼모였다는 사실도 친권이양을 위한 재판 도중에 알게 됐다. 생모가 불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친인척이 묘담 스님에게 태어날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아이는 ‘보현보살’의 이름을 갖고 수안사 가족이 됐다.

하지만 보현이는 선천적으로 건강이 좋지 못했다. 출산예정일을 한참 지나 세상에 나오면서 엄마 품보다 중환자실에서 먼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선천성 장애의 원인을 찾을 수도, 찾을 이유도 없지만 보현이는 아픈 곳이 너무 많았다. 손발부터 뇌, 장기, 구강까지 성한 곳이 없는 데다 신부전증도 앓았다. 그럼에도 묘담 스님에겐 보현이가 ‘보물’이다.

“저는 보현이의 겉모습에서 장애가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아요. 아이를 배려해서 하는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요. 물론 남들은 제 말을 이해 못하죠. 보현이는 부처님이 전해주신 선물처럼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으로 우리 곁에 왔어요.”

보현이 얘기를 이어가던 묘담 스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아픈 아이가 겪었을 고된 시간 때문이 아닌 선물처럼 인연을 맺게 된 감사함에서 차오른 눈물이다. 1981년 21살의 나이로 불문에 들어선 묘담 스님도 이런 인연은 예상하지 못했을 터. 스님에게 “출가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하셨을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보현이는 넷째예요.”

묘담 스님은 출가하고 1980년대 미아동 산골짜기 판잣집 법당 시절의 수안사에서부터 은사인 근성 스님과 업둥이들을 키웠다. 20대 초반의 묘담 스님은 국민학교에 다니던 첫째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첫째는 장성해 가정을 이뤄 벌써 쉰이 넘었다. 불혹을 넘긴 둘째는 진즉에 출가했고, 30대인 셋째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 뒤로 오랜 세월이 지나 보현이가 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묘하게도 묘담 스님이 가는 곳엔 동네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옛날 ‘방구차’ 쫓아 달리던 것처럼 아이들이 몰려왔다. 어디 아이들뿐인가. 주인 없는 개와 길고양이들도 스님 곁을 맴돌았다. 그렇기에 출가수행자로서 누군가의 엄마가 되리라고 다짐한 적은 없지만 엄마가 됐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스님에겐 양육이 순리였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보현이가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강북장애인복지관에서 함께한 요리교실. 활짝 웃는 보현이의 미소가 아름답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보현이가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강북장애인복지관에서 함께한 요리교실. 활짝 웃는 보현이의 미소가 아름답다.

아빠보살 엄마보살 그리고 약왕보살
묘담 스님은 보현이를 ‘영성이 아주 깊은 아이’라고 표현했다. 영락없는 꼬마인데도 마당에 핀 꽃을 두 손으로 받쳐 눈을 감고 이마를 갖다 대며 느끼는 보현이다. 건강이 좋지 못하고 ‘엄마’라는 말밖에 하지 못해 학교 대신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도 다른 동생들을 말없이 폭 안아주기도 한다고. 병원에서 주사바늘을 놓을 때도 우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은 보현이였다.

보현이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숨은 조력자들이 많다. 가장 가깝게는 보현이의 후견인 역할을 자처한 중년부부. 묘담 스님에겐 ‘아빠보살’ ‘엄마보살’로 통한다.

“보현이 양육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양육을 도와주시는 아빠보살, 엄마보살님이 계시거든요. 부부가 번갈아가면서 많은 걸 도와주시는데 그 덕에 보현이도 긍정적으로 자란 것 같습니다. 보현이가 아빠보살님을 너무 좋아해요.”

보현이가 수술을 받는 서울대병원에선 의료진 모두가 약왕보살이다.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의 수안사와 보현이의 상황을 전해들은 서울대병원이 보현이를 33번째 무료환자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 넘는 심사과정에서 여러 담당 의료진이 서류 작성까지 도와주며 이룬 성과다.

이 때문일까. 보현이는 병원에서 누구나 반기는 ‘슈퍼스타’가 됐다. 항상 웃는 얼굴로 의료진을 만나 분위기를 띄우니 당연한 결과. 게다가 가르치지도 않은 합장을 언제 보고 배웠는지, 매번 합장으로 인사하는 보현이의 모습에 이제는 의료진도 합장으로 화답한다. 보현이 수술에만 병원 16개 진료과가 연결돼 있으니 보현이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1등 포교사나 다름없다. 묘담 스님은 병원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매주 취약계층을 위해 만드는 ‘자비애빵’을 의료진에게도 나눠주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랑과 혜택을 쏟아주신 거죠. 그걸 다 갚을 수가 없어요.”

보현이 사진과 그 곁을 지키는 작은 보살님. 
보현이 사진과 그 곁을 지키는 작은 보살님. 

불행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들
묘담 스님은 누군가 보현이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할 때면 화를 내기보다는 상대방의 인식을 바꾸도록 노력했다. 다리에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해 보현이 다리가 처진다고 말한 사람에겐 “보현이가 전생에 수행한다고 가부좌만 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못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에겐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저 자신은 정상인양,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비정상인양 평가하는 사람들이 안쓰러웠다. 자신이 더 잘난 것 같이 말하면서도 정작 이것저것 불평하며 스스로를 불행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이었다.

“팔다리는 멀쩡하면서도 인간 이하인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 멀쩡하다면서 의기양양한 사람이 정작 제일 불행해요. 주어진 대로 감사하면서 살아갈 줄 알아야 불행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데 말이죠. 몸은 성치 않더라도 웃는 얼굴로 살아가는 보현이야말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삶’은 후두경부암 4기 판정을 받고 2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겪은 묘담 스님이 평생 지켜온 자세다. 한순간도 놀지 않고 매사에 최선을 다한 은사스님을 보며 닮고자 한 노력이기도 하다. 수술을 앞두고도 ‘부처님이 드디어 푹 쉴 시간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는 스님 말씀에 절로 숙연해졌다.

인터뷰 도중 보현이의 물건이 한가득인 책장에서 루돌프처럼 꾸민 보현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집에서 만든 것 같은 사진은 자그마한 보살님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보현이도 모든 어려움 다 극복하고 보현보살처럼 행원의 상징으로 거듭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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