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의 응어리를 복 짓는 기회로

얼마 전 상담을 나누었던 선희(가명) 씨는 여러 병이 겹쳐 15년간을 침대에 누워 살아야만 했다. 오랜 지병으로 명절에 시댁에 가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땐 정성을 담아 전이랑 음식 몇 가지를 만들어 남편 편에 보내곤 했다. 몇 년 전에는 몸의 컨디션이 좋아져서 시댁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차례를 마친 뒤 잠시 쉬고 있는데, 시어머님께서 멸치볶음을 해서 시누이에게 서둘러 주시는 것을 보고 말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시누이를 위해 챙겨주시는 엄마의 마음은 백분 이해되지만, 마음 한구석에 속상함이 불쑥 올라왔다.

“저는 그때 밥도 못해 먹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간단한 콩나물 무침도 반찬가게에서 사다 먹을 때였으니까요. 저는 안 보이고 딸만 보이셨는지, 그 모습이 서운함을 넘어 너무 밉고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어요. 친정엄마 같았으면 ‘엄마, 나도 해줘요’라고 했을 텐데, 아무 말 못하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어요. 이제는 어머님도 연로하셔서 많이 아프셔요. 저의 몸 상태가 아직 썩 좋진 않지만 그래도 어머님께 며느리의 도리는 해야 한다는 맘이 큽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님께 전화가 왔어요.”

“얘야, 잘 되던 전기밥솥이 안 된다. 쌀이 나빠서 그런가 했더니 김이 옆으로 새는 거 같아. 이걸 어떡하지?”

“바로 옆에 사는 딸도 있는데, 딸에게는 얘기 못하시고 며느리에게 하셔요. 그때 제 마음 속에 명절의 사소했던 서운함이 불쑥 올라왔어요. ‘내가 10여 년을 아파서 누워 있을 동안 멸치볶음 한 번을 안 해주시고 딸에게만 해주시더니, 정작 아쉬울 때는 나한테 전화를 하시네!’라고요. ‘어머니, 저 그때 무척 속상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서로 마음만 상할 걸 알기에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어요. 아팠던 저에게도 마음을 좀 나눠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몇 년이 지나도 그때의 서운함이 저를 괴롭히네요. 숨어 있다가 가끔씩 튀어나오는 이 마음을 어떻게 털어낼까요?”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부처님께서 늘 법문해 주시듯이 내 앞에 벌어진 건 열매요, 결과다. 열매가 익기 위해서는 반드시 씨앗이 필요하다. 사과 씨앗 없이 사과가 열리는 법이 없듯이 멸치볶음이라는 사건도 그냥 일어난 게 아니다. 그것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내 앞에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나를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불자가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다. 상황을 당장 바꾸기는 어려우니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내 마음을 바꾸는 게 지름길이다. 그날 선희 씨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님이 밥솥이 안 되는 걸 왜 선희 님께 얘기하실까요? 지금은 멸치볶음에만 꽂혀서 ‘나한테는 멸치볶음 한 번을 안 해주시더니 안 되는 거 있을 때만 나를 찾으시나?’ 하면서 서운하신 건데요. 마음의 뿌리가 단단하게 내려져 있으면 ‘참 감사합니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께는 며느리가 최고구나. 며느리가 제일 든든하신 거구나. 어머니께 나는 참 필요한 존재고 소중한 존재구나. 나는 신뢰를 받고 있구나’ 하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게 돼요. 벌어지는 상황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되죠.

‘아니 왜 나한테만 이런 걸 해달라는 거야?’가 ‘저에게 복 지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바뀌게 됩니다. 시부모님께 반찬을 해드리는 건 어른을 봉양하면서 복 지을 기회잖아요. 그런데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안 좋은 마음으로 멸치를 볶았다면, 그 멸치에 과연 좋은 에너지가 깃들까요? 드시는 분께도 안 좋은 마음이 전달될 테니 나는 진정한 복을 짓는 게 아니겠죠. 재료를 고르는 일부터 다듬고 조리할 때까지 ‘이걸 드시고 편안하시기를, 건강해지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정성껏 음식을 만들 때 진정한 공양의 공덕이 됩니다.

그동안 서운한 마음만을 담아둔 채 나도 모르게 거친 결로 음식을 했다면, 이제는 마음을 한번 바꿔보는 거예요.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선 복을 지어야 해요. 그러니 ‘어머님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복 짓게 도와주시는구나. 어려울 때 쓰라고 마치 통장에 돈을 넣어주시는 것과 같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벌어져 있는 상황에 마음을 치우지지 말고,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 내 마음이 긍정의 마음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연습을 해보는 거죠. 겉모습은 ‘멸치볶음’이었고 ‘시어머님’이셨지만 그 모두는 내 마음을 정화시키라고 오는 신호일 뿐이에요. 은혜를 잊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나’의 아만심을 보게 도와주는 고마운 인연입니다. 그러니 겉모습에 속지 말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오직 내 마음을 항복받을 뿐입니다.

김영애 문사수법회 법사
김영애 문사수법회 법사

한탑 스님의 <금강경법문> 114쪽에 나오는 말씀을 새겨봅니다.

“모든 사람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므로 겉모습에 속지 않고 보면, 세상사람 모두를 부처님으로 보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을 부처님으로 보는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내 마음을 항복받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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