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있었던 역사를 만나다

‘지구민주주의’ 주장했던 정치인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
위인 만들기보다 역사에 집중해

다큐 영화 〈길 위에 김대중〉 한 장면.
다큐 영화 〈길 위에 김대중〉 한 장면.

지구가 아프다.

물-땅과 물과 대기도 두루 아프고, 심-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앞날도 막막한 지금의 지구는 물심양면으로 아프다. 영하 40도 아래로 추위가 덮친 날씨가 계속되는 북유럽, 새해 첫날부터 지진으로 무너진 일본, 날마다 전쟁으로 죽고 죽이는 나라들, 그 기후위기와 전쟁의 여파로 무너지는 세계 경제와 평화.
사람들은 가끔 사라지려는 것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데서 생명이 지속되리라는 위로를 찾는다. 더 이상 자연에서는 볼 수 없고 외교적 잇속 따져가며 동물원에서나 전시되는 판다에 대한 열광도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친애하는 지구에게-소중한 지구와의 공존을 위해 마음으로 전하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라는 달라이라마의 간절한 발원을 페트릭 맥도웰이 그림으로 펼쳐낸 책을 보면 달라이라마가 어린 시절에는 자연에서 살았던 대왕판다가 달라이라마를 찾아온다. 대왕판다와 달라이라마는 인간의 무지와 탐욕, 지구상의 생명체에 대한 존중심 부족으로 사라진 뭇 동물들을 애도하며 함께 나선다. 인간을 발전시키는 열쇠와 지구라는 행성을 지키기 위한 열쇠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위대한 자비’에 있다고 호소한다.

모든 생명체가 ‘지구라는 하나의 작은 집을 공유하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행동하는 혁명의 바탕이라고, 그러니 인간은 지구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지만 보호할 힘도 가지고 있으니 자비를 실천하자고 한다.

이렇게 지구 차원의 공존과 평화는 만물이 촘촘히 맺은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혼자 덜 먹고, 덜 쓰고, 참선하는 발심만으로 이룰 일이 아니다. 달라이라마가 ‘자비의 혁명’이라고까지 한 까닭은 인간의 활동이 미치는 어디든 두루 미쳐야 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이 정치적이고 국제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이런 전환에 대한 비전을 내세운 정치인이 있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던 1994년, 미국외교협회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에서 ‘지구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펼친 바 있다.  

민주주의란 서양에서 발전시키고 동양에 전파한 것이라던 서양중심적 주장에 대해 “우리는 모든 인간이 자기발전의 권리를 보장받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과 무생물까지도 건전한 존재의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의 풍부한 민주주의적인 철학과 전통은 지구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우리의 운명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냥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민주주의 사상의 원천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유학의 민본과 평천하사상, 불교의 불성사상, 동학의 인내천과 사인여천 사상들이 이뤄온 전통이 바로 지금의 생태위기 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지구민주주의’의 사상적 원천이라고 근거를 들어 뜻을 밝혔다.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쓴 이후 치뤘던 제15대 대선에서 역대 대통령 후보로서는 처음으로 선거 공약에 ‘불교 공약’을 담았고, 그 공약 가운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건립비용 지원, 팔만대장경 한글화 및 전산화 지원 등 예산 지원과 전통사찰보존법, 문화재보호법 등 불교관련법 제·개정을 실제로 추진했다.

또한 2002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금강산 신계사를 비롯한 북한 불교문화재의 복원사업과 인도적 차원의 지원사업으로 불교통일운동을 지원해서 2003년 제7회 만해대상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 정치사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대중에게는 특히 가혹했고 그만큼 정치인에게도 가혹했다. 그 가운데서도 고 김대중 대통령만큼 정치인으로서 고난과 혐오, 열광과 영예를 평생 짊어진 인물도 없을 것이다. 권력자들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감옥이든 집이든 갇힌 세월도 길고, 나라 밖에 몰려나거나 자기 집 담장 안에 갇힌 세월도 길었다. 그런데도 결국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까지 받게 된 것은 개인으로서의 ‘김대중’이 아니라 ‘김대중이라는 정치인과 맺은 모든 인연들’이 맺은 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은 딱 그런 관점을 펼쳐보인다. 이 영화를 만든 민환기 감독이 “절절한 감정은 최대한 거둬냈다. 역사적인 사실만 두고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위인으로 만드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괜찮은 작품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듯이 이 영화는 위인전도, 영웅 신화도 아니다. 고인이 이미 태어난 지 100년이 된 데다 정당들이 선거 한 번 겪을 때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사람이며 정체성도 많이 바뀌었으니 특정 정당을 옹호하는 선전물도 아닐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목포의 청년 사업가가 한국전쟁 당시 우익이라며 인민군에게 끌려간 것을 시작으로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대통령 선거에서 세 번이나 낙선했다. 그러면서도 IMF로 나라가 쑥대밭이 된 시기에 대중의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고,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이산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게 했다.

사실 살면서 납치, 투옥, 망명, 사형선고, 남북대화, 대통령 취임, 노벨 평화상 등 그이가 겪은 사건들로만 보자면 영화가 만들어져도 벌써 몇 편이 나왔어야 할 만큼 딱 극적인 인물에 대한 한국영화가 여태 없었던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가 겪은 일들이 벌어졌던 시대에 대한 영화들은 그토록 많은데. ‘불가촉’ 또는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영화에서 그를 배제한다는 것은 인연이 있는 모든 대중과 사건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10.26도, 12.12도, 5.18도 다 영화가 되었는데. 그러니 그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제외됐던 대중들을 복권시키는 작업이다. 대중들이 쌓아온 업력을 더 이상 외면하지도, 무시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입니다〉, 〈노회찬 6411〉과 같이 대중에게 사랑받았으나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 정치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최낙용 프로듀서가 〈노회찬 6411〉을 연출했던 민환기 감독과 다시 함께 한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시대와 역사, 그 안에서 정치라는 고리로 인연의 업을 짓는 모든 사람들이다. 그 고리가 ‘김대중’이고, 고리를 개인사에서 공동의 역사로 이끄는 것이 그가 걸은 ‘길’이고, 영화가 그 ‘길’ 위에서 복원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 안에서 타오르던 대중의 열망이다.

두 편으로 기획된 〈길 위에 김대중〉은 아직 길의 가운데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영광과 명예의 순간도 이 영화에는 담기지 않았다. 〈서울의 봄〉과 마찬가지로 ‘역사가 스포’인 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새로운 것을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취합한 영상 자료가 20테라바이트, 시간으로 치면 1700시간 분량의 자료를 5개월에 걸쳐 12시간씩 검토했다는 제작진은 역사의 주름을 들춰내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와 장면들을 보여준다. 

시위, 진압, 학살과 같은 엄청난 사건들을 관통하면서도 영화는 흥분하지 않고, 선동하지도 않는다. 그런 중심을 잡는 데는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더불어 처음부터 끝까지 길잡이를 맡은 장현성 배우의 나레이션이 큰 몫을 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