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옳다’는 생각, 모든 폭력의 원인
맹목적 믿음, 타인 그름 만들기 때문
타인의 악함은 자신의 투사임을 알라

유식학에 따르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우리의 의식이 반연하여 만들어낸 경계이다. 이 말은 세계에 대한 객관적이고 올바른 인식이 우리에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곤혹스러운 사실을 들춰낸다. 우리는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지만, 유식학이 말하는 진실은 이 믿음이 자기기만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나는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세상사람들이 뭐라 해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나름 멋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언제나 변명거리가 준비돼 있다. 그것은 사소하거나 불가피했거나 아니면 우연히 그랬다고. 그러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아마도 자기기만이 그저 혼자 자기도취에 빠진 것이라면 세상은 그처럼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혼란과 나 스스로 겪는 고통이 모두 ‘나는 올바르다’는 생각 때문이라면 어떤가? 나는 올바르고 정당한데 어떻게 혼란의 주범이냐고 곧장 반박할 것이다.

사실 나는 올바르다는 생각은 세상의 혼란 정도가 아니라 모든 폭력의 원인이다. 나의 올바름에 대한 믿음은 타인의 그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올바름을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올바르지 않은 세상, 악인이 사는 세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는가? 타인의 악이 바로 나 자신의 투사임을. 적어도 유식학에 따른다면 세계는 나의 의식이 반연한 결과니까. 

내가 올바르다는 생각은 나의 내면에도 폭력적으로 작용한다. 이상적인 나를 위해 나는 내 속에 있는 결여를 발견하고야 말기 때문이다. 그 결여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는 가짜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도 속이고 세상도 속인다. 

‘나는 올바르다’는 생각은 사적인 관계에서도 관계를 왜곡시키지만 공론의 장에서 작용할 때 그 위험은 증폭된다. 그 중에서도 정치와 종교는 ‘나는 올바르다’는 생각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장이다. 생각과 의례를 공유하는 집단 안에서 나의 올바름에 대한 생각은 강화된다. 정치적 주장과 종교적 신념으로 결속된 집단들은 너무나 손쉽게 또 공공연하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악마화한다.

4차산업혁명으로 세계는 더 연결되고 더 좁아졌다고 하지만 세계는 더 고립되고 배타적인 장소로 변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을 용케 찾아내는 알고리즘 덕분에 세계는 ‘좋아요’로 넘쳐나고 나의 올바름을 확정해주는 정보들만 오늘도 클릭수를 노리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 나와 다른 생각을 전해주는 정보들은 차단되고 나의 세계는 더욱더 강화된다. 그 누구도 정보의 망, ‘좋아요’로 강화된 경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새해 벽두부터 뒤숭숭하다. 일본 대지진과 야당 지도자에 대한 살해 시도는 새해 초부터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지난해 말, 유명 배우의 자살 또한 그러했다. 타인을 악마화하지 않으면 나의 올바름이 사라지는 세상이다. 유식학에 따른다면, AI 알고리즘 세계 역시 나의 투사이다. 악마화된 세상, 내가 만들어냈고 스스로를 속이는 그 세상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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