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부터 야당 대표 피습 ‘충격’
범인 신념 실체는 ‘증오’에 기반
당신의 분노, 합당한지 돌아보라

갑진년 새해가 밝아진 지 열흘 남짓이 흘렀다. 탐진치 삼독에 물든 중생의 삶이 고되지 않은 적이 있겠냐만, 희망과 설렘으로 잠시의 고됨을 내려놓아도 좋았을 새해 벽두를 정말 당혹스러운 사건으로 시작해야 했다. 야당 대표가 백주대로에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다쳤고,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건강을 회복해 1월 10일 퇴원했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여야 정치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정당화돼서는 안 되고 용납할 수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피습 사건이 속보로 전해지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여야 정치권과 언론은 사건이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 미칠 영향에만 신경을 곤두세웠고, 진영을 막론하고 온갖 유언비어와 루머가 난무했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야당 대표가 대통령이 돼 나라가 좌파 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을 위해 그랬다고 한다. 1년 가까이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확신에 찬 행동이었고, 그래서 TV 속 범인의 모습은 당당해 보였다. 우리 사회는 군부독재를 넘어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졌는데, 다시 야만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씁쓸했다. 

한편, 수사 결과가 발표된 날 병원에서 퇴원하는 야당 대표는 증오의 정치,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 같은 정치를 끝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범인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앞세웠고, 그 신념의 실체는 좌와 우를 편 가르고 어느 한쪽을 용납할 수 없는 대립과 증오였다. 

작금의 한국 사회에 바로 증오의 신념은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 사회학적 개념으로 집합의식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사실이다. 범인처럼 흉기를 휘두르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이가 상대방을 해치는 구업과 의업을 짓고 있다. 비단 정치의 영역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모든 영역에서 증오와 폭력으로 서로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증오와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법구경>에는 폭력으로써 폭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씀이 있다. 폭력의 악순환을 경계하는 구절도 여럿 있다. <맛지마니까야>에서는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올바른 사유를 제시한다. 또한 <법구경>에는 증오는 오로지 자비에 의해 가라앉혀지며, 자비만이 칼과 화살을 벗어날 수 있다는 가르침도 담겨 있다. 

폭력이 나쁘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증오나 혐오가 옳지 않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폭력과 증오를 마주하고 성찰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이제 마음을 차분히 하고 내 안의 증오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타인의 증오나 분노가 나를 얽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느끼는 증오와 분노가 합당한가 등을 돌이켜 보자. 증오의 신념이라는 상을 허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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