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에세이 3연작 보경 스님
이번엔 선종사 에세이로 돌아와
고대 인도부터 한국 선불교까지
장구한 3000년 선종 역사 조명

에세이 선종사/ 보경 지음/불광출판사 펴냄/ 3만원
에세이 선종사/ 보경 지음/불광출판사 펴냄/ 3만원

선(禪). 사전에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불교수행법’이라고 정의된다. 사전적 정의로는 한 줄로 돼 있지만, 인류사에 가장 오래된 마음 수행법을 규정하고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화두, 공안, 선문답 등 한문으로 된 전문 용어는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선은 어렵다’고.

어떠한 분야 개념을 정리할 때 가장 먼저 파악하면 좋은 것은 역사다. 우리가 불교 공부를 시작할 때, 부처님 일대기와 불교사를 먼저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불교도 마찬가지다. 대체 선불교는 어떻게 태동했고, 어떠한 사상적·수행적 변천 과정을 겪었는지를 알게 되고 이해한다면, 선에 대한 접근이 쉬워질 것이다. 

송광사 탑전에서 주석하며 글을 쓰고, 법문하고 있는 보경 스님이 내놓은 〈에세이 선종사〉는 선의 역사를 파악하는 좋은 불교 대중서다.   

이 책은 부드러운 에세이 형식으로 선불교의 역사를 풀어내며 우리를 선의 세계로 안내한다. 인도의 베다와 우파니샤드 사상에서 출발하여 초기불교와 부파불교를 거쳐 중국불교, 한국불교에 이르는 장구한 사유의 파노라마를 생생하고 명료한 한 줄기 선종사로 재구성해 낸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과연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실참까지 해볼 수 있겠는가. 불교사는 차치하고라도 전문적으로 수행하거나 참선하는 출가자 외에도 참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선종사를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중략) 만약 책 한 권으로 불교와 선종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 가능할 수만 있다면 불교와 선종의 공부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좋은 일이기도 하고, 이는 나의 오랜 갈망이기도 하다.  -서문 중에서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고양이를 읽는 시간〉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 고양이 에세이 3연작으로 한국불교 최고의 에세이스트라는 찬사를 받은 보경 스님은 사실 누구보다 깊이 선 수행과 불교 공부에 천착해 온 수행자이자 학자이다. 갓 스물이 되던 해에 출가한 이후로 지금까지 40여 년을 선에 매달려 왔다. 선방에서 참선하면서 송광사 800년 산문을 연구하기도 했다. 

금정총림 범어사 금어선원서 정진 중인 스님들. 〈현대불교신문 자료사진〉
금정총림 범어사 금어선원서 정진 중인 스님들. 〈현대불교신문 자료사진〉

서문에 밝힌 대로 선종사를 한 권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보경 스님의 갈망이자 문제의식이었다. ‘입을 열면 그르친다’는 말이 강령처럼 받들어지던 시절, 참선하면서 든 여러 가지 의문을 해소하고자 많은 자료를 살펴보았지만 선명하게 와 닿는 책이 없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보경 스님은 훗날 선 공부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선에 대한 보경 스님의 탐구가 특별한 것은, 선의 안팎을 넘나들며 주변의 여러 사유를 두루 살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부인으로서의 태도가 책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선불교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가치관에 맞게 각색하고 변용한 불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불교만을 다루지 않는다. ‘베다-우파니샤드-아비달마-중관-유식’으로 이어지는 고대인도의 사상사 흐름을 먼저 이야기한다. 이는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의 근본이 무엇이며, 중국인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알아야 중국불교의 탄생과 변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중국의 고대사상과 문화, 유교와 도교, 역경사, 불성사, 선종사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마침내 한국선불교의 전개로 마무리된다.

보경 스님의 말 대로 지정학적으로는 인도에서 중국, 한국으로 이어지는 붓다로드(BUDDHA-ROAD)고, 중국에 전래돼 고려 지눌까지 전해지기까지 3000여 년의 타임로드(TIME-ROAD)를 조망해낸 것이다. 

보경 스님은 이 책에 대해 “나의 출가 40년의 정리이자 결정판”이라고 자평했다. 이는 “공부는 반드시 빛을 발할 때가 있다는 믿음이 이날까지 나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는 스님의 원력이 기반이 됐기에 가능했다. 

〈에세이 선종사〉에는 만 권 독서와 불교의 인문학적 해석을 평생의 일로 삼아 정진해 온 보경 스님만의 연륜이 녹아 있다. 

책 속으로 

불교가 인도전통의 베다사상을 배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동일한 토양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시간이 달라졌다고 하여 훈습된 사상이 소멸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베다의 전통은 브라흐만과 아트만을 기본골격으로 하여 시설되고 이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견지한다. 하지만 불교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침묵하고 대신 경험적이고 현상적인 영역을 일체법이라 하여 오온·십이처·십팔계·십이연기 등의 기본교설을 세웠다. 이는 고정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인연화합하는 연기적인 관점에서 존재와 우주의 법칙을 설명하는 입장이었다. -30~31쪽

〈반야심경〉은 서두에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괴로움에서 건넜다”라고 시작한다. 오온이 공한 것을 보는 것이 큰 깨달음이다. 우리가 하는 공부나 수행이 결국은 오온이 공한 것임을 알기 위해서다. 나라는 존재가 오온의 화합물이며 그 다섯 요소 하나하나도 다시 여러 요소로 분해되어 설명된다. 오온은 불교초기교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다섯 가지 기본범주이다. - 60쪽

불경의 번역 자체가 격의의 과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언어구조나 문화가 전혀 다른 두 언어의 개념을 일치시키는 해석은 결코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역경을 알려면 격의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과정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고역 시기에 그런 번역의 틀을 제공한 것은 현학(玄學)이다. 현학은 노자나 장자가 말하는 무를 세계의 근원이자 도의 근본으로 여기는 사상이다. - 240쪽
선종은 명심견성 돈오성불을 주창한다. 따라서 성불하기 위해서는 굳이 경서에 의지하지 않고도 참선수행을 통해 단번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이 당 중기를 넘어서면서 팽배해졌다. 간명하고 쉬우면 따라하기 좋고, 따라하기 좋으면 오래간다. 그래서 선종은 좌복 하나만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갓 스물에 출가한 나 자신도 그랬다. 인간사 좌복 하나면 그대로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여한이 없으리란 마음이었다. - 349쪽

중국선은 인도에서 유래하였지만 인도선과는 다르다. 중국선의 많은 용어와 방법 및 내용은 인도에서 왔지만 모두 중국사회의 역사적 조건과 전통사상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새롭게 변화발전하였다. 선종 역시 인도불교가 중국화된 산물이지만 인도에서 선종과 같은 방식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선은 중국불교와 중국문화의 주요 구성부분으로 자리 잡아 점점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 373쪽

개인적으로 선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방법론이 분명하여 참선의 실체화가 가능한 것에 주목하고 싶다. 즉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라는 간화선의 정의는 선을 다음 단계로 끌어갔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현재 선이 간화선이고 간화선이 선으로 인식되고 있다. 명상이나 기도를 한마디로 응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선은 화두를 보임으로써 생물화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화두 자체가 뭘 가능하게 하여 중요한 게 아니라 선에 대해 간명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 민족이 존속하려면 신화부터 만들어내듯이 선종의 간화선에서는 화두가 신화고 예술이고 종교인 것이다. - 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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