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 바로 밑 산만이 ‘남산’ 칭호
130여 불상, 100여 불탑 등 상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돼
20년 전 용장사지 답사하며 감화
2007년 열암곡 마애불 발견 ‘기적’
마애불 바로세우기는 민족의 숙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 2007년 열암곡 정비사업 중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은 현재 입불이 추진되고 있다.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 2007년 열암곡 정비사업 중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은 현재 입불이 추진되고 있다.

혹시 아실까 싶다. 전 세계 유일한 산 전체가 불상이고 불탑이고 절터였던 경주 남산의 신비로움을. 산 전체에 하나하나 셀 수 없을 만큼 곳곳의 바위마다 돌을 다듬어 불상을 모시고 불탑을 세운 곳은 전 세계 불교국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경주 남산은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를 대표하는 산 전체가 불국정토인 사찰이다. 경주 남산의 입구 사방팔방이 일주문이고 구릉지가 사천왕문이며 불상과 마애불 앞은 해탈문이다. 무엇보다 경주 남산 모든 곳은 부처님이 계신 금당이다. 지금부터 신라인이 조성한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주 남산의 부처님 세상 불국정토의 품에 안겨보도록 하겠다.

경주 남산 곳곳은 부처님 계신 ‘금당’
경주의 왕성인 반월성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남천을 지나면 바로 경주 남산을 만난다. 

참고로 남산은 한 나라에 단 한 곳만 존재한다. 어느 나라건 간에 수도 왕성의 바로 밑에 있는 산만이 남산이란 이름을 얻기 때문이다. 경주 남산은 2000년 전부터 신라인들이 자리 잡았던 도성과 왕성을 향해 남쪽에서 길게 뻗어 있다.

경주 남산은 작은 산이다. 바위산이지만 그리 험하지 않고 멀리서 보면 아담하다. 남북으로 8㎞ 정도의 길이이고 동서 4㎞로 동서가 짧다. 높이도 그리 높지 않다. 동서로 등산할 예정으로 마음먹고 오르면 반나절이면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이다. 경주 남산은 두 개의 중심 봉우리를 갖고 있는데 북쪽의 금오산은 높이가 468m이고 남쪽의 고위산은 높이가 494m이다. 면적은 약 30㎢다. 남산의 모습은 위에서 보면 부처님 시무외인의 수인인 오른손 손바닥을 펼친 형상인 타원형이다. 

경주 남산에는 64개의 계곡이 있다. 절터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중 60개의 계곡을 따라 295곳에 절터가 있다. 옛날에는 먹을 물이 필요하기에 계곡의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 절을 조성하기에 계곡을 따라 절터가 보이는 것이다. 옛날에는 골짜기가 남산을 오르내리는 길의 역할을 했을 것이니 남산에서 골짜기를 따라 절과 불상과 석탑이 모셔진 것은 당연할 것이다.

산악의 비탈면의 평평한 곳마다 전각을 짓거나 했었을 것이기에 모여 있는 곳을 하나로 묶으면 150여 곳의 절터가 확인된다. ‘사단법인 경주 남산연구소’에서 편집 발간한 〈경주 남산〉을 보면 불상은 130여 구가 있으며 100여기의 불탑과 22기의 석등 그리고 19점의 연화대가 있다. 또한 왕릉도 13곳이 있으며 산성은 4곳이 있다. 

전체의 문화유적을 보면 국보 1점, 보물 14점, 사적 15개소 등이 있다. 무엇보다 2000년 12월에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돼 그 가치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 경주 남산의 국립공원 지정은 1968년이며 사적으로 1985년 지정된 이후 국가 차원의 관리와 보존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 왔다. 무엇보다 뜻깊은 일은 2000년에 들어서며 경주 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20여 년 전, 경주 남산을 오른 적이 있다. 신라 답사의 기회가 있었는데 경주 남산이 포함돼 있었다. 신라 문화유적을 답사하는 기회인데 ‘왜 산을 타지’ 싶었다. 서남산에서 오르는 코스였는데 처음 들어서자마자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삼존불상이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조금 오르니 부처님 머리가 사라진 ‘냉곡 석조여래좌상’은 ‘아 이것이 뭐지’ 싶은 마음을 들게 만들었다. 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산의 입구에 1.6m 높이의 돌을 깎아 만들 불상이 있나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50여 년 전에 앞 계곡에서 발견돼 지금의 자리에 모신 것이라고 전한다. ‘냉곡 석조여래좌상’ 옆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어여쁜 관세음보살님이 반겨주신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입상’이다. 그런데 답사를 이끌고 해설해주시는 분이 입술에 빨강의 안료가 묻어 있다고 했다. 신라시대엔 야외의 불상에 칠을 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금만 오르면 만나는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상’은 선으로 불상을 표현한 마애불상인데 신라시대엔 모두 채색이 돼 있었다고 한다. 오호라. 신라시대엔 야외의 바위를 깎아 만든 불상에는 채색을 했었다고! 얼마나 화려했을까 상상이 안 됐다. 이때부터 신라의 불교에 빠지기 시작한 것 같다. 신라 불교 뿐만이 아니라 경주 남산에 나 자신을 매료시킨 곳이 있다. 바로 금오산 정산 부근 해발 400m에 있는 용장사 터의 삼층석탑과 삼륜으로 좌대를 만든 석조여래좌상이다.

신라 불교의 위대함을 용장사 터의 삼층석탑과 석조불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보통 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다. 그런데 용장사 터의 삼층석탑은 남산을 1층 기단으로 놓고 서 있었다. 경주 남산이 용장사 터 삼층석탑이었던 것이다. 또한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풍경은 일품이었다. 자연이 곧 석탑이었고 석탑이 곧 자연이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삼륜의 용장사 터 석조불상은 세상을 굳어보고 있었다. 경주 남산을 깔고 앉아 계신 부처님께서 중생을 굽어 살펴주고 계셨다. 경주 남산이 나의 마음에 깃발을 꽂았던 시간이었다. 봉우리에 우뚝 솟은 바위는 신라와 경주 시내를 굽어보고 있기에 봉우리에 우뚝 속은 바위에 불상과 불탑을 모셨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신라시대 부처님께 대자대비의 가피로 신라와 민중을 지켜주기를 기원한 신심과 기원의 정신이 구현된 것임을 알려준다. 지금도 남산의 바위에는 통일신라 시절 바위를 자르던 흔적들이 무수히 남아있다.

이후 매년 몇 번이고 경주 남산을 오르내리며 불국정토의 세상을 향해 깃발을 흩날리고 다니던 2007년이었다. 열암곡에서 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불상이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우연히 열암곡에서 2005년 열암곡 석불좌상의 불두가 발견됐다. 이후 2007년 보수 복원작업이 끝난 석불좌상을 모시고 있었다. 이때 사지의 출입구를 찾던 중 엎드려 있는 열암곡 마애불입상을 원형 그대로 발견한 것이다. 우연이란 이름의 기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2024년 지금까지 부처님은 땅을 향해 35도의 경사로 거꾸로 누워 계신다. 무엇보다 부처님이 나투셨는데 복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큰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반대의 목소리는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순례하고 참배해야 할 경주 남산의 부처님인 성보 문화재 열암곡 마애석불입상을 일반 문화재의 보존이란 시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주 남산의 불보살상과 불교 유적은 문화재로서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닌 불교 신앙의 결정체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 서기 800년 중반 경주에는 약 100만 명의 인구가 있었다. 이러한 신라의 수도 경주의 남산은 부처님 세상 불국정토가 이뤄져 있었다.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600년대부터 800년 후반까지 300여 년간 신라의 사람들은 곳곳에 처처의 바위에 부처님을 모셨다. 곳곳에 처처의 봉우리에 부처님의 몸인 불탑을 모셨다. 이 시기 신라의 사부대중은 경주 남산의 부처님 세상 불국정토를 이루었으며 참배를 하며 지극한 기원을 올렸을 것이다. 

2024년 열암곡에는 부처님이 누워계신다. 육중한 몸 어디 하나 상하지 않고 조성된 그 모습 그대로 누워계신다. 신라시대 조성된 그 모습 그대로 누워서 오늘 우리 불자 모두가 부처님 세상 불국정토를 일으켜 세우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열암곡 부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이유는 열암곡 부처님이 일어나실 때 경주 남산의 부처님 세상 불국정토가 일어나고 한국불교 신앙이 다시 일어날 것임을 몸소 알려주기 위함은 아닐까.

과연 우리는 경주 남산의 불국토 세상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것을 안다면 누워계신 열암곡 부처님을 일으켜 세우는 것에 누구 한 명도 반대하지 않고 지금은 바로 서 계실 것이다. 한번 생각하고 살펴보자. 모든 한국의 불자들이 지키고 가꿔야 할 경주 남산의 부처님 세상을 무관심으로 버려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반성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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