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수행, ‘시민보살’로 나아가는 정진의 길”

2004년부터 월정사 주지 6번 연임
명상·박물관 마을 조성, 사격 ‘일신’
출가학교, 각종 문화축전 브랜드化 
“시대에 부응하는 콘텐츠 고민해야”

월정사 ‘명상 치유 문화 성지’ 목표
몸·마음 수련… 통합 명상법 구상
수행 궁극엔 보살도 실천 바탕돼야
“시민보살 양성, 문명전환의 시작”

중독사회엔 몰입있는 ‘명상’이 해법
선거의 해, “不爭하라” 단박한 조언
2024년 불자들 위한 경구 ‘화중생연’
“희망 잃지 말고 연꽃을 피워내시길”

정념 스님은…만화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0년 5월 월정사에서 일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85년 9월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0년 5월 월정사 수선안거 이래 58안거를 성만했다. 조계종 제11~13대 중앙종회의원과 재단법인 나눔의집 이사, 지구촌공생회 이사,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고, 2004년부터 월정사 주지를 맡고 있다.
정념 스님은…만화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0년 5월 월정사에서 일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85년 9월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0년 5월 월정사 수선안거 이래 58안거를 성만했다. 조계종 제11~13대 중앙종회의원과 재단법인 나눔의집 이사, 지구촌공생회 이사,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고, 2004년부터 월정사 주지를 맡고 있다.

다섯 봉우리가 연꽃무늬를 만든다는 강원도 오대산은 불교 문수신앙의 성지다. 〈삼국유사〉에는 자장 율사가 중국 우타이산(五臺山)에서 수행하던 중 신라에도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가 있으니 찾아보라는 계시를 받았고, 그 성지가 강원도 오대산이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동대 만월산(滿月山)에는 1만 관세음보살, 남대 기린산(麒麟山)에는 8대 보살과 1만 지장보살, 서대 장령산(長嶺山)에는 무량수여래(아미타불)와 1만 대세지보살, 북대 상왕산(象王山)에는 석가여래와 500 아라한, 중앙 풍로산(風爐山)에는 비로자나불과 1만 문수보살이 항상 머문다. 

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에는 산이 피워낸 고찰, 월정사(조계종 제4교구본사)가 있다. 천년을 이어온 불교 성지는 이젠 ‘역사·인문학의 성지’이자 ‘명상 치유 문화의 성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개관하며 ‘화룡점정’을 한 박물관 마을에는 월정사성보박물관, 한강시원지체험관 등 3곳의 박물관이 모여있다. 

박물관 마을 맞은편에는 국내 최고 명상 힐링 공간으로 평가받는 ‘오대산 자연명상마을(Odaesan Meditation Village, 이하 옴뷔)’이 있다. 2018년 개관한 옴뷔는 100실 규모의 거대 명상마을로 참선뿐만 아니라 선요가, 경청명상, 걷기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월정사 사격의 일신을 이룬 주인공이 월정사 주지 퇴우 정념 스님이다. 정념 스님은 지난해 12월 12일 월정사 대법륜전에서 열린 산중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주지후보에 선출됐다. 이에 따라 정념 스님은 2004년 첫 주지 소임을 맡은 이래 6번째 연임을 기록하게 됐다. 

전법·포교, 시대 눈높이 맞춰야 
강원도 오대산이 하얀 옷으로 바꿔 입은 지난해 12월 19일 월정사에서 정념 스님을 만났다. 먼저, 통상적인 질문 “6번째 연임에 대한 소감”을 던졌다. 스님은 “6번을 연임하다보니 특별한 소감은 없다”고 밝히면서도 “종법 상 마지막 임기다 보니 잘 마무리하려 한다. 시대 흐름에 부응할 수 있는 불사와 차세대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산중에 형성될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밑그림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완성이라는 것이 어디 있겠냐”며 오로지 “쉼 없이 혁신해야 되고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념 스님이 말한 ‘혁신’은 ‘시대에 부응하는 불교’가 되는 것이고, 스님은 20년 동안 월정사 주지로 살아가며 이를 스스로 증명했다. 

실제, 정념 스님은 2004년 주지 부임 이후 다양한 문화 포교 프로그램과 수행 프로그램들을 쏟아내듯 대중에게 선보였다. 정념 스님이 20년 전 선보인 단기출가학교는 월정사를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학교에 입학했다. 그간 3500명이 출가학교에 입학해 수행했으며, 이중 350명은 사문(沙門)의 길로 나아갔다. 

2004년 시작한 오대산문화축전은 이제 평창 지역을 대표하는 가을 문화 축제가 됐다. 월정사부터 상원사까지 10㎞에 달하는 선재길을 복원하고 이를 걷는 ‘오대산 선재길 걷기명상축제’와 세계청소년명상축제, 탄허 대종사 휘호대회 등도 월정사를 대표하는 문화·수행 프로그램이다. 정념 스님이 보인 혁신의 여정들은 앞서 기술한 ‘역사·인문학 성지’ ‘명상 치유 문화 성지’로서의 인프라 구축·확대로 이어졌다. 

“전통적인 불교 성지, 기도처의 개념들이 현대사회에서는 ‘명상 치유’ 중심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월정사는 ‘명상 치유 문화의 성지’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 명상 문화를 선도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개발·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대산이 보유한 전통·자연 유산을 활용한 문화축전 등의 행사들도 치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이뤄진 출가학교, 문화축전, 옴뷔 등은 모두 월정사의 자랑스러운 브랜드가 됐습니다.”

월정사가 보이는 혁신의 특징에는 ‘유연함’도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대응이었다. 2020년 개설된 ‘오대산 월정사’ 유튜브 채널은 초기부터 스트리밍을 활용한 일일 신행프로그램을 기획했고, 매일 실시간으로 사시불공, 금강경 기도, 명상프로그램을 내보내며 불자들과 소통했다. 이 같은 시도는 사찰 유튜브 중 최초로 구독자 8만 명을 달성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이는 조계사와 봉은사 등 대형 도심 사찰도 이루지 못한 구독자 수치다. 2021년 월정사는 한국 사찰 최초로 자체 메타버스 명상 플랫폼을 개발해 ‘세계청소년명상축전’에서 선보였다.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이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현재에 안주하거나 과도하게 미래에 집착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통찰하면서 어떻게 나아갈지를 모색해야 합니다. 이 같은 방향 모색에는 유연한 사고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죠. 우리 불교는 가상공간으로 이어질 라이프스타일에 어떻게 적응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전법과 포교도 이 공간에서 이뤄질 것이고요. 유튜브나 메타버스는 이제 시작입니다.”

“명상, 사회적 실천과 함께 가야”
월정사를 ‘명상 치유 문화의 성지’로 가꾸고 있는 정념 스님은 불교를 이미지화 할 수 있는 현대적 키워드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그 키워드로 ‘명상수행’을 꼽았다. 

“불교는 교리, 수행, 의례 등 여러 방면의 가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현대사회의 대중에게 전하려면 조금 가지를 치고 심플해져야 해요. 무엇보다 현학적으로 이해되는 불교를 대중에게 명료하게 전하려면 ‘명상수행’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총무원장 진우 스님께서 불교 명상수행 대중화를 위해 종단 표준 명상수행법을 개발하는 것은 고무적이고 의미가 있는 불사입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불교의 명상수행이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방안임을 강조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도박·마약·알코올 중독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수단으로써 불교의 명상수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한데, 이는 명상수행으로 가능합니다. 불교 명상에서 지향하는 집중과 통찰은 병리적 중독을 해소하는 기재로써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념 스님이 월정사에서 개발·보급하는 명상수행 프로그램은 월정사만의 색깔이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월정사 선명상요가학교다. 이곳에서 대중은 선명상과 요가를 동시에 수행하며 몸과 마음을 수련할 수 있다. 

“과거에는 명상이 마음 치유나 깨달음의 관점에서 이야기돼 왔지만, 현대에는 뇌과학, 생물학적 관점에서 명상에 대한 해석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제 명상도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님’을 표방하는 ‘통합명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몸에 나타나는 여러 기능들이 대뇌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 장은 소화기관이면서 신경세포가 1억개에 이릅니다. 인간의 행복과 애정을 결정짓는 도파민의 50%와 세로토닌의 90%가 장에서 합성된다고 해요. 그래서 ‘몸과 마음을 어떻게 하면 함께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통합명상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불교도 이 같은 트렌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 월정사의 명상은 ‘사회적 실천’과도 연결된다. 이는 월정사가 진행하는 ‘환경’ 주제 명상프로그램들에서 잘 나타난다. 월정사는 ESG경영 등 생태환경에 대한 전환적 사고와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 마련을 위해 ‘오대산 ESG명상 챌린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뭇 생명과 함께 조금 느린 하루’를 주제로 ‘그린 명상대화’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이 같은 프로그램들은 “불교의 명상 수행은 궁극에는 보살도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정념 스님의 수행관이 바탕돼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모든 만상이 다 관계 지어지고 연결돼 있구나’를 아신 것이고, 그 속에서 모든 대상은 무아(無我)임을 명료히 깨달으셨습니다. 이 같은 가르침에 기반한 불교 명상은 자기 마음 하나 평온하고 치유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과 연결된 존재임을 알게 합니다. 그렇기에 불교 명상은 이젠 실천 운동으로 연결돼야 합니다. 그리고 대중이 수행을 통해 기후위기나 평화의 문제를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시민보살’로 거듭나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대승보살도를 실현하는 시민보살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 명상의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됩니다.”

일을 도모해도 다투지 않는다
사회 현안에 대한 불교적 지혜도 궁금했다. 2024년은 총선이 있는 선거의 해이다. 어느 해보다도 혼란하고 시끄러울 것은 자명하다. 정념 스님의 말을 빌리면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은 향상됐는데, 정작 정치계가 그 수준을 따라가고 있지 못하고 있어서”다.

2024년 갑진년을 맞는 정치인들에게 정념 스님은 〈도덕경〉의 경구인 ‘성인의 도는 일을 도모하지만 다투지 않는다(聖人之道 爲而不爭)’를 전했다. 이 중 ‘부쟁’은 무위자연과 평화 등이 응축되어 있는 〈도덕경〉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다. 자연은 무위하기에 다투지 않듯 인간사도 욕심을 비우면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이 다르더라도 설득과 합의를 통해 컨센서스(Consensus, 어떤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 간의 일치된 의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상당한 부분도 합의에 의한 컨센서스를 만들어가는 길입니다. ‘부쟁’을 통한 컨센서스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작용하려면 정치인들의 과도한 권력욕이 없어야겠죠. 권력에 대한 집착은 정치를 파행으로 모는 일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이는 다시 정치 불신으로 이어지겠죠. 정치인들이 2024년에는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정말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의 순기능이 작동할 수 있도록 ‘부쟁’의 정치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번뇌 속에서 연꽃을 피어내라
인터뷰 말미, 정념 스님에게 불자들이 1년 동안 품고 살았으면 하는 경구 한 가지를 일러달라고 부탁드렸다. 이에 스님은 ‘화중생연(火中生蓮)’을 불자들에게 제시했다. ‘화중생연’은 당나라 고승 영가 현각 선사의 ‘증도가’에 ‘재욕행선지견력 화중생연불종괴(在欲行禪知見力 火中生蓮終不壞, 욕망 속에서 참선하는 지견의 힘이여 불 속에서 연꽃 피니 끝내 시들지 않는다)’라는 구절에서 기인한 경구다. 

“‘화중생연’은 ‘불꽃 속에서 연꽃을 피운다’는 의미입니다. 욕망이 분출되는 세상사 속에서 우리가 수행하면서 얻는 힘이야말로 불꽃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무너지거나 시들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처럼 현대사회가 무한한 경쟁과 욕망 속에 있어도 그 속에서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면, 영원히 시들지 않는 연꽃을 피워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정념 스님은 서산 대사가 저술한 〈선가귀감〉의 선시 한 구절도 소개했다. 

“서산 대사의 선시 중에 ‘올연무사좌 춘래초자청(兀然無事坐 春來草自靑)’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올연히 일 없이 앉았더니 봄이 오고 풀은 저절로 푸르러졌다’는 의미입니다. 소한과 대한을 거치며 추위가 절정에 달으면 이제 입춘이 됩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것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말고 일상을 잘 영위하십시오. 어두운 터널 끝에는 밝은 입구가 있듯이 모든 일에는 끝이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삼계화택(三界火宅)’의 비유가 있다. ‘세상이 불타는 집과 같다’는 의미다. 번뇌의 불길은 오늘도 중생 세계를 한 시도 쉬지 않고 불태우고 있다. 정념 스님의 말처럼 번뇌의 불길을 잠재우는 힘은 삼독심에 끄달리지 않고 마음자리를 지키는 정진에 있을 것이다. 그 정진의 끝에는 보살도를 실현하는 불교적 인간상 ‘시민보살’이 있다.

“부단한 정진으로 ‘시민보살’이라는 연꽃으로 화현하라.” 21세기 오대산인(五臺山人)이 우리에게 전하는 당부이자 화두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