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법의 역군…브랜드가 된 佛光
“콘텐츠 봐야할 이유 만드는 게 화두”

2024년 11월에 창간 50주년을 맞이하는 월간 불광 . 출판사를 거쳐 미디어사로 거듭난 불광미디어는 ‘콘텐츠로 사람을 연결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사명으로 운영된다. 류지호 대표(사진 왼쪽 첫 번째)와 불광미디어 임직원들이 한 해 동안 펴낸 불광을 각각 손에 들었다.
2024년 11월에 창간 50주년을 맞이하는 월간 불광 . 출판사를 거쳐 미디어사로 거듭난 불광미디어는 ‘콘텐츠로 사람을 연결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사명으로 운영된다. 류지호 대표(사진 왼쪽 첫 번째)와 불광미디어 임직원들이 한 해 동안 펴낸 불광을 각각 손에 들었다.

이에 本誌(본지) <佛光(불광)>은 감히 우리 역사와 생활 속에 부처님의 威光(위광)을 전달하는 使命(사명)을 自擔(자담)하고 나선다. 이로써 조국의 발전이 기초할 정신적 基盤(기반)과 動力(동력)을 공여하기를 기도하며 前進(전진)하는 민족사의 方向(방향)과 底力(저력)을 부여함에 보탬이 되기를 기약한다.

-1974년 11월 월간 <불광> 창간호 창간사
발행인 광덕 스님 ‘순수불교선언’ 중에서-

무려 반세기 전이다. 월간 <불광>이 사바세계에 뛰어든 날. 50년 전 광덕 스님은 월간 <불광>을 창간하며 그 존재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세상에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사명을 당당히 짊어지겠다고. 스스로의 전법선언이자 마주할 이들을 일깨우는 사자후였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24년, <불광>은 여전하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의 의식구조도 바뀌었지만 <불광> 제1의 정신인 ‘전법’은 그대로다. 흑백사진이 컬러로, 작은 판형이 커졌을 뿐 창간 당시의 존재 이유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전성기에는 문서포교 선구자로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최근엔 종이매체의 위기라는 질곡을 견뎌낸 지천명(知天命)의 <불광>. 그리고 잡지와 단행본을 내던 불광출판사를 넘어 이제는 하나의 미디어사로 변모한 불광미디어. ‘불광’의 반세기 역사를 듣기 위해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위치한 불광미디어 사무실에서 류지호 대표를 만났다.

광덕 스님이 남긴 창간정신
1974년 11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50주년을 맞이한 <불광>. 대한민국 잡지 역사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 소회부터 물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2007년 2월부터 주간을 맡아 일을 시작해 17년째 불광미디어를 이끄는 류 대표에게서 기념비적인 일에 대한 감격보다는 리더로서 짊어진 사명감이 느껴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사회 의식구조나 환경은 정말 어마어마한 변화를 이뤘습니다. 그럼에도 전법의 소명은 끝없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늘 고민했습니다. 지금은 잘하고 있는 건지, 미래 지속가능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로서 역할과 전망은 어떤지 창간정신을 돌아보며 점검하고 있습니다.”

월간 불광 창간호인 1974년 11월호.
월간 불광 창간호인 1974년 11월호.

불광미디어의 시작은 월간 <불광>이다. 광덕 스님이 창간했다는 사실도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 하지만 1975년 불광법회 창립보다도 잡지 발간이 한 해 빨랐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많다. 물론 둘 다 같은 시기에 추진되긴 했지만 그만큼 잡지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달은 광덕 스님이었다. 무엇이 스님을 움직이게 했을까.

“사찰과 신도 숫자도 중요하지만 광덕 스님께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정신·사상적인 면을 강조하셨습니다. 불광운동이 무엇이고 무엇을 지향하느냐를 분명히 하고 싶으셔서 잡지를 만드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컬러TV조차 없던 시절에 신문과 잡지는 큰 영향력을 미치는 매체였으니까요. 스님의 탁월한 혜안을 느낍니다.”

불광출판사는 월간 <불광> 발행과 함께 <육조단경> <지장보살경> 등의 경전, 불광선문총서 시리즈를 발간하며 조금씩 출판사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 인문서를 기획하기 위한 도서출판 한강수 브랜드를 등록하고, 이동식·이중표 교수 등 저명학자의 책 발간을 비롯해 신진 필자를 발굴하며 불교출판을 선도하는 매체로 거듭났다.

2000년대에는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 등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의 저서, 존 카밧진과 잭 콘필드 등 명상 지도자의 책을 펴내며 종합출판사로 성장했다. 매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우수교양도서에 빼놓지 않고 출판물 이름을 올렸고, 불교출판문화협회의 ‘올해의 불서 10’에 꼽히는 단골손님이 됐다. 학술서들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명상이나 수행 이야기는 한국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 선정됐다. ‘불광’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불교를 넘어 일반사회에서도 이른바 ‘먹히는’ 브랜드가 됐다.

불광미디어 사무실에서 단행본과 월간지 제작이 한창이다.

‘종이매체 위기’에 미디어社 전환
출판물의 호황을 누리던 불광출판사는 2010년대 뉴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며 등장한 ‘종이매체 위기론’을 실감했다. 2016년 개최한 <불광> 500호 발간 기념 세미나에선 부정적인 지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불교출판의 마이너스 성장률, 법륜·혜민 스님 등 저명인사에 의존하는 저자 쏠림 현상까지. 게다가 스마트폰의 혁신과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SNS) 확대로 종이매체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점차 낮아졌다.

분야를 막론한 여러 잡지의 폐간도 이어졌다. 가장 큰 반향을 불러왔던 건 2019년 재정난으로 인한 월간 <샘터>의 무기한 휴간 검토였다. <불광>의 선배 격으로 1970년 창간한 <샘터>가 50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사실상 폐간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많은 이들이 우려했다. 다행히 보도 이후 후원이 늘어나 발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월간지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런 종이매체의 위기는 <불광>도 피해갈 수 없었다. 더구나 불교라는 전문분야를 다루는 입장에선 보다 혹독한 환경이었다. 월간 <법시> <법륜> 등 20세기를 함께한 동종업계 잡지 대부분은 이보다 훨씬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중의 눈은 높아지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선 더 많은 투자가 필요했다.

불광미디어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2만5000명을 넘어섰다.

결국 불광출판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민 끝에 2016년 주식회사 불광미디어로 전환했다. 사실상 개인사업자에서 공신력을 갖춘 법인체로 변화를 도모한 것. 이와 동시에 종이매체에 국한하지 않고 전자책, 오디오북, 강연, 여행, 영상 등 다방면의 활동을 전개했다. 회사 수익은 새로운 파트에 과감히 투자해 현재 20여 명의 직원을 둔 미디어사가 됐다.

그 결과 출판이 주력사업임에도 불광미디어 유튜브 채널은 어느덧 구독자 12만5000명을 넘어섰다. 저자 인터뷰, 인문학 강연, 명상 등을 주제로 한 수준 높은 영상이 밑바탕이 됐다.

특히 2019년 여름, 일본 불매운동 ‘노 재팬(No Japan)’이 확산되던 당시 경제학자인 최배근 건국대 교수의 ‘한일 경제전쟁 긴급진단’ 영상은 5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라 월간 <불광> 500호를 기념해 시작한 유명 연사들의 강연 ‘붓다 빅 퀘스천’은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을 얻어 올해부터 월간 행사로 발전했다.

“종이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줄어들어도 본질을 생각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뜻은 시대변화를 막론하고 존재합니다. 그런 기회를 만들어드리는 게 불광미디어의 역할 중 하나죠. 기존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콘텐츠를 봐야할 이유를 만드는 일, 그게 늘 화두입니다.”

‘원 테마’ 적용…<불광> 600호 앞둬
불광미디어의 모태인 <불광>은 2021년 1월호부터 ‘원 테마(One Theme)’를 적용했다. 인물·역사·문화·인문·교리·라이프스타일 등 여러 분야에서 선정한 하나의 주제를 전체 콘텐츠 가운데 70%이상 비중으로 집중 조명한 것. 대형사찰의 사보들도 높은 퀄리티를 보이는 요즘, 차별성을 두고 시장의 선택을 받기 위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대중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구독자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서점 판매량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났다. 한 호에 하나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뤘기 때문에 과월호에 관심 갖는 사람들도 생겼다. 한 권을 살 때 시중 구매가가 정기구독보다 비싸더라도 읽고 싶은 주제가 담겼다면 그만한 지출을 하는 현대 소비 트렌드에 맞아떨어진 셈이다.

“원 테마로 잡지를 만들면서 지역 불교의 위상이 높아지는 효과도 생겼습니다. 특정 사찰 홍보보다는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담아내고, 여러 지식정보도 담겨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관심 갖는 경우도 있었죠. 때론 콘텐츠를 만들며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불광>의 시판은 매년 두 배씩 늘어나고 있는데, 이 기세가 이어진다면 보다 안정적으로 발행할 수 있을 겁니다.”

2016년 6월호 발간으로 500호라는 역사를 쓴 <불광>은 이제 600호를 앞두고 있다. 창간 이후 한 호도 휴간 없이 써내려온 역사다. 2024년 10월호가 600호, 창간 50주년을 맞는 11월호가 601호가 된다. 500호 발간 당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 로비에서 그동안 펴낸 <불광>으로 부처님 형상을 표현한 기념전을 선보였던 불광미디어. 600호 발간에는 어떤 이벤트로 대중을 찾아갈지 기대를 모은다.

“본질 잊은 생존경쟁은 무의미”

최근 펴낸 월간 불광들.
최근 펴낸 월간 불광들.

2024년 창간 30주년을 맞아 서른이 된 <현대불교>와 쉰의 <불광>. 매체는 다르지만 같은 문서포교를 하는 입장에서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탈종교화 시대에 불교를 기반으로 한 종이매체가 살아가는 길, 불광은 그 길을 걸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했다. 류 대표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다고 해도 본질을 놓쳐선 안 됩니다. 생존을 위해 존재 의미를 포기하거나 타협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행위들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매체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 다시 돌아봐야겠죠. 제가 창간정신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입니다. 존재 이유를 뒤로 하고 생존만 우선시한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겠습니까?”

아파트에서 분리수거를 할 때도 신문이나 잡지는 찾아보기 힘든 시대. 경쟁력이 있어도 종이매체로서 살아남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불광>은 위기상황에서 가격을 올리고 그만큼 질을 높이는 길을 택했다.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시장논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고민을 매순간 담아내기 위해서다. 류 대표는 ‘5천원 더 비싸더라도 좋게 만들어달라는 시장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 <불광>의 월간 구독료 9000원, 시중에선 한 권에 1만2000원이다. 그럼에도 시판이 늘어난다는 건 가격대비 소비 가치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불광미디어의 시작은 광덕 스님이었고 오랜 세월 불광사의 지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간으로 부임할 때부터는 자립이 전제였죠. 출판, 잡지, 미디어사로서 불교를 대표한다는 건 귀중한 선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례가 더 많았으면 하고요. 물론 그에 따르는 책임감도 막중합니다.”

대한민국 현대불교사에서 전법의 역사를 새로 써온 전법운동의 선두주자 <불광>, 그리고 불광미디어.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에도 보현행원을 닦아 세상을 아름답게,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혜는 ‘불광’의 걸음에서 피어나고 있다.

불광미디어는?

1974년 광덕 스님이 설립한 불광출판사가 전신이다. 50년간 700종이 넘는 단행본을 출간하고, 불교의 온전한 가르침과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불교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젊은 불교학자의 학술서, 저명한 스님들의 논서를 중심으로 불교출판을 이끌었으며, 2000년대 들어 미디어의 변화에 발맞춰 보다 전문화된 안목으로 독자에게 유용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종합미디어 출판사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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