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오음의 생멸

〈원문〉
“아난아, 변화하는 이치가 머물지 아니하고 움쩍움쩍 은밀히 옮겨지며 손톱이 자라고 머리털이 길어지며 기운이 없어지고 얼굴이 주름져 밤낮으로 늙어 가지만 일찍이 깨닫지 못하느니라.

아난아, 행음(行陰)이 네가 아니라면 어떻게 몸이 달라지며, 만약 반드시 너라고 할 것 같으면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가? 너의 행음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으니 이름하여 그윽하고 은밀한 네 번째 망상이니라. 또 너의 알차고 밝고 고요하여 동요치 않는 곳을 항상한 것이라 할진대 몸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나오지 못할 것이며, 만약 진실로 알차고 참된 것이라 한다면 망령된 습기를 용납하지 못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너희들이 일찍이 옛적에 한 기이한 물건을 보고는 여러 해가 지나도록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다가 뒤에 다시 보면 기억이 완연하여 잊어버리지 않나니 생각마다 훈습을 받은 것을 어찌 계산할 수 있겠는가?

아난아, 이 다섯 가지 받아 들이는 음이(五受陰)이 다섯 가지 망상(五妄想)으로 이루어졌느니라. 이 오음이 원래 중첩하여 생겼으며, 생기는 것은 식을 인하여 있고, 멸하는 것은 색으로부터 제거되느니라. 이치로는 단박에 깨닫는 것이라 깨달음을 타고 아울러 소멸하거니와 사실에는 단박에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차제를 인하여 다하느니라.”

〈강해〉
〈능엄경〉 10권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오음망상(五陰妄想)이다. 오음이 망상 때문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오음이 다해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신비한 경계가 있는데 이것을 잘못 알고 미혹해지면 올바른 선정이 아니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위의 본문은 행음과 식음에 대하여 말한 대목인데 여기에서 특별히 언급한 것은 오음이 소멸할 때는 색음부터 없어져 식음에 이르는데, 생겨날 때는 식음에서 시작하여 색음에 이른다는 생멸의 과정이 반대라는 점이 밝혀졌다. 이는 오음이 변제(邊際)가 있어 한꺼번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없어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몸이 생길 때 식음(識陰)에서 시작하여 행음, 상음, 수음, 색음으로 생기며 깊은 선정을 닦아 오음이 소멸할 때는 색음부터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옷을 입고 벗을 때 입을 때는 속옷부터 먼저 입고 벗을 때는 겉옷부터 먼저 벗는다는 논리와 같은 말이다.

지난 옛적에 보고 들었던 것을 여러 해가 지나서도 기억이 나는 것을 행음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했다. 생각마다 훈습(熏習)되어지는 과정이 시간이 진행되듯이 행음의 작용이라는 뜻이다. 물론 식을 설명할 때도 상속식(相續識)이라는 말이 있다. 〈기신론〉에도 나오는 이 말은 한 번 일어난 망념이 끊어지지 않고 새로운 망념을 일으켜 단절되지 않는 식(識)의 성질을 두고 한 말이다. 여기에도 물론 행음이 관여하는 것이다.

선어록에도 많이 인용하는 〈능엄경〉 4구게(四句偈)라고 말하는 사구 송이 이어 설해졌다.

“理則頓悟 乘悟倂銷 事非頓除 因次第盡” 이치로는 단박에 깨닫는 것이라 깨달음을 타면 그만이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단박에 제거되는 것이 아니어서 차제를 인하여 다해진다는 것이다. 흔히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수행법을 말해 놓은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으나 〈능엄경〉에서는 오음이 모두 허망한 줄 아는 것은 한꺼번에 아는 것이라 깨달음을 타면 아울러 소멸할 수 있지만 오음을 실제로 소멸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하나 차례로 닦아서 다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선수행에 있어서도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문제를 두고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두 견해가 있고, 구봉 종밀(圭峰宗密: 780~841) 〈선원제전집〉에는 7대 돈점이 있다고 소개하였다.

경전에 설해진 수행 방법은 돈오점수다. 물론 중국의 선종 가운데 임제종을 수립한 임제 의현(臨濟義玄:?~867)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하여 임제종풍의 기치를 삼았지만 간화선을 완성한 대혜 종고(大慧宗苑: 1089~1163)는 그의 어록인 〈서장(書狀)〉에서 능엄경 4구게를 여러 차례 인용 소개하기도 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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