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아디카야의 눈물 1

-어느 날 한 사문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부처님은 있다고 했는데 왜 없다고 했을까? 그 소리야.

심 작가를 놀리듯이 알겠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알겠는가?

-무엇을?

심 작가가 되받았다.

-이와 같다. 부처님은 영혼이 없다고 했고 나는 있다고 한다. 어쩔 테냐?

나는 눈을 감았다. 무슨 말인가?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저 언덕으로 갈 수가 없다는 말인가? 그래서 어쩔 테냐? 그 문제를 풀어야 내 본래면목을 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내 심중을 읽은 듯이 입을 열었다.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아디카야를 찾아야 한다 그 말이다. 그 칼이 너의 무명을 잘라내고 잘라내어 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칼을 찾아 이곳까지 와 무쿠암의 동굴까지 걸어 들어갔다 그 말이다.

-그럼 아버지의 예언이 맞았다는 말 아닌가?

심 작가가 또 나섰다.

-그렇지. 그 영감이 이겼지. 그 영감은 악마처럼 내게 다시 말하고 있었으니까. 아디카야는 본초불의 이름이다.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칼이 아디카야이다. 그 칼은 임자가 아니면 결코 몸을 주지 않는다. 바로 원초불의 칼이기 때문이다. 그 법신은 이 세상을 위해 칼을 들고 오게 되어 있다. 세상의 수많은 붓다들이 그 칼의 임자가 자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도전했으나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 칼을 가져오너라.

-그래서 그 칼을 가졌다?

역시 심 작가였다.

-그러나 칼은 없었다. 그때 깨달았지. 바로 그것이 본래면목이라고. 칼은 없었어. 그런데 칼이 있다? 그게 불가사의지. 그게 불교였어. 그런데 미치겠더군. 이곳으로 온 어느 날 그 칼이 든 만다라를 보수해 달라고 했지. 참 인연이라는 것이 묘하더군. 아버지가 영 거짓말쟁이는 아닌 것 같기도 했고…. 하하 거기 있더군. 탱화 속에 부처의 칼이 있었어.

그의 말에 놀란 네 사람의 시선이 엉켰다.

-그런데 그것은 칼이 아니라 글이었어.

-글?

갑자기 그가 말을 바꾸자 오오스마 기자가 비로소 반응을 보였다. 그는 기자답게 지켜보다가 무슨 소리냐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거의 반사적인 물음이었다.

-칼이 아니었다?

나도 믿어지지 않아 물었다.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하하하고 웃었다.

-이거 실망들이 큰 모양이네. 아니야. 분명히 글이었어.

-글이라니? 칼이 아니고?

오오스마 기자가 확인하듯 물었다.

-맞아. 칼이 아니라 글이었어. 아직도 그 글을 기억하고 있지. 마따랑 빠따랑 한뜨와…. 하하하 무슨 소린지 안다면 그게 거짓말이지. 그 길로 이곳으로 왔거든. 그녀가 여기 있었으니까. 공양주의 딸 미순이.

-그럼 시오레라는 여자는? 아내가 아니던가?

심 작가가 물었다.

그가 아내? 하고 되뇌다가 웃었다.

-아니야. 그 아이는 내가 돌보았던 여자지. 그뿐이야. 내가 이곳으로 와 미순이와 하나가 되었을 때까지도 나는 그녀가 부주의로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 하기야 그녀도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아직도 제거하지 못한 무시 이래의 습기가 욕정이 되어 두 사람의 가슴속에서 타고만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이야. 며칠 전에야 알았지. 그녀의 코가 문드러지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우리를 패배했다고 생각지는 말아.

-치료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오오스마 기자가 화난 사람처럼 물었다.

-치료? 이곳이 어디야? 인도야. 오랜 세월 치료제가 등장했지만, 아직 발병 원인도 모르는 환자들이 수두룩해. 돌연변이 균들이 급성 환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마당이야. 감염 즉시 혈관이 터져 죽는 사람도 있어.

-그래 이제 무엇이 남았나?

오오스마 기자가 허망한 어투로 물었다.

-무엇이 남았겠는가? 오로지 허망뿐. 하지만 이 세상도 살아볼 만한 것이더군. 우리를 이해해 주면 좋겠군. 어차피 교도소로 간다고 한들 사라질 몸이니. 부디 길동무나 하게.

그는 말을 마치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지만 이내 치뜨는 눈가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삽화=김상규
삽화=김상규

 

-한 가지만 더 물읍시다.

이를 악물고 있다가 내가 다시 나섰다. 그러자 그가 가까스로 눈을 떠 나를 쳐다보았다.

-그 성물 말이오.

-성물? 성물이라니?

-그대 만다라 속의 어떤 물건을 가져왔다면서?

-참, 말을 하다 말았군. 그렇지. 그것을 가져왔지. 그 난해한 글. 어쩔 수 없이 바랑에 넣어왔었지. 만다라를 뜯으니까 그것이 나왔으니까.

-그것이 석관 속의 성물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나도 모르게 가슴 밑바닥에서 분노 같은 것이 슬슬 기어 올라옴을 느끼며 물었다. 정확히 분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 성물을 만다라 속에 넣은 임자는 그 후 얼마 안 가 죽었던 모양이야. 만다라를 뜯으니까 작은 상자가 나오더군. 그 주위에 성물을 발견하게 된 과정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래 알았지. 이것이 바로 그 성물이구나 하고.

-그래서 상자 속의 성물을 슬쩍했다?

오오스마 기자가 기자답게 넘겨짚었다.

-물론이야. 홀로 작업했으니까. 금토를 뿌리고 금줄을 치고. 부정 탄다고 누구도 엿보지 못하게 하였지. 웃기더군. 속의 것을 드러내고 내가 가져가는데도 그 사람들 그걸 몰라. 물론 조실이 비밀을 지키다 죽었으니 몰랐을 수도 있겠지. 그것을 당연히 문화재에 넘겨야 하겠지만 난 쫓기는 몸이었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어.

-그럼 그것이 아디카야 검이라고 어떻게 단정하나?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확인하듯 내가 묻자 그가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정말 미친 것이 아닌가. 어리석기는…. 하긴 미칠 만하지. 그러고 보니 그걸 찾아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로군.

-그것은 지금 어디 있나?

그의 입꼬리에 지독한 조소가 물렸다.

-세상 정말 우습구나. 우스워. 만다라에서 나온 물건을 보면서 깨달았지. 내가 속았다는 것을. 애초에 그런 것은 없었어. 부처님의 방편교설이었지. 거기에다 내 아버지 지안 금어 그 천하의 그림쟁이가 한술 더 떴어. 아디카야를 취모리검화 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어낸 거야. 내가 동굴 속으로 들어갔을 때 속았다는 것을 알았어. 텅 빈 석관. 그 텅 빔이 그들의 대답이었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야?

그가 그래도 모르겠느냐는 듯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직도 속고 있는 그대의 집착을 칼질하고 있는 것이야. 텅 빈 관속에 우리들의 허망한 집착이 누워 있었어. 본시 그런 것은 없었다는 말이야. 그게 아디카야의 본질이었던 것이지. 그때 깨달았지. 아하 이것이 불법의 핵심이구나. 그렇게 진리의 당체를 가르치고 있었구나. 그렇게 그들은 인간의 허망한 집착을 베고 있었구나.

-그럼 그대는 난타의 환생자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나운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그의 언사에 반응하는 나의 물음에 그의 입가에 다시 조소가 물렸다.

-내가 난타의 환생자라고? 그랬지. 어떤 대덕이 한 말이 있지.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도적이여 도적이여!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녀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그의 말만이 판잣집을 맴도는 것 같았다. 죽어가는 사람의 음성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왜 사람을 데리러 간 노인네는 나타나지 않는 거야. 그가 금방 숨을 멈춰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밖을 흘끔거렸다. 마지막 힘일지 모른다. 모든 힘이 입으로 뻗치고 있어.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진리에 집착하면 그 또한 죄가 된다고 했지. 그게 공의 모습이라고 말이야. 하기야 진리를 가르치는데 그보다 더한 방편이 어디 있겠는가. 부처가 우릴 속였다? 아난과 달마가 우릴 속였다? 대덕은 한술 더 떴어. 사탄이여, 나는 당신을 경배합니다. 나의 스승, 나의 사탄이시여. 그렇지. 사탄이 우리를 부처 되게 하지. 그렇지 않고서야 부처가 올 이유가 없지. 이미 본래면목인데 그가 오면 어떻고 오지 않으면 어떻다는 것인가. 조사가 오면 조사를 죽여야 하고 부처가 오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고 하던 이가 누구였나. 그러면서도 무아(無我)를 설한 부처와 대립각을 세워? 유아를 설한 사람이 누구야? 바로 그 대덕 아니야? 어이없는 일이지. 그 영감 영혼이 있다고 했거든. 부처는 개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고 조주는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구자부불성 화두가 만들어졌다면 이제 영혼의 문제로 조주가 되시겠다? 어림없는 수작이지.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내게는 윤회를 인정하는 대선사들을 취재하면서 나름 그동안 느껴왔던 감정이 있었다. 그 선사의 법문을 대할 때마다 힌두사상과 불교사상을 혼동하고 있거나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던 건 사실이었다. 부처님이 생존할 당시의 불교와 현재의 불교는 다르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마당이지만 그렇게만 재단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대만의 관점일 수도 있지.

좀 전부터 슬슬 올라오던 분노가 폭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소리치자 그가 공허하게 웃다가 입을 열었다.

-하긴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DNA 한 방으로 복제 인간을 만들어내는 판에….

-그러나 종교를 과학적으로만 재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고.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가. 방편 교설!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와 묻더군. 네놈이 윤회를 부정한다면 네가 난타 존자가 아니라는 해답 또한 어딨느냐? 그 바람에 나도 벽을 보고 돌아앉았어. 그렇게 부정했었는데 비로소 나의 원죄가 보이더군. 혹자는 선정이 뇌의 기능일 뿐이라고 운운하더라만…. 우리가 살며 짓는 업장. 그것이 윤회였어. 그것이 내 마음속 무늬였다는 말이야. 업장. 무아를 향한 발걸음. 어느 날 새벽 보이더군. 정수리가 터져나가는 것 같더니 켜켜이 쌓인 내 업장이 보이더라는 말이야. 그때 깨달았지. 삶의 진실은 자아에 있다는 것을. 그러나 자아를 벗어나지 못하면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윤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어. 구속이 곧 윤회였어. 난타의 번뇌가 내 마음속 무늬였어. 그 마음의 무늬가 나의 번뇌였던 것이야. 내가 그 무늬를 지고 있다면 그것이 곧 난타적 삶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이 모순된 삶을 모순 되게 사는 방법이라는 걸 그제야 안 것이야. 〈계속〉

▶한줄 요약
이 기자 일행은 이석원으로부터 아디카야의 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아디카야의 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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