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갑상선암 판정 받고 수술대 올라
몸을 회복하며 살아있음에 감사드렸다
지금도 비구 법장으로 있음에 감사해

김주일 국장, 김성철 교수 등 지인들의
안타까운 죽음들이 많아…황망할 따름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 주련 글귀
사는 게 수행이고, 이를 아는 게 깨달음
오늘 하루, 어떤 날보다 소중함 알아야

시간은 또다시 정처 없이 흘러 어느덧 2023년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언제나 연말이 다가오면 시간의 흐름에 두려움을 느낄 정도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지만, 한순간도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올해는 필자에게 있어 여러 의미로 기억에 남은 한 해였다. 연초 갑작스런 갑상선암 판정으로 인해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깊은 사유와 고민을 갖는 시기였다. 20대에 출가해 30대에 유학을 하고 40대에 승가대학 교수사에 돼 게으르지 않고 신심 있게 지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아니겠지라는 망상은 ‘암’이라는 한 단어에 여실히 무너져 내려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갖게 했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오른 수술대에서 두려움 가득히 눈을 감았고 다시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드리고 지금 이 찰나의 시간이 바로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여실히 알게 됐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삶에 대한 감사함과 법장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여러 인연들의 소중함을 간절히 느낀다.

올해는 이러한 개인적 일과 함께 안타깝게도 주변의 인연들이 갑작스레 생을 다하는 슬픈 일들이 많았다. 누구 한 명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 만나거나 통화하며 오히려 나의 안부를 묻던 분들이 헤어짐의 인사조차 나눌 겨를 없이 떠나가셨다. 5월쯤 승가의 선배이시며 항상 올곧은 수행을 보여주셨던 스님께서 갑작스레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아 현대불교신문의 김주일 국장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며칠 전 학회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분의 슬픈 소식이었기에 다시금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 이처럼 황망하게 떠나가실 수 있는지 두 번째 다가온 슬픈 소식은 ‘삶’이라는 한 단어가 얼마나 힘없고 나약한가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다. 나는 그동안 나의 암수술이 잘돼 다행이라는 생각에 빠져 일상을 아무 일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이처럼 가까운 인연들의 소식에 그 가벼운 생각이 너무나 창피했고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이후로도 승가와 재가의 인연된 두 분이 더 세상을 떠나셨고, 며칠 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경주 동국대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던 김성철 교수님께서도 갑작스레 슬픈 소식을 전해오셨다. 작년에 학교를 은퇴하시고도 쉴 틈 없이 연구와 지도를 해주시던 교수님께서 이렇게 떠나셨다는 소식은 지금도 많은 분들에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이다.

수술 이후 생각했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나 자신과 인연된 분들에 의해 끊임없이 되뇌게 됐다. 출가자와 재가자 그 누구도 삶의 마지막을 피해갈 수 없고 언제 어떻게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삶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간절하지만 그 사라짐 앞에서는 어떤 힘조차 쓸 수 없다. 그렇기에 살아있다는 것을 언제나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 안에서 인연된 이들과 살아있음을 공존하며 함께 해야 한다. 어쩌면 수술대 앞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죽어서 사라진다는 것보다 지금을 살 수 없고 인연된 이들을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을지 모른다.
 

해인사 법보전에는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라는 주련이 있다. “깨달음의 도량이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 순간 삶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는 가르침이다. 오늘을 사는 것이 수행이고, 그 산다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깨달음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살지만, 이 하루는 언제나 그 어떤 날보다 간절하고 소중하게 느껴질 하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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