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지음/2만원/인문공간

전국 사찰음식 연구만 50년
‘절간 이단아’가 던지는 화두
전통 사라진 현실 개탄하며
올바른 사찰음식 가치 설명

이제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사찰음식. 오랜 시간이 걸려 사찰음식 관련 자격증이 생겨났고, 몇몇 사찰은 사찰음식 특화사찰로 이름을 떨친다. 주요 해외인사들이 사찰을 방문했을 때 대접하거나 한국불교계가 해외홍보를 위해 활용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 웰빙 열풍을 등에 업고 일부 스님들에 의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사찰음식. 하지만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는 법. 사찰음식의 이런 대중화 흐름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부처님 말씀에 빗대면 사찰음식문화는 맛과 모양 등 ‘음식’에 집착하는 일이 되고, 남을 위해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플레이팅으로 인해 ‘고급 채식요리’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저 수행자가 청빈함을 지키며 공양하던 ‘절밥’이 과하게 포장됐다는 성찰도 있었다.

〈사찰음식은 없다〉 저자 정산 스님은 불교만이 가진 독특한 음식문화를 논하는 데 있어 조금 더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를 취한다. 과연 지금의 사찰음식문화가 한국불교 1700년 역사를 관통하는 전통의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팔순을 앞둔 정산 스님은 사찰음식 연구에 평생을 바쳤기에 가능한 사자후다.

정산 스님은…1960년대부터 전국 사찰을 돌며 사찰음식을 채록해 레시피 노트를 만들었다. 입으로만 전해오던 절간 음식을 처음으로 성문화한 사찰음식 대중화의 개척자다. 1971년 부산일보에 ‘절 따라 맛 따라’, 국제신문에 ‘산사음식’을 연재하고 일반인 교육도 실시했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16세에 범어사로 출가해 명허 스님 밑에서 음식 공부를 시작한다. 이후 해인사에서 수행자의 길로 생각하며 사찰음식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1981년 ‘전통음식 발굴 콘테스트’(중앙일보사·TBC 공동 주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한국 사찰 음식〉 〈북한 사찰 음식〉 〈눈으로 먹는 절 음식〉 등 단행본을 출간했다. 현재 서울 인사동에서 사찰음식 전문점 ‘산촌’을 운영하고 있다.
정산 스님은…1960년대부터 전국 사찰을 돌며 사찰음식을 채록해 레시피 노트를 만들었다. 입으로만 전해오던 절간 음식을 처음으로 성문화한 사찰음식 대중화의 개척자다. 1971년 부산일보에 ‘절 따라 맛 따라’, 국제신문에 ‘산사음식’을 연재하고 일반인 교육도 실시했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16세에 범어사로 출가해 명허 스님 밑에서 음식 공부를 시작한다. 이후 해인사에서 수행자의 길로 생각하며 사찰음식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1981년 ‘전통음식 발굴 콘테스트’(중앙일보사·TBC 공동 주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한국 사찰 음식〉 〈북한 사찰 음식〉 〈눈으로 먹는 절 음식〉 등 단행본을 출간했다. 현재 서울 인사동에서 사찰음식 전문점 ‘산촌’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사찰음식 전문가인 정산 스님이 지금의 사찰음식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 정산 스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불교의 식문화 중 핵심은 발우공양이다. 사찰음식에 개별적인 메뉴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불교의 정신이 발우공양에 집약돼 있음에도 사찰의 후원은 공양간으로 표현되고, 공양간은 또 식당과 같은 개념이 자리하면서 발우공양은 점차 사찰 내에서도 멀어졌다.

정산 스님은 이 같은 현상이 출가자의 나태함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사시에 예불을 올리고 마지를 나눠 먹는 전통은 전 세계의 불교가 공히 지켜야 하는 문화임에도 점심 공양의 거룩함을 잊은 현실에 개탄한다. 더불어 각 교구본사마다 가지고 있던 후원의 옛 전통을 되살려야 지금의 획일화된 사찰음식문화를 비로소 올바르게 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산 스님이 꼽은 가장 비불교적인 사찰음식의 조리법은 ‘채수’다. 맛을 더 살리기 위해 무언가를 더한다는 것 자체가 불교가 추구하는 바와 맞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스님은 경험을 토대로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절에서도 채수라는 건 쓰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맛은 출가자로서 멀리해야 할 대상이기에.

“재가자는 맛있는 음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절집처럼 순수하고 담백한 음식을 강요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네를 위해 채수라는 걸 쓰는 방편을 소개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원래 사찰음식은 채수를 쓰지 않는다는 걸 함께 이야기하고 이를 각인시키는 과정도 필요하다.…지금처럼 사찰 음식을 만들 때는 채수를 쓰는 게 상식인 것처럼 인지하게끔 해서는 안 됐다. 단언컨대, 이건 사찰음식이 아니다.”-p.201 ‘전통 혹은 만들어진 것’ 중에서

책은 사찰음식을 바라보는 정산 스님의 견해뿐만 아니라 출가부터 행자시절을 거치며 사찰음식 연구에 천착하며 겪게 된 일화도 담고 있다. 특히 금강산과 묘향산 등지를 다니며 수행한 명허 스님에게 북한의 사찰음식을 공부하고 2007년 남북 화해 무드에 방문하게 된 북한 이야기는 정산 스님만이 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콘텐츠다. 또 책 말미에는 스님이 직접 전국사찰에서 배운 사찰별 음식의 간단한 레시피도 정리돼 있다.

책 속의 밑줄 긋기

발우공양이 빠진 채로 ‘공양을 한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발우공양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해외에도 알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러나 정작 그 정신을 이어온 사찰 안에서 발우공양의 전통은 지켜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p.41

북쪽에서도 이미 예전처럼 후원의 문화를 지키고 있지 못하는 이상, 내가 가지고 있는 북한 사찰의 음식 자료는 그 가치가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그때 나의 자료는 북쪽의 사찰음식을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p.106

사찰음식이라는, 불교를 대표하는 문화에 얼마나 깊은 깊이가 녹아 있는가. 그것이 세상에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이것이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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