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신여성이자 구도자 ‘일엽 스님’
삶과 사상 등 조명한 철학적 평전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 저항하다가
내면의 깨달음 추구…바탕엔 ‘자유’

김일엽, 한 여성의  실존적 삶과 불교철학/ 박진영 지음 / 김훈 옮김/ 김영사 / 2만5000원
김일엽, 한 여성의  실존적 삶과 불교철학/ 박진영 지음 / 김훈 옮김/ 김영사 / 2만5000원

김일엽 스님(1869~1971)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 스펙트럼이 다채로운 인물이다. 스님은 한국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 현대적 글쓰기와 연기로 성공한 한국 최초의 작가 김명순과 더불어 1세대 자유주의 신여성으로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해 신식교육을 받았던 김일엽 스님은 언론인이자 작가였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1933년 수덕사로 출가해 구도자의 길을 걷는 비구니 스님이 됐다.

그간 김일엽을 연구한 학자들은 신여성으로서의 김일엽과 스님으로서 김일엽을 별개의 인물로 놓고 연구하거나, 출가 이후 김일엽은 여성문제를 포기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진영 미국 아메리칸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는 김일엽 스님을 이해하는데 있어 둘을 나눠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일엽 스님은 ‘자아와 자유에 대한 끈질긴 추구’라는 한 가지 일관된 주제를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서다. 이를 학문적으로 입증한 것이 최근 김영사를 통해 발간된 〈김일엽, 한 여성의 실존적 삶과 불교철학〉이다. 

격동기의 한국 근현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김일엽 스님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평전 형식의 연구서인 이 책은 김일엽문화재단의 후원과 박진영 교수의 11년간의 원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지원을 통해 미국에서 영문으로 먼저 출간돼 화제가 된 후 이번에 번역·출간됐다. 

책은 전체 7개 장을 크게 1부(1~3장)와 2부(4~7장)로 나눈다. 1부는 김일엽이 1933년에 출가하기 전까지 생애를 다루었다. 김일엽은 기독교 신자인 부모 아래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 성장 과정을 거쳐 그녀는 신여성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에 속하는 인물이 되었다. 김일엽은 문학잡지를 비롯해 나중에는 불교신문에도 글을 기고했다. 그 과정에서 점차 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백성욱 박사의 영향을 크게 받아 불교 수행을 시작했다. 

1장 ‘빛과 어둠 사이(1896~1920)’는 김일엽의 어린 시절과 청춘기를 다룬다. 이 시기 김일엽은 한국의 진보적 여성들과 20세기 한국 사회 전체에 역사적인 업적을 남겼다.

2장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1918~1927)’은 당시 1세대 신여성 김일엽, 나혜석, 김명순의 삶을 제시하고, 당시의 대중이 그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살피며, 3장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1924~1927)’은 김일엽이 사회적 반란에서 실존적 불교로 넘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수덕사 견성암에 주석하고 있을 당시 일엽 스님(1869~1971)의 모습. 
수덕사 견성암에 주석하고 있을 당시 일엽 스님(1869~1971)의 모습. 

2부(4~7장)는 김일엽 스님이 출가한 1933년부터 사망한 1971년까지의 생애를 다룬다. 수덕사로 출가한 김일엽  스님은 한국 비구니계의 대표적 인물이 됐다. 스님은 출가한 이후 20년 동안, 스승 만공 선사의 가르침에 따라 펜을 들지 않았다. 1960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문학계로 돌아와 자신의 삶과 불교철학에 관한 세 권의 책을 썼다. 2부에서는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철학이자 종교로서 김일엽의 불교에 관해 다룬다.

4장 ‘나를 잃어버린 나(1927~1935)’는 적극적인 사회운동가에서 비구니 수행자로 변모하는 김일엽 스님의 여정을 담았다. 5장 ‘화해의 시간: 어느 수도인의 회상(1955~1960)’은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에 나타나는 김일엽 스님의 불교관을 다룬다. 5장은 김일엽 스님은 자아를 ‘소아(小我)’와 ‘대아(大我)’를 구분하고, ‘대아’를 ‘무아(無我)’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스님은 ‘대아’의 개념을 통해 여성과 남성 같은 성적 정체성을 비롯한 사회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정체성에서 우리가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김일엽 스님은 불교의 세계관을 ‘창조성’과 ‘문화’라는 용어로 특징지었다. 김일엽은 부처를 ‘위대한 문화인’으로 정의했고, 출가자의 수행을 문화인이 되는 훈련이라고 말했다.

6장 ‘여행의 끝: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0~1971)’는 김일엽 스님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응답하고, 불교와 사회의 관계, 성(聖)과 속(俗)의 관계를 살폈다. 또한 저자는 김일엽 특유의 철학적 사유 방식이 어떻게 ‘서사 철학’으로 나타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7장 ‘살아낸 삶: 여성과 불교철학’은 젠더, 내러티브(서사), 불교, 철학, 의미 창조가 한데 어우러진 김일엽 스님의 삶이 남긴 유산에 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박진영 교수는 “김일엽의 삶의 두 국면, 즉 작가이자 여성운동가로서 김일엽과 승려로서 김일엽은 한 가지 일관된 주제를 보여준다. 바로 자유에 대한 끈질긴 추구”라며 “김일엽 스님의 삶과 철학을 통해 우리는 여성들이 어떻게 불교를 만나고 또한 철학을 만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저자와의 만남] 박진영 아메리칸대 교수

 “주변인으로서 일엽 스님 고민들 
 내 자신이 마주한 문제 맞닿아”

2004년 국제학술대회 발표 후 
김일엽 스님 관심…11년 연구
한계 넘기 위한 모습에 공감대

▲저자 박진영 교수는?미국 아메리칸대 철학·종교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종교학회 회장에 선출됐다. 동아시아 선불교와 화엄불교, 근대 한국 불교철학, 여성 철학, 동서비교철학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자 박진영 교수는?미국 아메리칸대 철학·종교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종교학회 회장에 선출됐다. 동아시아 선불교와 화엄불교, 근대 한국 불교철학, 여성 철학, 동서비교철학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김일엽 스님에 대해 연구하면서 2014년 스님의 저서 <어느 수도인의 회상>을 영어로 번역해 출간하게 됐어요. 당시 제가 살고 있던 미국 워싱턴에서 지인들과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할머니 한분이 손녀와 함께 참석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머니께서는 김일엽의 책이 영문판으로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념회에 참석했답니다. 심지어 할머니는 영어를 읽을 줄도 모르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김일엽은 자신이 살고 싶었지만 살 수 없던 삶을 살았던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김일엽이라는 인물이 갖는 파급력이 엄청났음을 알게 됐습니다.”

11월 7일 만난 박진영 아메리칸대 종교철학과 교수는 당시 김일엽 스님이 가졌던 파급력에 대해 이와 같은 일화를 들었다. 

김일엽 스님이 살았던 당시는 한반도에 근대가 태동되던 시기였지만, 여성들은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굴레에 억압받았고, 그 틀 안에서 살아야 했다. 작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이 같은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했던 인물이 김일엽이었고, 자유를 향한 갈망은 종국에는 내면의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이런 스님의 삶에 박 교수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김일엽 스님과 박진영 교수 둘 다 주변인으로 삶을 살았고, 살고 있어서다. 김일엽 스님은 신식교육 받은 엘리트 신여성이었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고, 박 교수 역시 미국학계에서 동양철학자, 그것도 비주류 한국 간화선 전공자이자 여성 학자로서 늘 한계를 마주해왔다. 

“2004년 ‘한국의 비구니’를 주제로 열린 한마음선원 국제학술대회에서 ‘김일엽: 한국 불교와 근대성의 또 하나의 만남’을 발표했는데, 이후 11년 동안 연구해서 지금의 책을 발간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엽 스님을 꾸준히 연구할 수 있던 것은 제 문제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국 여성으로서 겪는 모습, 미국사회에서 동양 여성, 한국계 여성 동양철학자로서 겪는 모습들이 100여 년 전 김일엽 스님이 고민했던 문제들이기도 합니다. 김일엽 스님의 연구는 학문적 탐구과정이면서도 제 이야기를 하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랬기에 박진영 교수는 <김일엽, 한 여성의 실존적 삶과 불교철학>을 만나는 독자들이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김일엽 스님은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이를 포용하려 했습니다. 신여성으로서, 수행자로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들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나는 어떤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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