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후 능침사원으로 조성돼
조선 초기 최대 불교사찰 명성
불화, 불상 등 5개 분야 연구
전문가 참여…28편 논문 담아
“흥천사 대종 환지본처” 주장도

대흥천사  불교미술/ 문명대 외 지음/ 한국미술사연구소 출판부/ 3만원
대흥천사  불교미술/ 문명대 외 지음/ 한국미술사연구소 출판부/ 3만원

서울 성북구 흥천사(興天寺)는 태조의 비 신덕왕후의 능침사원으로 1397년에 조성된 후 왕실 원찰, 조계종 본사, 선종 수사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조선 초기 최대의 불교 대찰로 너무나 유명했다.

흥천사의 능침사원 기능은 태종 때 신덕왕후 능인 정릉이 성북구로 옮겨지면서 새로운 흥천사인 신흥사에 계승됐고 연산군 때 황화방 흥천사가 소실되면서 왕실사원의 기능까지 계승돼 명실상부 성북구 흥천사(신흥사) 시대가 된 것이다. 그후 숙종 때의 중창을 거쳐 고종 때 대원군의 흥천사 사명(寺名)의 복원으로 흥천사는 완전히 옛 흥천사 왕실사원의 모든 기능을 복원하게 된다.

흥천사가 다시 옛 사격을 복원한 것은 흥천사 회주 금곡 스님의 원력 때문이다. 특히 금곡 스님은 (사) 한국미술사연구소와 함께 흥천사의 역사와 불교미술에 대한 학술대회를 5년간 개최해 흥천사의 역사적 중요성을 심도 있게 조명하고 대중들에게 알렸다. 밝혔고 널리 알리는데 힘써왔다. 이를 통해 흥천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42수 금동천수관음보살상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번에 발간된 〈600년 왕실원찰 대흥천사 불교미술〉은 지난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던 논문들이 수정·보완된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흥천사의 역사와 사상(4편), 흥천사의 불교조각(6편), 흥천사의 불교회화(8편), 흥천사의 불교공예(6편), 흥천사의 불교건축(4편) 등 5개 분야, 총 논문 수 28편의 방대한 양이다.  

이중에는 현재 진행형인 사안도 있다. 바로 보물 ‘흥천사 동종(대종)’의 환지본처다. 주요 저자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한국미술사연구소장)는 ‘흥천사 대종 명문으로 본 흥천사의 성격과 대종의 보존’을 통해 종에 새겨진 명문을 분석하고 향후 종의 보존 방향에 대해 제안했다.

보물로 지정된 흥천사명 동종(대종)
보물로 지정된 흥천사명 동종(대종)

문 명예교수에 따르면 대종에 새겨진 명문은 세조의 상서로운 치세를 천명하고, 이로 인해 회암사 석가여래사리가 분신(分身)하고 세종 때의 분사리가 다시 분사리해 그 수가 102과가 됐음을 기술하고 있다. 이에 세조는 크게 기뻐해 대사면을 내리고 손수 능엄경을 번역했으며, 불보살상 4구를 조성해 흥천사 사리각에 안치했다. 세조와 왕후는 사리각에 안치된 부처님께 예배하고 대종을 조성해 중생을 잘 인도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문 명예교수는 “흥천사 대종의 조성은 회암사 탑 사리의 분신이 계기가 됐음을 알 수 있다”면서 “부왕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 세조가 〈능엄경〉을 번역한 것은 선종 흥천사의 기본 경전인 〈능엄경〉을 한글로 번역해 보급하는 것이야말로 불교 중흥과 국운융창을 여는 지름길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흥천사 대종은 연산군 10년(1504)에 흥천사가 전소되고 중종 5년(1510) 공식적으로 폐사되면서 방치되다가 영조 23년(1747)에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 걸리게 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광화문이 다른 곳으로 옮겨짐에 따라 덕수궁으로 이운됐다. 하지만 2006년 보물로 지정될 때까지 노상에 노출되면서, 관람객이 종에 낙서를 하는 등 제대로 된 보존이 이뤄지지 못했다. 현재는 보존처리를 마친 상태며, 수장처를 논의 중에 있다. 본래는 국립고궁박물관 앞에 보호누각을 만들어 전시하려 했으나, 흥천사와 불교계가 반대 입장을 피력해 중단됐다. 

이에 대해 문 명예교수는 “흥천사 대종을 국립박물관으로 이안하는 방안도 있지만 모든 유물은 원 장소로 환지본처하는 것이 원칙이자 대세이기 때문에 좋은 방안은 아니다”라며 “이 방안보다는 원래의 흥천사로 이안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정성을 다해 예경하고 보존하는 곳이 사찰 이상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대흥천사 불교미술〉은 사찰의 불교미술을 면면을 조명하고 나아갈 방향을 조명하고 있다. 이는 한국불교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모범사례로 평가된다. 

한국미술사연구소는 “흥천사의 역사와 불교미술이 이 한 권의 저서로 모두 밝혀질 수 없겠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이번 연구서를 통해 어느 정도 조명해냈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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