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종결자 사명대사 면면들
이상훈 작가 10년 취재로 되살려
왜적에 대응한 건 민초와 승려들
“사명은 조선을 구한 영웅” 강조

사명대사의 진영
사명대사의 진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년) 5월 23일부터 1598년 12월 16일까지 약 7년간 이어진 전쟁이다. 흔히들 왜적이 침략해 지난한 전투를 벌이다가 이순신 장군으로 인해 왜적이 패퇘한 전쟁으로 알고 있으나,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이라는 통일국가가 가용한 유·무형의 자산을 총동원한 최초이자 유일한 총력전이자 동북아 최초 국제전이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한·중·일 삼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그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전개가 드라마틱하다보니 임진왜란은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현재까지 제작된 임진왜란 영화와 드라마는 총 8편으로 다른 주제에 비하면 압도적인 숫자다. 하지만, 승병을 분연히 일으켜 왜적과 싸운 승장(僧將)과 승병의 이야기는 매우 편린적으로 다뤄진다. 공전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 ‘명량’에서도 승군은 관군과 함께 싸우는 비정규 원군으로 그려지고 있다. 

스타 PD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상훈 소설가는 우연히 접한 사명 대사의 애끓는 한 마디가 화두가 됐다. 

“포검비(抱劍悲), 칼을 품고 슬퍼하다.”

불살생을 맹세한 승려가 칼을 들고 적이지만 귀중한 목숨을 거둬야 하는 참담한 심경이 묻어나는 일구(一句)다. 이 일구가 이상훈 소설가에게는 10년의 화두가 됐다. 그는 10년 동안 사명 대사의 흔적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고, 수차례 일본을 오가며 자료를 수집했다.

작가가 10년간의 노력을 통해 벼려낸 것이 바로 장편소설 〈칼을 품고 슬퍼하다〉이다. 〈사명집〉권3 ‘과진천’에 있는 일구 ‘포검비’에서 가져온 소설의 제목은 곧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다.
 

칼을 품고  슬퍼하다/ 이상훈 지음/ 여백 / 1만6800원
칼을 품고  슬퍼하다/ 이상훈 지음/ 여백 / 1만6800원

소설은 사명의 어린 시절, 천재 소년으로 불리던 응규의 첫사랑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사랑 아랑과의 가슴 뛰는 사랑도 잠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아랑과 어릴 때 잃은 형제, 그리고 부모의 죽음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던 사명은 승려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을 짝사랑하던 미옥을 끝내 뒤로한 채.

출가 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던 사명은 승과에서 장원을 차지했으며, 그의 학문적 깊이를 알아본 사대부들과 시문을 나누고 우정을 쌓아갔다. 하지만 곧 임진왜란이라는 격랑이 조선을 덮쳤다. 왜적으로 인해 민중들은 스러져갔고, 결국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사명 대사는 분연히 일어나 승병의 대장이 돼 왜적을 물리쳐 나갔다. 

승장으로서의 사명은 유학을 신봉하는 조선 사관들이 기록해 놓은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전쟁 영웅이었다.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목을 움츠러들게 한 “그대 목이 조선의 보배”라는 일갈처럼 사명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종횡무진 눈부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 어떤 전투의 그 어떤 승리보다 참으로 값진 것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 대한 사명의 측은지심이었다.

오직 자신의 권세만을 누리려는 조선의 권력자들이 외면해 온 조선인 포로들을 위해 사명은 거침없이 적의 소굴로 들어갔다. 일본의 많은 적들이 사명에게 글 한 줄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사명의 가르침을 받으려 머리를 조아렸다. 사명은 무도한 일본의 적들에게 결국 문(文)이야말로 무(武)를 이기는 진리임을 설파하고, 그들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리고 끝내 일천오백 명에 달하는 조선 백성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다 알고 있는 역사이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은 탄탄하고 촘촘하다. 허균, 허난설헌과의 인연, 일본 등 주변국의 정세, 사명 대사의 십자가 이야기 등을 흥미롭게 엮어낸다.

이를 통해 작가는 말한다. 포로 일본으로 끌려간 민초들에게 사명은 살아있는 부처였다고. 사명 대사는 조선의 고승이 아니라 조선을 구한 영웅이었다고. 그렇기에 임진왜란의 영웅은 이순신 장군만이 아니라고. 애민정신으로 계를 어기면서까지 칼을 들었던 사명이야말로 조선을 구한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이상훈 작가는
KBS 공채 피디로 방송에 입문, SBS 개국에 참여해 수많은 히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14년 첫 소설 〈한복 입은 남자〉가 국민적인 관심 속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소설 〈김의 나라〉는 제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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