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마촉지인, 마군을 항복시키다

집착과 갈애가 마왕과 마군의 정체
붓다 수행과정서 항상 나타나 훼방
“열반 이르러 모든 욕망 파괴됐다”
석굴암 본존불 대각상의 항마촉지인
마왕 굴복시킨 정각의 모습을 표현

대승불교의 전통에는 석가모니불 이외에도 아미타불·비로자나불·노사나불·미륵불·약사불·연등불 등 다양한 부처님이 등장하게 된다. 무수한 부처님들 중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식별하는 핵심적인 특징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 모양(수인)이다.(도판 ⓛ~④)

‘항마촉지인’은 한자 그대로, ‘촉지(觸地, 땅을 가리키다 또는 어루만지다)’하자 ‘항마(降魔, 악마가 항복하다)’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땅을 가리켜 악마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모든 장애를 물리침과 동시에 정각의 일어난 순간이기에 ‘석가모니가 도(道)를 이룬 상’이라 하여 항마촉지인의 붓다상을 ‘석가모니 성도상(成道像)’ 또는 ‘석가모니 대각상(大覺像)’이라고 일컫는다. 

‘항마촉지인’의 수인
깨달음을 끊임없이 방해하던 마왕은 태자가 이미 깨달아 붓다가 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출현한다. 그리고 “깨달았다면, 그것을 증명해보라”고 한다. 마지막 의심이 생겨났다. 깨달음을 ‘대상화’하는 ‘의심이라는 에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에 붓다는 크나큰 선정에 든 것을 상징하는 선정인(禪定印)의 수인에서, 오른손을 풀고 검지를 들어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다. 선정(定)을 바탕으로 통찰지〔慧〕를 발휘한 것이다.

한 손은 정인(定印)이고 다른 한 손은 촉지인(觸地印)으로, 항마촉지인 자체가 ‘정(定)+혜(慧)’의 수행법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자 대지(大地)가 크게 진동하였다. 〈대열반경〉에는 ‘대지가 진동하는 8가지 이유’가 나오는데, 그 대목을 보면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을 때, 땅이 흔들리고 많이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땅의 큰 흔들림이 일어나는 원인이다”라고 명기돼 있다. 그러자 지신(地神)이 나타나 붓다의 깨달음을 증명하였고, 이에 마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종적인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확인하고 증명하는 정점을 찍는 수인이 바로 ‘항마촉지인’인 것이다. 

마왕와 마군의 정체
‘깨달음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왜 고통스러운가’라는 질문과 같다. 에고(아상)는 ‘나’라는 허상을 끊임없이 만들면서, 주객을 분리하는 일을 한다. 본래 ‘하나’였는데, 그것이 계속 분리가 일어나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통의 어원은 두카(duka, dukka)인데, ‘분리’라는 뜻이다. 에고라는 무명을 바탕으로 ‘탐(貪)·진(瞋)·치(痴)’가 일어난다. 석가모니 붓다는 이것을 ‘마라(Mara)’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마군(魔軍, 악마의 군대)’이란 뜻이다. 마군은 이번의 한 평생을 물론이고 세세생생 끈질기게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는다. 그런데 우리는 에고에 그토록 시달리면서도 시달리고 있는 줄도 모른다. 에고가 세세생생 만들어놓은 존재에 대한 집착과 욕망의 길은 미끄럼틀처럼 견고하게 닦여, 아주 조그마한 자극에도 제 갈 길을 가버린다. 

이미 우리의 몸체에 장착된 육근(六根)에는 전생(前生)에서부터 가지고 온 업식(業識 또는 업장)이 내장돼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않는 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육근이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여섯 개의 뿌리로 눈(眼)·귀(耳)·코(鼻)·입(舌)·몸(身)·의식(意)을 말한다. ‘육근과 육경((六境, 형상(色)·소리(聲)·냄새(香)·맛(味)·촉감(觸)·관념(法))’(색온, 色蘊)이 만나면서 생기는 느낌(수온, 受蘊), 그리고 순차적으로 서로 쌍방으로 영향을 주면서 생겨나는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이 우리가 체험하는 세상의 전부이다. 

이렇게 종횡무진 들끓는 오온(五蘊)이라는 메커니즘의 한가운데에는 마왕이 있다. ‘나’라는 ‘에고(아상, 我相)’이 있다. ‘내가 있다고 착가하는 마음’을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또는 ‘치(痴)의 마음(어리석음)’이라고도 한다. 어리석음 중에서도 가장 최상의 어리석음이라고 해서 ‘근본 무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내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견(邪見, 삿된 견해)이므로 ‘유신견(有身見)’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마왕은 ‘무명’이고 마왕의 군대는 ‘무명의 작용’이다. 

무명은 ‘오온(五蘊)’이라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오온은 ‘다섯 가지 덩어리’란 뜻인데, 색(色)·수(受)·상(相)·행(行)·식(識)의 덩어리를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덩어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번뇌 망상을 만든다. 부지불식간에 삽시간에 작용하는 오온. 오온의 작용에 속지 않으려면 통찰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통찰지가 없는 우리는 그것이 실제인 줄 알고 반응한다. 반응하면서 다시 오온의 덩어리는 더욱 공고해진다. 한 번 일어난 무명의 마음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지나간 길의 자국이 업식(또는 잠재의식)에 선명하게 그림자를 남긴다. 이렇게 남겨진 그림자들은 차곡차곡 쌓여 업장이 된다. 

에고와 반야의 대결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에고와 알아차림(또는 무명과 반야)의 길고도 험난한 싸움의 과정이다. 알아차림(반야)가 이기면 결과는 열반이고, 에고(무명)이 이기면 결과는 윤회이다. 열반은 자유이고, 윤회는 고통이다. 자유를 택할 것인가. 고통을 택할 것인가. 유아(有我)와 무아(無我)의 대결. 유아有我를 만드는 무명과 무명의 작용(오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마왕과 마군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물론 석가모니 붓다께서 자신이 터득하신 방법을 밝혀놓으셨다. (붓다 직설의 실참 수행법이 담긴 초기경전은 19회차 연재를 참조하기 바란다.) 

마왕과 마군이 이 꼼짝 못 하는 두 가지 무기는 ‘사마타와 위빠사나’이다. 사마타는 고요한 마음 ‘선정(禪定)’을 말하고, 위빠사나는 꿰뚫어 보는 통찰의 ‘지혜(智慧)’를 말한다. 이러한 선정과 지혜를 합하여 ‘정혜(定慧)’ 또는 ‘지관(止觀)’이라고 한다. 정혜쌍수(定慧雙修)와 지관겸수(止觀兼修), 모두 붓다 가르침의 핵심을 일컫는 말이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것이 붓다 가르침의 요지이다. 이것을 시작하는 요체로서 붓다는 ‘아나빠나 삿띠’라는 호흡 관찰법을 제시하셨다.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힘을 동시에 키우는 최고 최상의 방법이다. 하지만, 아나빠나 삿띠가 요하는 지구력과 인내가 힘든 분들께는, 화두 참구(간화선)라는 우리나라 전통의 사마타 수행방법을 권한다. 초 단기간에 에고의 인식에서 벗어나 바탕자리의 인식과 하나가 됨을 맛 볼 수 있는 우리 선조들의, 우리에게 맞는, 극한 처방인 것이다.   

‘마(魔)’의 아비담마적 해설
마왕과 마군은 석가모니 붓다가 대정각에 들려 할 때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수행하는 기간 내내 줄곧 따라붙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완전한 열반에 들 정도로 석가모니 붓다의 선정과 지혜의 힘이 막강해졌을 때,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완전하게 소멸한다. 이러한 불이(마구니의 소멸과 정등각의 드러남)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석가모니대각상’이다. 석굴암의 본존상은 마침내 마왕을 완전하게 항복시키고 궁극의 열반에 들었음을 상징한다.  

마왕과 마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초기경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상윳따니까야〉에는 마구니를 갈애(渴愛, 딴하)·혐오(嫌惡, 아라띠)·탐욕(貪欲, 라가)이라고 언급한다. 그 외 〈숫타니파타〉 등에서는 애욕(까마)·혐오(아라띠)·기갈(꿉삐빠사)·갈애(딴하)·혼침 수면(티나밋다)·공포(비루)·의혹(위찌낏차)·위선과 오만(막카탐바)의 8가지로 세분하기도 한다. 이것이 붓다께서 직접 설하신 마왕과 마군의 내용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어느 것이건 ‘에고(我相)으로서의 무명’(마왕)과 ‘이것을 생존 및 유지시키려는 갈애의 작용’(마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붓다의 오도송 마지막 구절에는 “나의 마음은 열반에 이르러 ‘모든 욕망’은 파괴되어 버렸네(법구경153·154)”라고 나와 있다. 존재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것을 유지시키려하는 ‘모든 욕망(갈애와 집착)’이 마왕과 마군의 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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