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여기 있었군 1

-모르겠소.

-모르겠다? 정말이오?

이상하게 여인이 미워져 내가 심통 사납게 물고 늘어졌다.

여인도 심기가 상했는지 벌컥했다.

아 가보면 알 것 아니오? 그년 여기 살 때 그럽디다. 집을 빼려고 하는데 나가질 않는다고. 누가 이런 썩어빠질 놈의 집구석에 들어오려고 해야지. 몇 달 머물 여행객이나 들여야 하는데. 문제는 그놈이야. 어느 날 이상한 사람들을 잔뜩 끌고 나타나서는 난리를 피우더니 그 길로 가고선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요. 누군가 그러는데 가꿈이라던가? 거기 있는 트라트웬인가 하는 사원에서 보았다고 합디다.

-그가 누굽니까? 그를 보았다는 사람이?

-그건 나도 모르겠소. 나도 그저 들은 소리니까. 허이구 드런 놈 제 여편넬 팔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버젓이 수행하는 거 보면 부처님은 뭐 하는 양반인지 몰라 그런 놈 안 잡아가고….

-그럼 그 여자가 있다는 술집 이름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미노도 집이요. 이 길로 똑바로 가다가 시장통 여우 골목으로 빠지면 금방 보일게요. 어이 드런 놈의 집구석.

여인은 생각하기도 몸서리난다는 듯이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치를 떨며 들어가 버렸다.

-이거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심 작가가 중얼거렸다.

-이석원에게 여자가 있었다? 여자가 있을 리가 있나?

오오스마 기자가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여기 와서 만났겠지. 예전부터 들락거렸다고 하니. 아무튼 그 여자나 찾아봅시다. 그럼 밝혀지겠지.

심 작가가 말했다.

나는 이 사실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머릿속에 어지러웠다. 천추사원에서 그림이나 그리던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따로 방을 얻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은 아내를 얻고 살다가 그 여자를 창녀촌에 팔아먹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들이 인도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셋집을 얻고 아내를 얻고…. 이석원은 젊은 몸이었으니 일탈을 꿈꿀 수는 있다. 그림을 그려 판 돈으로 그만의 공간을 얻을 수도 있고 여자를 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여자를 사창가에 판다?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무엇인가 잘못짚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막연한 육감이 아니라 그의 행적으로 봐 여자가 있을 리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내를 사창가에 팔아먹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이곳의 여자를?

여인이 말해 준대로 시장통에서 미노도 집을 찾았다. 시장 골목을 끼고 잠시 나아가자 건어물 가게를 끝으로 골목이 다시 밝아지면서 술집이 즐비하게 나타났다. 쉽게 찾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미노도 집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불 꺼진 붉은 전등이 추녀 끝에 달린 술집 문을 밀고 들어가자 사십 대의 주인 여자가 나왔다. 마른 명태처럼 살이라고는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왜 시오레란 여자를 찾느냐며 가르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오스마 기자가 기자 신분증을 내밀며 그녀의 오빠라고 해서야 뒤탈이 겁나서인지 주인 없는 방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벌써 나간 지 일주일이나 되었다고 했다. 방문을 열자 썰렁한 방안에서 비릿한 비린내만 풍겨 나왔다.

나는 얼른 돌아섰으면 싶었지만, 이리저리 둘러보던 오오스마 기자가 미련을 부렸다. 그는 분명히 육감적으로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신문기자로서의 민감한 예지가 발동한 모양이었다. 그는 방안으로 쓱 들어갔다. 주인이 도끼눈을 하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머리맡 베개 밑에서 빨조롬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는 집어 들었다. 무언가하고 고개를 빼고 보았더니 그것은 조그마한 치부책이었다. 일기장이라고 하기에는 뭐하고 손님들 받은 날짜와 횟수 화대를 기록해 놓은 공책인 것 같았다. 오오스마 기자가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주인을 돌아보았다.

삽화=김상규
삽화=김상규

-이빠오레가 누구요?

-이빠오레? 누군 누구요. 그 가시내와 한방 쓰던 년이지.

주인 여자가 이마에 쌍심지를 세우고 말했다.

-그 가시내가 누구요?

-누구긴 누구야. 시오레 년이지.

-시오레라면 아디카야의 아내?

오오스마 기자가 중얼거리며 심 작가를 쳐다보았다.

심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스마 기자는 아마도 치부책의 표지에서 이빠오레란 이름을 발견했던 모양인데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주인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이 여자는 어디 있소? 이빠오레란 여자 말이오?

-어디 있겠소. 그년하고 나간 지가 벌써 일주일째인데.

-같이 나갔단 말이오?

-그라요. 간다 온다 말도 없이 둘이 함께 나갔소.

오오스마 기자가 노트 갈피를 넘기며 대충 보더니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그것을 넘겨주었다.

-그래도 영어를 쓰는 것을 보니….

오오스마 기자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것을 받아 보았더니 그의 말대로 영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지 여기는 영어와 인도어가 공용이지. 필리핀, 몰타 등과 유사한 형태의 영어. 워낙 많은 형태의 지역 방언이 있어서 국가통합을 위한 공용어로 영어를 별도로 두고 있지만 고등교육 이하의 수준에서는 영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치 않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오오스마 기자의 말은 영어를 쓰는 것을 보니 그렇게 못 배운 애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이었다. 낡고 지저분한 표지 아랫단에 이빠오레란 영자 이름이 또박또박하게 쓰여 있었지만, 수준이 알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한 장 한 장 들춰 보았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맥주 몇 병 값에 하룻밤 몸을 던진 자국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때마다 화대는 대부분 포주의 손으로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대충 훑어보고 멍하니 섰는데 어느새 방을 나간 오오스마 기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시오레라는 여자가 이곳에 온 지 오래되었소?

-아버지 수술비 없다고 스스로 자원해서 들어온 년이요. 처음엔 참 순진했었는디 어디 이 바닥이 그래야지.

-그럼 아비가 딸을 판 거요?

그렇게 묻는 오오스마 기자를 보았더니, ‘아디카야란 사람이 판 것이 아니고’ 하는 말이 불쑥 나오려다가 목으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금수라 해도 아비가 딸을 팔 것소. 그년이 처음 지원해서 왔소. 나중에 아디카야라는 사내가 들락거렸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 남편이라면 헌금이라도 받아서 제 마누라 빼내려고 했을 테지 그러고 놔뒀것소. 시오레 년이 말을 안 들었소. 그년도 어린 것이 대단합디다.

-그럼 아디카야라는 사람이 누구요?

심 작가가 확인하려는 듯이 물었다.

-누군 누구요, 이석원이란 놈이지.

-이석원? 정말 그의 이름이 아디카야였소?

-그렇소. 그 작자 이름이 그 나라 말로 이석원인가 뭔가라고 합디다. 그놈은 이 바닥에서 소문난 놈이었소. 외국 놈이 겁 없이 뭐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놈인데 꼴에 별명이 고상도 하지.

-별명?

-그라우. 별명. 아디카야가 그거 아니오. 마음이 한없이 맑은 사람. 가난한 이의 수호신. 가난한 방랑자, 하늘의 원초불 아디카야라고.

-하늘의 원초불?

-그라요. 그자가 가난한 이들의 수호신이었다고 하오. 저 다리 밑에서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 밥해 먹이고 돈 떨어지면 노동하고, 뱀 잡아 팔고, 그래 배고픈 사람 밥해 먹인다고 합디다. 꼴에….

-그럼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오?

-그걸 내가 어찌 알것소. 얼마 전까지는 보이는 것 같았는데 말도 마쇼. 그놈 때문에 뛰쳐나간 년이 몇이나 되는데…. 아, 왜겠소. 창녀질 안 한다고 뭐 공장에서 일이라도 해서 그놈을 돕겠다고 순 도둑놈 같은 게…. 왜 그놈이 무슨 짓이라도 저질렀소?

오오스마 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돌아서는 그를 내가 잡았다.

-이대로 그냥 가려구요?

-왜요?

-더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해서…?

-아닙니다.

무슨 생각에선지 오오스마 기자는 그렇게 말하고 먼저 술집을 빠져나갔다.

이석원이 누군가? 바로 우리가 찾던 그 사람이지 않은가?

술집 골목을 벗어나면서 내가 나에게 물었다. 어쩐지 가슴속에서 시뻘건 불길 같은 것이 자꾸만 뻗쳐올랐다.

-이석원이 이곳을 드나들며 천사 짓을 하고 있었다. 그 말 아닙니까?

오오스마 기자가 내 심중을 읽은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게요.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군요.

넷이 술집을 나와 한참을 걸어가는데 미노도 술집이 보이지 않을 때쯤 오오스마 기자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심 작가가 눈치를 채고 그에게 물었다.

-왜 그래?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아서….

심 자가와 내가 동시에 돌아보았다. 이제 스물이나 되었을까? 허름한 옷을 걸치고 머리를 뒤로 묶은 처녀가 얼른 우리들의 시선을 피해 골목으로 몸을 숨기는 것 같았다.

오오스마 기자가 심 작가를 끌고 옆 골목으로 잽싸게 피했다. 나와 송 서화가도 그 뒤를 따랐다. 골목에 숨어 지켜보니까 처녀가 다가오며 두리번거렸다.

-우리를 찾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오스마 기자가 말했다.

-좀 더 기다려 봐요.

심 작가의 말을 들으며 잠시 기다리자 처녀가 골목 앞으로 내려가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를 찾습니까?

심 작가가 그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처녀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혹시 시오레를 압니까?

처녀가 머리를 숙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데리고 가까운 찻집으로 들어갔다. 차를 시키고 사정을 물었더니 그녀는 미도노 술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단다. 아버지가 자신을 술집에 팔았는데 난처한 일이 있을 때마다 시오레 언니가 잘 돌봐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계속〉

▶한줄 요약
이석원이 아디카야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에게는 현지인 아내가 있었고, 그의 아내는 술집에 팔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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