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인연(원인과 결과)

자신의 삶을 의심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가상현실)’에 등장하는 ‘네오(Neo)’는 자신의 삶에서 흥미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네오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해커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하는 일과 세상일이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무엇이 사실적인 삶인지 모르고 헤매는 중이라 의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모피어스(Morpheus)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가상이 아닌 사실을 경험한다. 영화 속에서 표현하는 가상의 세상과 진짜 세상은 그 표현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가짜 세상은 몸 어디에도 흠이 없지만, 진짜 세상의 몸은 목 뒷부분에 가상세계를 연결하는 장치가 있다. 그 연결선이 접합되면 가상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이 진짜 세상처럼 느껴지게 되어 있다. 온전히 의심하지 않으면 분간하기가 어렵다. 꼭 기계적인 곳이 가상세계이고, 경험한 곳이 진짜 세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네오도 사실을 목격하고 처음에는 믿지 못한다. 가상세계를 경험하면서 무엇이 사실이고 가상인지를 분간하지 못해 혼란을 겪는다.

장자(莊子)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비가 된 꿈을 꾸다가 깨어난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어찌 보면 우리는 ‘끝난 일인가(결과)’ 아니면 ‘계속되는 일인가(원인)’에 따라 마음의 상태가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네오는 사실을 발견하기를 바랐지만 그 사실이 나타나자 두려움에 떨며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한다. 네오는 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았는데 두려워했을까? 아마도 가상세계를 알았다는 것보다는 무엇이 진짜인가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원했던 그 마음으로 일어난 사실에 접근해야 하는데, 그 순간에 원했던 마음을 잊어버리고 오온으로 의심을 일으켰으니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온은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여 사실을 발견한 것에 환호하지 못한다. 누가 환호하고 두려워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은 완전히 다른 처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대부분 마지막 단계에서 사실을 알고도 완전히 환호하지 못하여 큰 앎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아닌 것을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이라고 믿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면 언젠가는 사실이 아닌 것에 다시 마음을 연결하게 된다. 왜냐하면 가상세계에는 달콤함이 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에서 배신자가 된 사이퍼(Cypher)는 이런 대사를 한다. “이게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입안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내 두뇌에 맛있다는 신호를 보내주죠. 내가 9년 만에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아요? 모르는 게 약이다.” 이 말처럼 수행을 오랫동안 지속하다보면 회의감이 든다. 매트릭스의 삶이 거짓인 줄 알지만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 이유는 좋은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모르는 채로 누리면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원인과 결과에 대한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에 나타난 마음이다. 현재의 상태를 좋은 것으로, 혹은 나쁜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면 원인과 결과에 대한 개념이 세워질 수밖에 없다. ‘왜 지금 상태가 좋지?, 왜 지금 상태가 나쁘지?’ 하면서 그 이유를 찾게 된다. 네오가 사실을 알고 난 다음, 가상세계에는 원인과 결과가 없고, 오직 그 가상세계에서 나오느냐, 나오지 못하느냐의 문제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행은 가상의 세계를 잘 분간하여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꿈에서 깨어날 때만이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계속 꿈꾸고 싶고, 꿈속에서 좋은 것과 편안한 것과 만족스러운 것을 찾고 있는 한,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다. 지금 나타난 것은 어떤 원인에 의하여 나타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나타난 것은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을 결과로 생각하게 되면 계속해서 원인을 찾겠지만 그렇게 찾는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는 사실을 이유 없이 받아들이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침묵은 지금 일어나고 사라지는 사실을 그대로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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