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여기 있었군 1

-맞네!

원주 스님이 적어 준 주소는 뉴델리역 부근이었다. 번지까지 정확히 적혀 있었다.

-정말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역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서서야 심 작가가 오오스마 기자에게 물었다.

-왜 기대되는가?

심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봐. 어째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무서운 건 자네의 환상일세.

-환상이라니?

-그에게는 그만큼 절실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래? 자네 혹시 이석원인가 뭔가 하는 자가 난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예사롭지는 않아.

-허허 정말 사람 미쳐가는 거 시간문제라니까. 왜 이러나? 정신 차려. 그 사람은 그림에 미쳐 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야. 아니 그것도 모자라 부처의 모습을 칼질하면서 거리의 방랑자가 되어 버린 놈이야.

-글쎄. 혹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미쳐가는군.

-이 사람아, 아무리 상황이 이래도 소위 기자라는 사람이 왜 그래?

-어쩐지 화가 나서 말이야.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그 이유가 뭔데?

-이 사람 모르니까 이러는 거 아냐.

넷이 뉴델리역으로 접어들었다. 심기가 편치 않은지 오오스마 기자나 심 작가는 더 말이 없었다.

원주스님이 준 주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집이 안 나타나는 거야?

내가 구시렁거렸다.

-보나 마나 번지도 없는 판잣집일 테지.

그렇게 말하고 동의를 구하듯 심 작가가 나를 쳐다보았다.

-지안 금어의 솜씨가 좋긴 좋았던 모양입니다. 집을 얻었다니.

내 말에 심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여기가 한국만 하겠어요. 그런 집이라면 몇 푼 가지 않을 집일 겝니다. 더욱이나 셋집이니. 이곳으로 들어와 절밥만 얻어먹을 수 없으니까 자기들 공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지요.

-일단 가봅시다.

내가 말했다.

이곳저곳 주소를 물으며 다니다가 어느 허술한 술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오오스마 기자가 먼저 문을 밀고 들어섰다. 고깃국 찌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름때가 절은 탁자를 닦다 말고 주인이지 싶은 뚱뚱한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누구시오?

-여기가 뉴델리 모리 3가 64번지가 맞습니까?

오오스마 기자가 인사를 꾸벅하고는 물었다.

-여기는 62번지요.

-그럼 64번지는 어디쯤 됩니까?

-글쎄 여기가 62번지니까 이 어디쯤 되것지요. 그런데 왜 그러오?

-혹시 이 부근에 한국 사람 아니, 아니 아디카야란 사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디카야요?

-네.

-아디카야? 글쎄요? 주위 사람이라면 내가 알 텐데….

-기억에 없나요?

-글쎄 처음 듣는 이름인데….

오오스마 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64번지를 찾아보자고.

오오스마 기자가 술집을 나오며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술집 위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새를 파는 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집에서 오오스마 기자가 삼십대의 새집 주인에게 주소를 물었다.

-여긴 60번지요.

새집 주인의 말을 들은 오오스마 기자가 술집에서 두 번째 집인 허술한 슬레이트집을 바라보았다.

-바로 저 집인 것 같은데…….

술집을 지나 허술한 슬레이트집 앞으로 다가갔다.

-술집이 64번지라면 이 집이 63번지 그리고 이 집이 맞지.

나는 오오스마 기자의 어깨 너머로 번지가 어디 낙서처럼 쓰여 있을까 하고 살폈는데 그런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낡고 엎드린 폐가나 다름없는 집이었다. 집 앞엔 쓰레기통 하나가 놓여 있었고 거기엔 영화 포스터가 너덜너덜 나붙어 있었다. 낡은 현관문 사이사이에 흙먼지가 새까맣게 끼어있었다. 한마디로 사람 사는 집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오오스마 기자가 먼저 문을 흔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셋집이 오죽하려고.

심 작가가 혀를 찼다.

-이 집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오오스마 기자가 되받았다.

-계십니까?

삽화=김상규
삽화=김상규

 

오오스마가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다시 오오스마 기자가 문을 흔들며 주인을 찾았다.

잠시 후 집안에서는 기척이 없고 옆집에서 자다 깨었는지 부스스한 모습의 여자 하나가 나왔다.

-누굴 찾소?

-여기 사는 사람을 좀 찾는데요.

심 작가가 대답했다.

-누군데 그 집 사람을 찾소?

-아, 관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역시 심 작가가 대답했다.

관이라는 말에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 나라 사람은 아닌데 관에서 나왔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집 사람 나간 지 오래됐소. 지금 빈집이오.

잠시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난감한 듯이 오오스마 기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여인에게 물었다.

-혹시 이 집에 아디카야라는 사람이 세 들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오오스마 기자를 올려다보았다.

-아디카야? 아, 그 한국 놈. 그 사람을 왜 찾소?

아! 당신들도 한국 사람? 하는 표정이 아주머니의 얼굴에 물살처럼 스쳤다.

-한국 놈? 아십니까?

오오스마 기자가 다시 물었다.

-알다마다요.

-그 사람 한국 이름 이석원 아닙니까?

-맞소. 여기서는 아디카야라고 부르지. 그 사람 여기 살고 있지 않소. 절에 살잖소. 간 지가 언젠데….

-그러면 여기 사는 사람은 누굽니까?

-그 사람 아내 아니오.

-아내?

-아디카야란 사람에게 아내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것도 모르고 찾아왔느냐는 듯이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아내 몇 살이나 되었습니까?

-보자, 이제 스무 살이나 됐나.

-그럼 자식은요?

송 서화가가 성질 급하게 짚었다.

-그건 모르겠소. 언젠가 아디카야란 그 사람이 아내라며 데려다 놓았으니까.

-이 집 세 들어 사는 사람 절에 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오스마 기자가 물었다.

-본시 얀카 네가 살았는데 아들과 아비가 사고로 죽었잖소. 그 어미가 혼자 살다가 못 살겠다며 요양원으로 들어갔는데 아마 집을 그놈에게 세놓은 모양이오. 그놈이 아디카야였소. 그자가 어느 날인가 아내라며 데려다 놓았단 말이오.

-그럼 그 여자가 이 집을 지키고 있다 그 말인가요?

-그렇지. 그런 셈이지.

-그런데 집을 비우고 있다면서요?

-맞아요. 아디카야란 사람은 얼마 전에 왔다 갔는데….

-그래요?

오오스마 기자가 되뇌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잠시 후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지금 그 여자 어딨는지 모릅니까?

-근데 댁들은 누구요? 관에서 나온 게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은 한국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 여인의 얼굴에 흘렀다.

-아, 한국!

안다는 듯이 여자가 말에 힘을 주었다.

-한국 아십니까?

-많이 와. 쪽바리들. 짱게들. 꼬레안….

-꼬레안?

송 서화가가 말이 이상한지 되뇌었다.

-한국 사람을 부르는 그들만의 은어입니다. 짜다, 너절하다는 뜻으로 말을 비튼 것입니다.

-아이고 한국 사람들 이곳으로 여행과 얼마나 짜고 너절하게 굴었으면…. 이웃 나라로 돈다발 들고 섹스여행 잘만 가드라만…. 하기야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지. 영혼의 나라? 아이고 영혼도 좋지만, 너무 지저분하다. 하기야 본토인들보다 여행객들이 더 득실대는 곳이니.

-왜 무슨 사고라도 난 거요?

송 서화가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물었다.

-사고는 아니고 뭐 좀 알아볼 일이 있어서요.

나의 말에 여인이 머리를 홰홰 내저었다.

-그 사람은 만나지 못할 것이오.

-네?

오오스마 기자가 되물었다.

-그놈이 그 여자를 팽개쳤다는 말이오. 죽일 놈이야.

-팽개치다니요?

-집을 빼려고 해도 빼지지 않자 제 아내를 저노므 사창가에다 팔아먹지 않았겠소.

-아내를 팔아요? 그 여자 한국 여자가 아니었습니까?

-한국 여자?

여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이곳 사람이야. 재주도 좋지. 아주 제 나라처럼 활개치고 돌아다니니. 내 보다보다 그런 금수는 처음 보았소.

이곳이 지옥이긴 하지만 본토인도 아니고 이곳 여인을 아내로 얻어 사창가에 팔다니?

-그 사창가가 어딥니까?

이게 말이 되나 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물었다.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얼마 전에 그놈이 찾아왔더구먼. 이 집에서 좀 살았나? 놈은 눈만 뜨면 밖으로 나돌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그놈이 사라지고 난 뒤 하루는 시장 갔다 오다가 그놈 아내를 저 시장통 술집에서 만났지 않았겄소.

-그런데요?

-왜 그년이 거기 있는지 술집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제 남편이 팔아먹고 갔다는 거요.

-그럼 그 여자 이름은 무엇이었습니까?

-시오레라고 불렀소.

-시오레?

뇌까리며 생각해보니 한국 여자 이름이 아니었다.

-그럼 지금도 거기 있나요?

내가 이어 물었다. 〈계속〉

▶한줄 요약

마침내 이 기자 일행은 이석원의 행방을 알아내고 찾아간다. 현지에서 이석원은 아디카야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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