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미 편역 / 해장각 / 1만6000원

불교가 한 나라에서 번성하기 위해선 왜곡되지 않은 부처님 말씀과 이를 따라 정진해 깨달음을 얻어 범부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자가 필수적이다. 테라와다불교의 맥을 이은 미얀마가 불교국가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면면히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여러 스승들의 노력 덕분이다.

<미얀마 아라한의 수행>은 20세기 전후 미얀마 승려로서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는 최고의 스승 9명의 법문을 모았다. 편역은 1996년 미얀마로 건너가 마하시·쉐우민·때인구·모곡 센터 등에서 직접 위빠사나를 수행하고 마하시 마하간다용, 만달레이 빠리얏띠 사사나 대학 등에서 아비담마와 빠알리 삼장을 수학한 강종미 박사가 맡았다. 이번 책은 그동안 역자가 접한 큰스님들의 법문 중 위빠사나 수행에 요긴한 법문들만 추려 모은 것이다.

위빠사나(vipassanā)의 위(vi)는 ‘특별하게’, 빠사나(passanā)는 ‘본다’는 뜻이다. 생멸하는 물질과 정신을 관찰해 무상·고·무아를 아는 수행법으로, 초기경전에는 부처님께서 직접 수행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디 사야도의 법통 제자 위빠사나빠라구 사야찌(1891~1952)는 위빠사나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항상하지 않고 변하는 성품(실재)만을 보게 되면 안심할 수 없고 두려워진다. 위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끝없이 소멸하고 사라지는 성품에는 사람, 중생, 나라고 여길 만큼 견고한 본체가 없다. 물질 더미를 들여다보면 미세한 입자뿐이다. ‘액체, 고체, 물질, 형상이란 어디에도 없고 오직 성품뿐이구나! 이것 역시 제 일을 마치면 소멸되어 흔적조차 없어지는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알 때 진정한 믿음이 자라난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쉐우민 사야도(1913~2002) 역시 ‘생멸’을 항상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알아차릴 대상(물질)과 알아차리는 정신을 의지처로 일어날 뿐 어디에도 ‘나’는 없다는 것. ‘내’가 아는 것이 아니기에 일어나는 실재를 그대로 알 때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말한다.

이처럼 위대한 수행자들의 법문이지만 위빠사나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수행법은 아니다. 책에 소개된 순룬 사야도(1877~1952)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마흔이 넘도록 글을 읽지 못했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수식관을 배워 수행하면서 마흔 셋의 나이에 출가했다. 위빠사나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9명의 스승들의 이야기에서 서로 통하는 핵심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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