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적 은유로 화쟁의 가치를 묻다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연작
박문영 작가 장편소설 원작으로 
도시 ‘구주’ 속 혐오, 갈등 다뤄
누구나 피해자, 가해자 될 수 있다

2023 SPAF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연작 연극 〈지상의 여자들〉 한 장면.
2023 SPAF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연작 연극 〈지상의 여자들〉 한 장면.

많은 사람들이 압박하는 사이에서 홀로 몰리던 사람이 아주 절박한 표정으로 달려 나와 나누어주며 동참을 호소하는 이런 유인물을 받았다.

“고통을 주는 존재는 누구든 사라질 수 있어요. 남자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는 누구든 사라질 수 있습니다.
절대 남자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남자가 다 사라지고 나면 여자에게 고통을 주는 여자가 사라질 겁니다. 
여자에게 고통을 주는 여자가 사라지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인간이 사라질 겁니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인간이 사라지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동물이 사라질 겁니다. 우리 모두는 다 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살의를 가지고 남을 아프게 한 게 보여지면 그게 누구든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귀합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잠시만 귀를 기울여 주세요!”

응? 이게 무슨 소리지? 거꾸로 아니야? 남자들이 왜? 지금 사라지고 있는 건 여자들인데? 그렇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연극이다. 

올해 10월 7일부터 12일까지 2023 SPAF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연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극단 ‘돌파구’의 〈지상의 여자들>이라는 SF 연극에서 한참 극중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에서 몰리고 몰린 등장인물이 객석으로 뛰쳐나와 관객들 사이를 누비며 나누어준 유인물에 담긴 호소문이다. 

박문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은 원래는 지난해 10월 27일부터 10월 30일까지 2022 SPAF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온전한 무대를 다 갖추기 전의 과정극인 ‘트라이아웃’ 낭독극으로 먼저 관객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때 창작극의 과정을 함께 한다는 기대감으로 예매를 하고 기다렸으나 볼 수 없었다. 공연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연극이 아니라 현실에서 정말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SNS에서, 뉴스에서, 또는 가족과 통화를 하다가. 그것도 서울 한가운데, 대통령 집무실 바로 지척에 있는 이태원에서. 

2022년 10월 29일 밤, 원래는 축제였어야 할 자리가 참사가 되어버린 바로 그 사건이 벌어졌다.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날을 기리는 켈트 족 문화가 가톨릭 종교와 결합해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기리는 축일이 되고, 지역적 전통이나 종교적 제의와 상관없이 재밌는 축제를 즐기는 문화가 된 할로윈이 이태원 지역을 관할하는 지자체가 내세우는 지역 대표 브랜드 페스티벌이 된 자리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죽어가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렇게 많은 목숨이 사라졌고, 여러 일들이 멈췄다. 연극도.

이제 세상은 다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멈췄던 연극은 그때 준비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채워 낭독극이 아닌 온전한 무대 공연으로 관객을 만났다. 공연이 지연된 만큼 무대는 더 치열했고, 치열한 무대보다 세상은 더 험악해진 상황에서.

하얗게 비어있는 벽 안에 펼쳐지는 〈지상의 여자들>은 서울에서 서너 시간 거리에 있으리라고 설정된 ‘구주’라는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도시에는 결혼 이후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력단절 작가도 있고, 평생 주정뱅이 남편에게 맞고 살아가면서도 집안 망신시키지 말라고 친정 어른들에게 단속 당하며 살아온 중년 여성도 있고, 필리핀이나 베트남 같은 외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도 있고, 그 결혼이주여성들을 며느리로 맞은 사람들도 있고, 연애들 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러니까 평범한 세상이다. 남자랑 여자랑 걸핏하면 다투게 되는 것까지.

그 도시에는 강도 있다. 오염된 물에 사는 자라가 산 채로 썩어가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강. 동물원도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야 할 동물들을 잡아다가 평생 철창 안 시멘트 바닥에 살게 하며 사람들이 재미 삼아 찾아와 구경거리로 가두어 두는 생명의 감옥인 그런 동물원.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남자들이 사라진다. 어머니 앞에서 필리핀 출신 아내를 두들겨 패던 남자가, 술에 취해 딸 앞에서 아내를 윽박지르던 남자가, 돈으로 성을 사면서 성노동자 여성에게 가학적 행위를 하려던 남자가. 그 남자들은 여자를 상대로 화를 내다가, 주먹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눈앞에서 빛으로 사라진다. 안 돌아온 것이 아니라, 집을 나간 것이 아니라 그냥 사라졌다고 경찰에 신고를 해봤자 참 믿기 힘든 현상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실종으로 여겨졌던 이 현상이 거듭되면서 그 현상의 원인이 분노와 폭력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여자들이 변해간다. 당장 사라진 남자 때문에 걱정도 하고 신고도 하지만, 점점 나쁜 남자들이 사라져가니 기꺼워하는 여자들이 도시의 주류가 된다. 분노하는 남자들은 도시를 떠나거나 사라지거나. 

그러자 적어도 이 도시에서 만큼은 남자들이 조심하기 시작한다. 세상이 좀 안전해진다. 그러면서 새로운 분노, 새로운 폭력이 드리워진다. 사라진 남자들을 걱정하거나, 다른 지역에 간 남자를 기다리거나, 여전히 남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여자들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무대를 지배하는 배우들은 원래 남자였거나, 남자 역할이었거나, 동물이었던 인물들까지 모두 여자가 된다. 그때 한 여자가 무대를 벗어나 객석을 가로지르며 바로 글머리에 인용한 내용이 담긴 호소문을 관객들에게 나눠준다. 이런 세상을 원한 거였냐고 묻는다.

마침 일 때문에 서울에 갔던 그 여자의 남편이 돌아온다. 하필 결혼 생활 내내 ‘아들, 아들’ 노래를 부르며 닦달을 하던 시어머니와 함께. 시어머니를 환대하지 못하는 아내 앞에서, 자기중심적인 남자의 태도 앞에서 여자가 돌아선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아내의 거부 앞에서 그 남자는 화를 내지 않으려 한다. 화내는 대신 웃으려 한다. 커다란 무대를 분노가 아닌 오직 ‘웃는 모습’으로 꽉 채우려 안간힘을 쓴다. 그 남편의 웃음은 기의가 담기지 않은 완전한 기표로서의 표정이다. 

흔하디 흔한 폭력과 혐오를 초현실적인 상황 안에서 기괴하게 펼쳐 보이는 〈지상의 여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거울이고, 무대 안의 인물들은 경계를 넘나드는 뭇 중생이다. 배우들은 고정된 한 인물, 한 역할이 아니라 여자였다가 남자였다가, 동물이었다가 사람이었다가,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면서 내가 되고 당신이 된다.

분노와 혐오가 빚어내는 무대는 구주라는 가상의 도시이기도 하고, 눈 먼 자들의 도시이기도 하고, 성소수자들과 장애인들을 밀어내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장벽이기도 하고, 이태원에서 희생된 청년들과 유가족들을 조롱하던 혐오의 광장이기도 하고, 인간 중심으로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지금의 지상 지구이기도 하다.

딱 이태원 참사 즈음이었던 2022년 11월,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화쟁위원회는 ‘차별과 혐오를 넘어 자비와 화쟁으로’라는 주제로 집담회를 열어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평등과 평화로 가는 과정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의 중요성을 논의했다.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지 1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제정되지 못하는 것은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한 반대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화쟁위원회는 ‘모든 것은 존엄하고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는 화쟁의 힘’, ‘청년세대의 젠더 갈등, 부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모든 중생은 평등하기에 차별이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주제로 불교가 사회적 의제에 방향을 제시해 책임 있는 종교로서 공신력과 위상을 높이는 길을 제시했다. 

연극 〈지상의 여자들>은 무대에 세워진 벽과 배우들의 몸에 가득가득 채워놓고 우리에게 묻는다. 화쟁과 공존의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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