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왜’ 부처되는 길 걸으셨는지 살펴야
이 질문, 삶의 전환점 제공하고 있어

부처님, 괴로움 만드는 현실 직시하고
그 굴레에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현실 떠나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없어 

현실 직시하고, 괴로움 조건 회피 않고 
바라보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를 가르치다 보니,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 질문에 편안하게, 그리고 잘 답변해 주시는 분들도 꽤 많은 듯하다. 혹은 그것에 답변을 잘하지 못하는 것에 당황하지 않는 분들도 한편으로는 많은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붙일 수 있겠지만, 필자는 불교의 출발점을 보자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것인지, 좀 더 훌륭한 수행자, 훌륭한 불자가 될 것인지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부처님이 어떤 수행을 하셨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살핀다. 하지만 부처님이 ‘왜’ 부처님이 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그리 활발한 것 같지 않다. 

필자는 그 지점 곧 ‘왜’ 부처가 되는 길을 걸으셔야 했는지의 출발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은 ‘왜’ 부처가 되는 길을 걸었는가? 이 질문이 우리의 삶을 부처로서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제공한다. 이 질문은 다시 ‘부처님은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무엇을 못견뎌 하셨기에 부처가 되는 길로 나아가셨던가’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거기에서 태자 싯다르타가 부닥쳐야 했던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 부처님께서 남기신 많은 답변-경전 안의 가르침들은 그것이 약육강식의 현실, 신분과 계급에 따른 삶의 불평등 등에 있음을 알려준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편으로는 당신이 부닥쳐야 했던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현실의 조건, 곧 괴로움의 굴레를 벗겨내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당신이 부닥쳤던,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굴레에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현실의 괴로움을 회피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관념적 답변에 몰두하지도, 관념적인 답변을 만들어내지도 않으셨다. 어쩌면, 아니 철저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맞서는 현실주의자로서의 태도로 일관하셨다. 

우리가 부닥치는 현실에도, 삶을 구속하고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현실의 조건들이 있다. 우리가 불교, 부처님이 갔던 길을 쫓아가는 불자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따라서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조건들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한다. 현실의 괴로움은, 그리고 그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조건들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다양한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조건들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 다양한 현실의 괴로움과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조건들을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고성제)라는 한마디로 단순화시키면 안 된다. 

현실의 다양한 괴로움과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조건들에 대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직면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의 품에 의지하여 냉큼 도망가는 회피로는 현실의 괴로움을 해결할 수 없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 각자 스스로가 부닥쳐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을 만들어낸 조건들을 분석하고, 그 조건들을 해소할 것을 요구한다. 그 ‘현실’이라는 지점을 떠난 곳에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부처님이 제시한 길을 따랐던 수많은 큰스님들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반복해서 일렀다. “지금, 여기에서”라고.

교리의 해석이나 교리의 명칭을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삶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에 존재하는 다양한 괴로움과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조건들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라는 단호한 명제는 우리 불자들에게 요구한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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