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의 투사가 낳은 ‘자해’

고타마 태자 탄생에 기뻐한 숫도다나
전륜왕 만들고 싶은 마음이 곧 ‘투사’

중학생 A는 마른 몸에 얼굴이 하얗고 눈이 큰 여학생이었다. 묻는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힘이 없는 목소리로 아주 짧게 말을 하고선 고개를 푹 숙였다.

A가 상담을 위해 찾아온 이유는 커터(cutter)이기 때문이다. 가는 팔과 허벅지 그리고 손목에는 커터칼과 연필로 그은 상처가 있었고 흉터 위에 반복해서 그은 상흔은 꽤 짙었다. 처음 상담소를 찾았을 때 A의 엄마는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큰 키에 다부진 모습의 엄마는 딸과는 대조적으로 목소리가 컸고, 진하게 그린 아이라인이 인상을 더욱 강해 보이게 부각했다.

A는 전교 1등과 3등을 오고가는 우등생이었다. 학교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고 친구들과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고됐다. 아버지는 대학교수였고 중산층으로 경제적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A는 뛰어난 성적에도 자신은 형편없고 살 가치가 없다잘난 것도 없고 살 이유가 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언제 자해를 하게 되느냐는 질문에는 집에 돌아가면 숨이 막힐 때가 있어 그때마다 한다고 했다.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자해하는 친구의 경험담이 계기가 됐다.

자해의 공식 학술명은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또는 비자살적 자해(nonsuicidal self-injury). 자살할 의도가 없으나 고의적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행동을 한다. 분명 처음에는 자살 의도가 없지만 자해도 중독처럼 습관화되어 반복하게 되면 나중에 자살을 시도할 위험도가 아주 커진다.

자살 의도는 없는데 또 다르게 보면 자살을 할 의도를 가진 모순적인 모습이 있다. 분명한 것은 자해러(자해하는 사람의 신조어, 자해+er)가 처음 자해를 하는 건 살기 위해서다. 많은 자해러들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조절하고 싶어서 상처를 내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는 느낌을 얻는다고 하며 답답한 것이 좀 풀어지는 해방감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A가 처음 자해를 시도한 건 처음으로 영어 시험에서 80점을 맞은 날이었다. 평소보다 낮은 성적에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A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벽에 머리를 찍었다. A는 그렇게 엄마에게 맞은 날 처음 커터칼로 허벅지를 그었다. 엄마는 A가 태어나고 6개월 뒤부터 외국인 베이비시터를 고용해 영어 교육을 시켰다. 당연히 영어유치원을 보냈고 과외비만 중형자동차 값을 들였다고 했다. 엄마는 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영어 과외뿐 아니라 유명 학원 강사를 과외 선생으로 고용해 따로 집에서 공부를 시켰다. 몸이 약한 A가 공부에 지쳐 힘들어하면 온갖 보약을 해서 먹였고, A는 중학교 입학 이후 새벽 2시 전에 잠을 잔 기억이 없었다.

자해러들의 자해 이유는 다양하지만 A는 분명 엄마의 가혹한 교육 방식이 문제였다. 엄마의 기준에 맞출 수 없었던 A는 스스로 벌을 주며 견딘 결과가 자해였다. A의 엄마가 그토록 혹독한 이유는 공부 때문에 겪은 수치스러운 과거 경험 때문이었다. 엄마의 형제는 모두 뛰어나 좋은 대학에 갔지만 오남매 중 막내였던 엄마만 유독 성적이 좋지 못했다. 엄마는 발레를 했고 이후 교수인 남편과 결혼을 했지만 시댁 식구들도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한 탓에 무시를 받았다. 엄마는 자신이 못다 한 꿈을 이뤄줄 대상으로 A를 선택했다. A가 유명대학에 들어가면 자신의 서러움을 씻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A의 엄마와 비슷한 사람은 불교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고타마 붓다의 아버지 숫도다나 왕은 위대한 고타마 붓다를 아들로 둔 행운의 사람이었다. <고타마 붓다의 생애>에는 붓다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기가 태어나자 사람들은 아버지 숫도다나 왕에게 알렸다.

왕이시여, 기뻐하십시오. 왕자님이 태어났습니다만약 이 아들이 커서 가계를 물려받는다면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어 사방을 정복하게 될 것이며, 백성들의 행복을 지켜 줄 것이며, 얻기 어려운 일곱 가지 보물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기가 집을 떠나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되면, 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 붓다가 되어 세상을 덮고 있는 미혹의 장막을 거둘 것입니다.”

숫도다나 왕은 저 예언을 듣고 자랑스러움과 벅차오름을 느꼈을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보상받는 듯한 기쁨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인도의 작은 왕국이었던 석가족의 서러움을 벗어던질 기회가 온 것이다. 숫도다나 왕은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추위나 더위나 먼지나 이슬이나 어떤 것으로도 아기를 울려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내렸고 계절을 날 수 있는 궁전을 3개나 세웠다. 또 재판을 할 때 왕자가 법률에 관해 생각하면서 정의롭게 판단하는 힘을 기르도록 늘 옆에 두었다. A의 어머니와 비슷한 모습이다. 전륜왕이 되기를 바라는 왕의 심정이 보인다.

심리학 용어로 이런 모습을 투사라고 한다. 투사는 내가 무엇인가를 원하고 이루고 싶은데 상대방도 원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A의 엄마가 공부를 스스로 잘하고 싶었기에 집요하게 노력한 것이다. 엄마의 결핍을 아이에게서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투사적 동일시는 안타깝게도 아이를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된다. 부모가 아이를 아프게 하지만 정작 부모는 스스로 알 수가 없다.

숫도다나 왕은 위대한 왕이 되고 싶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왕이 되고 싶었기에 고타마 붓다를 왕으로 키우고자 했다. 그 결과 아이를 정작 망치는 것은 부모이면서 교육이란 이름으로 학대하게 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자녀 가운데 유독 마음에 안 드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문제임을 먼저 알아차리시길 바란다.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취지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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