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내리던 ‘빛섬’ 갤러리서 첫 만남
서로의 예술세계에 대해 깊은 공감대
갈등의 시대, 화합·통섭 메시지 전해

원경 스님·김인중 신부 지음/ 파람북/ 1만 8500원
원경 스님·김인중 신부 지음/ 파람북/ 1만 8500원

북한산 형제봉 아래 ‘심곡암’이라는 산사가 있다. 말 그대로 가파르고 깊은 계곡에 자리한 소담스러운 암자이다. 이곳의 주지가 원경 스님이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무료급식소(사회복지원각)를 운영하고 조계종의 중책을 맡아 늘 분주한 스님은 차향 은은히 퍼지는 고요한 암자에서 시(詩)를 쓰며 수행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유럽에선 이미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화가인 프랑스 도미니코수도회 소속 김인중 신부. 프랑스 혁명 이후 최초로 노트르담 대성당 전시(2003), 프랑스 문화예술 공훈 훈장 오피시에 수상(2010),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 회원 추대(2016), 프랑스 앙베르 시 ‘김인중 미술관’, 이수아르 시 ‘김인중 상설전시관’ 건립(2019) 등 김인중 신부의 이력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다. 그러나 하얀 수도복을 입고 적막 속에서 기도와 그림으로 수행하고 있는 수도자이다.

화가 김인중 신부의 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시인 원경 스님과 김인중 신부.
화가 김인중 신부의 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시인 원경 스님과 김인중 신부.

원경 스님과 김인중 신부가 만났다. 첫 만남은 청양의 ‘빛섬’ 아트갤러리에서였고 축복과도 같은 ‘꽃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이미 서로의 작품에 대해 깊이 교감하고 있던 던 그들은 만남과 동시에 예술 수행자로서의 존경과 우애를 싹 틔었다. 종교와 세대, 문화의 차이는 어떤 장벽도 되지 않았다. 시인 스님과 화가 신부의 예술로서의 수행의 여정과 만남의 결과물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은 그렇게 시작됐다.

화중시 시중화(畵中詩 詩中畵). 일찍이 동서고금의 많은 선인이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는’ 시와 그림의 일체를 찬양했다. 문학과 미술이 이질적인 장르가 아니며, 함께 어우러질 때 아름다움의 크기가 더욱 증폭된다.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은 그런 미학을 현대적 감각으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한국이 나은 세계적인 화가인 김인중 신부와 승려 시인 원경 스님이 종교 간의 화합과 사상적 융합으로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 시대 속에서 자애의 덕목을 구현하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김인중 신부는 ‘꽃의 시인’ 원경 스님의 시 세계에 깊이 공감했고 원경 스님은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의 구도자적 삶에 존경과 섬김으로 그림 곁에서 마음의 시를 썼다. 김인중 신부의 작품을 실물로 접한 원경 스님은 “상승하는 불꽃처럼 일렁이고 산곡에 내려앉은 새벽안개처럼 고요히 스미는가 하면 풀꽃을 건드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오묘하고 섬세한 선율을 보여준다. 때론 장엄하고, 때론 숭고하며, 때론 온화하다. 언뜻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의 시구처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 뭇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했다.

차(茶)와 도(道)가 둘이 아니듯, 그림과 시도 둘이 아니다. 원경 스님의 시편들은 대부분 김인중 신부의 작품을 대하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영감을 포착해 쓰인 것들이다. 팔순이 넘도록 고독과 고난의 수행을 이어온 수행자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히 알려진 이해인 수녀의 찬사가 담겨있다. 김인중 신부와의 자매적 우정이 담겨있는 글이 곱기만 하다. 도종환 시인의 원경 스님을 향한 찬사도 아름답다.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은 추천의 글을 통해 “매우 희귀하며 아름다운 책이다. 종교, 예술, 출판의 영역을 떠나 우리 시대의 큰 자산이라 할 만하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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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담긴 화폭 속에서/ 기도하는 소망의 꿈이 푸르러/ 삶의 의욕과 열정을 안겨주기에//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라- 「푸른 꿈」 부분

초하의 녹음향에 취하여/ 잠 못 드는 한 밤의 심연 속에서는/ 꽃보다 꽃 그림자가/ 달빛보다는 달빛 그림자가 아름답습니다/ 님께서/ 어둠을 안고 빛그림에 취하여 춤을 추는 것도/ 그렇듯 아름답습니다- 「취하여 사는 삶」 전문

속진을 떨친 그물에 걸림 없는 바람처럼/ 그 숨결은/ 빛을 나르는 바람이 되시기를// 가닿지 못할 곳 없는 새의 날개처럼/ 그 빛깃이/ 가없는 자유의 나래 펼치시기
- 「님을 위한 기도」 부분

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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