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보스턴 하늘에 태극기 휘날리다

​​​​​​​1947년 보스턴 국제 마라톤 대회 
참가한 서윤복 선수 실화 영화화
해방 후에도 ‘난민국’ 취급 받던
안타까운 한국 현실 먹먹히 그려

108배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108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고약한 지를 30배를 해도 1/3이 안되고, 50배를 해도 절반이 안 되고, 100번을 엎드렸다 일어나도 아직 남아있는 그 어려움을. 
마라톤도 그렇다. 출발이 좋아도 계속 1위가 아니고, 10㎞를 달려도 1/4이 안되고, 20㎞를 달려도 절반이 안되고, 겨우겨우 40㎞를 달려도 막판 스퍼트로 순위가 바뀌는 아슬아슬한 경지. 수행을 하듯 자신과 길 사이에 어떤 화두를 끝까지 잡아야만 이룰 수 있는 완주의 길. 거기서 메달을 딴다는 것은 화두를 깨우치는 것과도 같은 수행의 길이다.

뜀박질. 급하게 뛰어서 달려가는 일. 우리는 어딘가로 움직이기 위해 걷는다. 걷지 않고 뛰는 건 힘도 더 들고, 숨도 더 차니 참을 수 없을 만큼 반갑거나 급한 일이 아니면 부러 뛰지는 않는다. 아마도 사람이 오로지 뜀박질 그 자체를 목적으로 가장 길게, 전력을 다해 뛰는 일인 ‘마라톤’의 유래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리스가 당대의 최강대국 페르시아와의 오랜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둔 치열한 전장 마라톤 전투에서 쉬지 않고 아테네로 달려갔다는 그리스군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린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것이 오늘날 육상 종목이 된 ‘마라톤’의 기원이다. 이 전령이 쉼 없이 달려 승전보를 전하고 기력이 다해 죽었다는 이야기는 마라톤의 전설처럼 전해져 왔고, 마라톤은 그만큼 위험하지만 ‘국가적’ 소명을 담은 스포츠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사실 페이디피데스가 이렇게 죽을 힘을 다해 달린 까닭은 동맹국인 스파르타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서였고, 자신의 임무를 다해낸 다음 아테네로 잘 돌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 행사였던 올림픽을 국제적 행사로 다시 만든 쿠베르탱 남작의 지인이었던 프랑스 문헌학자가 올림픽과 마라톤을 보다 극적으로 대중에게 알려 성공적인 이벤트로 만들기 위해 이 이야기를 영웅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사실과 후일담, 진실과 각색은 처음부터 마라톤의 운명과도 같았고, 아마도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도 이처럼 금메달 시상대 이후 극적인 드라마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열렸던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뿐 아니라 세계 신기록을 세운 놀라운 선수였다. 뿐만 아니라 함께 달려 동메달 시상대에 올랐던 남승룡 선수 또한 한국인이었으니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에게 이때의 마라톤은 그저 운동 경기에서 거둔 승리가 아니라 민족적 자부심과 제국주의 침략자에게 맞설 의지를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영웅적 뜀박질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근대 올림픽은 시작부터 국가 대항전이었다. 식민지가 된 나라와 민족은 침략제국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침략국의 선수로서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다. 당연히 손기정 선수도 남승룡 선수도 일장기를 달고, 일본 선수로서 달렸고, 시상대에 섰다. 시상식에서 울리는 국가도 기미가요였다. 

선수 개인이 그 상황에 놓인 것은 아무도 트집 잡을 수 없는 국제적 현실이었다. 그러니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시상대에서 기미가요를 들으며 일장기를 단 가슴을 내밀고 서 있었어도 조선 민중들은 나라 잃은 설움과 영광을 도둑맞은 아쉬움으로 가슴이 뻐근하더라도 그들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선일체라며 실력만 뛰어나면 조선 선수를 대표로 내보낼 정도였던 일본은 무려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운 선수를 일본의 우수성을 대표하는 홍보에 앞세우면서 최고의 보상과 지위를 주면서 일본 육상을 발전시킬 영웅으로 떠받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뻐근한 식민지 국민의 울분을 뜀박질 한 발 한 발로 밀어낸 손기정 선수는 시상대에서 우승자에게 꽃다발 대신 선사한 월계수 화분으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렸고,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웠다. 그에 대한 일제의 보복은 혹독했다. 

강제규 감독의 신작 〈보스턴 1947〉은 바로 그 보복으로부터 시작하는 영화다. 가장 영광된 업적을 이루고 돌아와 라디오 방송국에서 마이크를 앞에 놓고 총독부가 지시한 대로 일본 제국의 감시를 받으며 앞으로 ‘마라톤’을 그만두겠다는 방송을 하는 손기정(하정우)의 목소리나 표정은 이미 전세계적 성취를 이룬 영웅의 풍모가 아니다. 압제 앞에서 한 풀 꺾인 자괴감이 방송국을 둘러싼 일제의 감시와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라디오 부스를 보며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에서 마라톤 평원을 달렸던 병사의 목적이 후대에 스포츠 외교를 위해 역사적으로 왜곡되고 전해졌던 상황처럼, 손기정 선수 개인의 성취와 영광은 자신의 목소리로 지워지고 중단된다.

국사 시간에도 배웠던 베를린 올림픽의 영광 이후 이런 식으로 손기정 선수가 억압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인 한 번의 이벤트가 그 이후로 어떤 족쇄로 지속되었는지는 당대에도 그렇고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도 대부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가 언제인데 영화나 드라마로 이 기막힌 이야기가 만들어진 적도 없었다.
그러면서 〈보스턴 1947〉은 역사나 대중문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시대, 주목하지 않았던 갈등, 깊이 돌아보지 않았던 사람과 사람 사이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1947년이라는 시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날부터 1948년 8월 15일 남한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까지의 3년 사이의 시대. 이 시대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이때 우리나라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던가? 이 당시 우리나라의 국제적 입지는 어땠던가? 이 시기 사람들은 자신들을 어떤 나라의 어떤 국민으로 생각했는가?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이미 보여준 것처럼 시대를 재현하는데 아주 촘촘하게 공을 들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7년의 시대공간은 마치 당대로 되돌아간 듯 섬세한 고증과 연구를 바탕으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아마도 영화 제작에 가장 많은 비용은 이름값 큰 주연 배우들보다도 이 시대적 재현을 만들어내는 VFX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스크린에 펼쳐지는 1947년의 조선과 미국은 사실적이다.

일제에게 이미 한 번 의지를 꺾이고 영광을 빼앗긴 손기정은 술에 기대 하루하루를 버티는 주정뱅이가 되어있지만, 그 좌절을 알지 못하고 영광만 기억하는 조선 민중들은 손기정을 기념하는 마라톤 대회를 열며 들떠있다. 

식민지를 갓 벗어난 조선, 아직 독립국가 아닌 조선,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적 국제 질서를 새로 짜려는 패권의 틈바구니에서 남쪽은 미군정이, 북쪽은 소련이 신탁통치라는 이름으로 지배하는 조선. 그 어렵고 서러운 조선에서 손기정의 이름을 건 대회는 희망과 미래를 꿈꾸게 하는 의지의 발판과도 같은 행사였을 것이다. 

병든 어머니를 부양하면서 대학을 다니느라 냉면집 배달부로 고단하게 여기저기 하루 종일 뜀박질하는 고학생 서윤복(임시완)과 같은 청년에게는 더 각별한 희망과 꿈. 왜냐하면 마라톤 우승자에게는 민족의 영웅인 손기정이 직접 메달을 걸어주는 영광도 있고, 무엇보다 상금도 있다고 하니까.

그런데 웬걸. 숨이 치받치도록 달려 우승을 했건만 영웅인 줄 알았던 사람이 제대로 된 축하나 격려는커녕 술 냄새 풍기며 뒤늦게 와서 대충 형식적 시상만 하고 지나친 건 그렇다 치고 기대했던 상금조차 없다니!

그런 손기정과 서윤복 사이에 남승룡이 있다. 여전히 마라톤 꿈나무를 이끄는 지도자이면서 아직도 현역으로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함께 달려 동메달을 걸었던 그 선수. 한 사람은 의지가 꺾여 냉소적이고 한 사람은 의지를 이룰 여건이 못 되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다시 올림픽의 영광을 이뤄내려는 사람.

베를린 이후 전쟁으로 열리지 않았던 올림픽이 런던에서 개최될 1948년 바로 전 해인 1947년. 무려 두 명의 메달리스트, 심지어 한 사람은 세계 기록 보유자인데 조선에는 출전자격이 없단다. 베를린의 기록도 영광도 모두 일본의 것이니 조선은 세계대회 기록이 없어서 출전권이 없다는 것이 어이없는 스포츠 국제 권력 앞에서 손기정과 남승룡, 서윤복은 조선의 이름으로 출전권을 새로 따내야 한다. 그래서 출전해야 하는 것이 바로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이 영화는 이 과정에서 국제질서란 얼마나 차갑고 폭력적이며, 그 안에서 개인은 또 얼마나 휘둘리고 꺾이기 쉬운 존재인지, 그러나 그 개인들이 좌절 대신 의지와 희망을 함께 할 때 이루어내는 결과는 ‘기적’이라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역사적 이정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장기가 내려간 곳에 성조기가 걸려있는 시대, 독립국 조선이 아니라 신탁 통치를 받는 ‘난민국’ 선수에게 비자 따위 내줄 수 없다며 어마어마한 보증금 걸고, 보증인 세워야 출국할 수 있다는 미군정 준장의 거드름을 넘는 과정은 42.195㎞보다 지난하고, 겨우겨우 도착한 보스턴에서 성조기 아닌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자 하는 의지는 독립운동만큼이나 결연하다. 

편집도 매끄럽지 않고, 만듦새도 세련되지 않은 이 영화의 힘은 영화적 완성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억울한 상황이 역사적 사실이었고, 이 서러운 상황을 돌파에 보스턴에서 태극기를 휘날린 것 또한 역사적으로 ‘웅장한’ 사실이었으며, 이 사실을 발판으로 1948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선수단이 비행기 아닌 배와 기차로 런던까지 가서 태극기를 걸고 전세계에 나서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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