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최주현
삽화=최주현

어찌하여 뜨거운 햇살은 화살처럼 나의 온몸으로 날아와 박히는가. 화살이 꽂힌 자리마다 불붙은 아픔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삶과 죽음에 관한 해답을 찾지 못한 고뇌가 얼마나 깊었으면 찔린 자국마다 진물이 흐르고, 정신이 영글지 못한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내려앉은 딱지마다 고름이 배어 나오는가. 

그러다가 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면 집을 떠나고 싶어진다. 높은 산을 올라 유유히 떠도는 흰 구름에게 햇살로 쏘인 상흔을 펼쳐 보이고 싶다. 아니면 깊은 산속 암자에 숨어들어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고 싶다. 출가(出家)하고 싶다는 뜻이다. 

티베트나 인도에서는 장자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일정 시간이 흐르면 가족을 떠나 절이나 사원에 들어가 종교 생활을 한다. 그러나 출가하고 싶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계급이나 경제력이 있어야만 출가할 수 있기에 그들은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불가의 스님들도 출가하면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사찰에서 불도를 닦고, 가톨릭의 수사도 세간을 떠나 수도원에서 수행한다. 도인이라 부르는 그분들도 대부분 가족을 떠나 산속에서 수련한다. 이렇듯 출가란 집을 떠나 참선이나 기도 또는 몸을 단련하면서 부처님의 길을 따르거나 신적 존재와 합일을 이루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지만 차마 가족을 외면하고 출가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늘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술렁거려 잠시라도 집을 벗어나야 했다. 하늘과 맞닿은 티베트 오지의 사원에서 마니차를 돌리기도 하고, 설악산 봉정암을 올라 예불을 드려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은 가시지 않았다. 몸은 녹슬어 가는데 언제까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것인가.

출가란 집을 떠나는 것도, 세상을 떠나 산속으로 가는 것도, 스님이나 사제가 되는 것도 아닐 터. 출가란 세상에 끌려다니는 마음을 끊는 것 아닐까? 집이란 고뇌와 번뇌, 갈애와 욕망이 이글거리는 내 마음 아닌가. 세상의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찬 마음. 

그동안 출가를 물리적인 집을 떠나 구도의 길을 걷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속의 악취 나는 쓰레기를 비우는 것이 출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권력에 가 있으면 권력을 내려놓는 방법을 궁리하고, 마음이 돈에 가 있으면 소박하게 사는 삶으로 변화하고, 마음이 이성에 가 있으면 이성을 향한 마음을 끊어 내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세계로 들어가 나의 진면목(眞面目)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제, 집 밖에서 방황하지 말자꾸나. 출가하기 좋은 가을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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