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라는 초월적 존재 없는 불교
모든 현상과 존재는 인과의 산물
인과·업, 부정적으로 봐선 안돼
참회하고 선행하면 좋은 과 받아

불교에서 강조하는 ‘회향’의 가치
서로 선한 업 나누면 모두가 보살
악업으로 인한 두려움 갖기보다는
불교적 삶 실천해 행복 찾아가자

불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조물주, 즉 ‘신’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만물을 창조하는 존재로 인간이 다가설 수 없는 초월적 존재를 말한다. 신이 있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고 그가 살아가는 모습과 결과가 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신의 종교에서는 태초의 탄생인 창세기를 두어 모든 시작을 신의 초월적 힘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불교에는 태초의 시작이라는 것이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 어디에서도 창세기를 찾을 수 없고, 그 시작에 대해서는 ‘무시이래(無始以來)’라는 표현으로만 등장한다. 물론 후대에 생겨난 밀교계통의 경전에서는 다소 다르지만, 이러한 점이 불교가 말하는 세계의 시작이다. 무시이래가 의미하는 태초의 시작이란 어떤 것도 없다. 그저 앞의 ‘인(因)’이 다음 찰나에 오는 ‘과(果)’를 이끌어 온다는 것으로, 모든 현상과 존재는 인과의 연속으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작용을 거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불교가 말하는 모든 현상과 존재의 시작이며 삶이며 그 모습이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작용을 불교에서는 인과(因果), 연기(緣起), 인연(因緣)이라 표현하고, 2600년 전 부처님께서 깨치신 법도 바로 이 인과의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인과’라고 하면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관념으로 인해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그러나 인과는 자연의 모습과 우리의 삶 모든 것의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을 가졌기에 그러한 결과가 생겨난 것이고, 지금 겪는 이러한 일은 앞선 그러한 일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에 <잡아함경>에서도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고 설한 것이다.

인과에 대해 ‘업(業, Karma)’과 관련된 설명이 많다보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과에 있어 업보다 중요한 설명이 없기에 그러한 관념이 생긴 것이다. 불교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업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업은 과보를 불러오는데 자신이 쌓은 업은 언젠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그렇기에 어떤 어려운 일을 겪더라도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고, 현재 자신이 선한 일을 한다면 그것은 즐거운 과보가 되어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이를 ‘선인락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라고 경전에서 말한다.


그러나 인과와 업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과거의 잘못이나 실수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 바르게 참회를 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보다 나아지기 위한 노력과 선한 행동을 한다면 반드시 그 다음에 즐겁고 좋은 일이 약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충분한 행복과 안락이 있다면 그것을 다른 이들을 위해 나눠주고 공유한다면 그것이 선한 영향력이 되어 다른 이들로부터 선한 업을 나눠받고 보다 많은 즐거운 일이 더불어 생겨나게 된다. 이를 불교에서는 ‘회전취향(廻轉趣向)’ 줄여서 ‘회향’이라고 한다. 회향은 특히 대승불교에서 중요한 수행으로 여겨지는데 보살이라는 존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바로 회향으로 대변된다. 보살의 회향은 어떠한 과보나 공덕을 바라는 것이 없기에 그를 통해 한결같이 중생들을 자비로 바라보고 모든 것을 다시금 그들에게 되돌려 베푼다.

인과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을 악업으로 삼아 두려움을 가질 것이 아니라 선한 행동과 다른 이들과의 화합으로 삼아 회향한다면 우리의 오늘과 내일에 반드시 행복한 일이 찾아오게 된다. 이것이 인과를 바르게 이해하고 불교적 삶을 실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노력한다. 자신의 노력이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을 확신하고, 그를 통해 홀로 행복한 것이 아닌 소중한 인연들과 더불어 행복을 느끼는 불교적 삶을 오늘 지금 실천해야겠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