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후학들이 회고한 ‘원력의 화신’ 녹원 스님

녹원 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27명 출·재가자 회고담들
유철주 작가가 인터뷰 엮어

오로지 신심, 공심, 원력으로
종단, 동국대, 직지사 일신한
녹원 스님 원력 면면 확인해

평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녹원 스님은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평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녹원 스님은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영허 녹원 스님(1928~2017)에 대해 사람들은 ‘원력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조계종단 정화불사에 앞장섰고, 피폐했던 직지사를 교육과 수행의 도량으로 일신시켰다.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추대된 후에는 종단 안정화와 함께 다양한 포교불사를 일으켜 많은 대중을 불교에 귀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한 ‘인재불사에 불교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한 녹원 스님은 학교법인 동국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대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불교는 약국 하나 만들기 어렵다’는 세간의 평가에도 보란 듯이 종합병원을 건립해 불교의 역량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오로지 신심(信心)과 공심(公心), 원력(願力)으로 종단과 동국대, 직지사를 일군 녹원 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녹원 스님을 배울 점이 많았던 도반이자 제자에겐 추상같이 엄했지만, 재가불자들에겐 누구보다 자비로웠던 스승, 매사에 철두철미했던 수행자로 기억했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그들의 인연담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녹원스님문도회는 녹원 스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전하기 위해 추모 인터뷰집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暎虛綠園)>을 펴냈다. 이 책은 평생 도반 도원 스님(前조계종 원로의장)을 비롯한 대중들과 혜창 스님(문경 김룡사 회주), 법등 스님(조계종 원로의원), 주호영 국회 정각회장 등 출·재가자 27명이 기억하는 ‘수행자 녹원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인터뷰는 유철주 작가(도반HC 기획콘텐츠실장)가 맡았다. 

9월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기획했던 녹원 스님의 손상좌 묘장 스님(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은 발간 취지에 대해서 스님에 대한 다양한 추억을 묶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묘장 스님은 “녹원 스님께서 원적 후 여러분들에게 스님을 기억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모두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추억들을 나누고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추모 인터뷰집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책 제목 중 일부인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에 대해 묘장 스님은 “노스님께서 <원각경>에 있는 ‘가없는 허공이 깨달음에서 나타난 것이다(無邊虛空 覺所顯發)’는 말씀을 좋아하셨다.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모두 깨달음에서 나타난 것이라면 우리의 삶이 그대로 부처의 삶’이라고 강조하셔서 제목을 이와 같이 지었다”고 전했다.

이번 책에는 녹원 스님의 정화불사 참여, 김천 직지사 중창불사,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종단 행정 참여,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동국대 이사장 취임, 동국대 일산병원 건립불사 등에 함께 했던 출재가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또한 도반과 후학, 제자들과의 인간적인 에피소드도 많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녹원 스님의 면목을 알 수 있다. 또한 법정 스님이 직접 작성한 녹원 스님에 대한 글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자들이 간직하고 있는 녹원 스님의 가르침이다. 선지식의 가르침은 결국 후학들에게 지남(指南)이 되기 때문이다.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 유철주 지음/ 조계종출판사 / 3만2000원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 유철주 지음/ 조계종출판사 / 3만2000원

이젠 종단 원로가 돼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는 조계종 원로의원 법등 스님은 스승 녹원 스님에게 받은 세 가지 가르침을 지금까지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실천하고 있다. 
“저는 큰스님께 받은 세 가지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첫째 가르침은 명분이 없는 행동은 일체 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 가르침은 삼보정재를 허투루 쓰지 말라는 것이고, 셋째 가르침은 공금과 개인 돈을 혼용해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결국 애종심(愛宗心) 혹은 애사심(愛寺心)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큰스님의 애종심, 애사심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항상 불교와 종단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포교와 교육을 그렇게 강조하셨습니다.”- 법등 스님

가장 오랫동안 녹원 스님을 시봉한 시자 장명 스님(직지사 주지)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큰스님의 10분의 1, 100분의 1만 따라가도 저는 성공한 삶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큰스님 같은 분은 결코 없었습니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보아도 흔한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큰스님께서 살아오신 모습을 참고하면, 큰스님의 열정과 원력(願力), 신심(信心)으로 산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큰스님을 만나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장명 스님

녹원 스님의 유발상좌로 잘 알려진 주호영 국회 정각회장은 스승 녹원 스님이 그에게 전했던 ‘공(公)’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위공무사몽역한(爲公無私夢亦閑)’이라고 하잖아요. 공을 위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니 꿈조차 한가롭다는 말입니다. 큰스님 당신에게 ‘개인’은 없었습니다. 항상 불교와 대한민국만 있었어요. 인사드리러 갈 때마다 나눴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 역시 공(公)이 중심이었습니다. 공직에 있는 저는 지금도 큰스님의 이 당부를 생각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추상같은 스승이었고, 누구에게는 자애로운 안식처였으며, 또한 어떤 이에게는 평생의 지남이 됐던 녹원 스님. 27명의 인연담 속에는 한국과 한국불교를 위해 헌신했던 선지식의 삶이 생생히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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