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흥행 실패하는 女감독 지완
남편, 아들에게 밥타령 듣는 신세
60년대 여성감독 필름 복원 참여
여성 불모지 영화계서 노력했던
족적을 좇으며 자기 자신 성찰해

영화 '오마주'의 한 장면.
영화 '오마주'의 한 장면.

불교를 일컬어 깨달음의 종교라고 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비롯되었으며, 한 사람의 깨달음이 번져 나가 모든 중생의 깨달음이 되리라 믿고 제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종종 불교에서는 깨달은 자가 살아가는 구체적 모습, 그러니까 선지식의 행적과 선문답에서 깨달음을 찾곤 한다. 그런데 기록으로 남아 있거나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이야기로 전해지는 선지식의 모습은 지금과 말도, 풍습도, 문화도, 상식도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러니까 그 선지식이 살아가던 시대의 깨달음을 지금 시대에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서 바로 ‘한 사람의 깨달음’을 보고 배워 ‘만 사람의 깨달음’이 될 리가 없다. 

온전히 선지식의 깨달음을 마주 하려면 그때의 시공간과 맥락을 지금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대중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자니 해제가 붙고, 설명이 붙고, 각주가 붙고, 그래도 어려우면 이런저런 말도 붙고, 그러다가 원래의 깨달음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가 딱 이런 영화다.

예술에서 다른 작가나 감독의 대사나 장면 등을 인용하면서 원본이나 출처를 지우는 것이 표절이라고 한다. 표절은 나쁜 것이고 범죄다. 반대로 일부러 원본이 있는 작품을 끌어와서 장면이나 출처를 꼭 알리면서 존경을 표시하는 것을 영화적 표현으로 ‘오마주’라고 한다. 프랑스어인 오마주는 ‘감사, 경의, 존경’을 뜻하는 말로서, 작가로서의 감독이 자신의 영화 안에 자신이 존경했던 영화감독에 대한 각별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특정한 장면을 모방해서 관객도 원본을 알아차리도록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말하자면 선지식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감독 자신의 깨달음을 관객에게 전하는 방식이랄까?

신수원 감독은 2011년 MBC 창사 5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여자만세〉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영화를 만드는 여성들에 대한 이 다큐멘터리에서 신수원 감독은 자신의 첫 영화인 〈레인보우〉(2010)에 출연했던 여성 로커에게 카메라를 잡게 해서 셀프 영상을 만들게 하기도 하고, 일반인이 촬영한 영상을 발견하기도 하며, 카메라를 통해 여성이 만들어내는 깨달음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탐사해 나간다. 그러다가 신수원 감독은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이었던 故홍은원 감독이라는 존재를 찾게 된다. 홍은원 감독이 살았던 집에서 유품들을 통해 여성영화인으로서의 흔적을 더듬어 가다가 실제로 홍은원 감독의 영화를 편집했던 여성인 김영희 편집기사를 만나는 인연으로까지 나아간다.

 〈여자만세〉 전까지는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과 〈미망인〉은 알려졌지만 홍은원 감독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감독의 존재 증명인 영화가 필름으로 남아있지 않았으니 홍은원이 감독이었다는 어떤 실체도 없었던 것이다. 신수원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자취를 찾았다. 당시 필름을 밀짚모자 챙으로 만들어 쓰거나 녹여서 레코드판으로 썼다는 얘길 듣고서 〈여자만세〉 안에 모자에 필름으로 챙 두르는 대한뉴스 장면을 구해서 넣는 것으로 프린트가 부재한 상황을 설명했지만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지극해서였을까? 2015년 한 영화업자가 개인적으로 소장해왔던 필름들을 영상자료원에 기증했는데 그 필름 더미에서 기적처럼 홍은원 감독의 작품인 〈여판사〉를 찾게 되었다. 그렇지만 온전히 영화 전체가 남아있던 것이 아니라 3분의 1 정도는 망실된 상태였다. 그리고 여기서 〈오마주〉가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오마주〉의 주인공은 직장 다니는 남편도 있고 청년인 아들도 있어서 날이면 날마다 남자 사람들의 밥 타령에 볶이는 중년여성 지완(이정은)이다. 지완은 딱 신수원 감독 자신과 나이대도 비슷하고, 옷태도 비슷하고, 하는 일도 영화감독인데, 작품에 대한 열정에 비해 흥행과는 거리가 먼 탓에 즐거울 수 없는 상태로 갱년기를 겪고 있다.

어렵게 만들어서 극장에 걸린 영화에는 관객이 자신과 프로듀서뿐이고, 새 시나리오는 잘 안 풀리는데 심지어 잘 알던 맞춤법까지 헛갈리고, 줄곧 함께 작업해왔던 프로듀서는 이제 영화를 그만 두겠다고 하고, 아들은 엄마 영화는 재미없다고 하고, 남편은 밥 타령만 하니 사는 낙 찾을 길 없는 답답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마침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 

한국영상자료원에게 ‘시간되면 아르바이트 해볼래’라며 요청 받은 작업은 크게 표 나는 일도 아니고, 1960년대 여성 감독의 영화에 사운드를 복원하는 일이다. 그 작품은 ‘홍재원’ 감독의 〈여판사〉,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여자만세〉에서 발견하게 된 ‘홍은원’ 감독의 영화적 변형인 인물이다. 그리고 영화 속 복원해야 할 영화인 〈여판사〉는 실제로 홍은원 감독의 16mm 필름 작품을 영상자료원에서 파일로 틀어 촬영한 영상이다. 이 장면에 대해 신수원 감독은 “필름이 손상된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뭉클했다. 홍은원 감독님의 영혼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복원이라는 건 영화를, 그 영화인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오마주〉의 주인공 지완은 말로는 일 적게 하고 돈 많이 받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툴툴대지만 행동으로는 품 많이 들고 돈도 적은 일에 열심이고 진심이다. 어둑한 밤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또각또각 구두소리에 모자 쓴 멋쟁이 여성의 그림자도 마주치고, 집 근처 주차장에는 이웃 여자가 자살했다는 자동차를 마주치고, 복원해야 하는 영화 〈여판사〉 안에서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여성 최초로 판사가 되었으나 남편 일가로부터 일과 전업주부 사이에 선택을 강요당하는 여성 판사 진숙을 마주친다. 그 마주침 사이에는 복원해야할 인물, 찾아야 할 서사가 있다.

1962년 작품인 〈여판사〉는 한국 최초의 여판사로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황윤석 판사의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개봉 당시 여성 감독이 실제 여성이 겪은 사건을 자살로 극화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 화제작이 사운드도 필름도 온전하지 않게 21세기에 들어서서야 발굴된 것 자체가 신수원 감독에게는 선지식을 마주치는 사건이 되었을 것이고, 그 기이한 경험은 영화 〈오마주〉 안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여성 감독과 여성 영화인들을 현재의 맥락 안으로 환생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인들이 드나들던 충무로 옛날 다방에서 기억을 더듬는 사람을 만나고, 그이가 간직한 사진과 전화번호를 찾게 되고, 거기서 마침내 사진 속 홍 감독과 늘 어울렸던 영화 동료인 편집 기사를 찾게 되는 과정은 너무도 영화적이지만 사실은 〈여성만세〉 안에서 실제로 겪었던 현실 자체다.

시골에 살고 있는 편집 기사를 찾아갔을 때, 허리 굽고 다리 불편한 그 할머니의 주름살 안에서 한때 충무로에서 가장 세련되고 진취적인 여성 영화인이었던 편집기사 옥희(이주실, 실제 인물은 김영희)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사라진 필름부터 찾아야 한다. 멀티플렉스 디지털 상영이 대세인 상황에서 옛날 그대로 남아있는 극장을 찾고, 그 극장에서 필름을 뒤지다 모자챙에 장식으로 둘러진 조각들을 찾고, 그 조각난 필름들을 이어서 씻고 말리는 과정은 그 자체로 영화라는 장치가 가진 물질성을 드러내고, 그 물질성은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모습과 숨결을 실체로 되살리는 마법의 소환술과도 같다.

컴퓨터 파일 안에 담긴 영상에 가상 효과인 VFX로 배경이며 등장인물까지 물질성 없이 영화를 만드는 오늘날의 제작 방식 이전에 필름이라는 광학 매체에 빛과 물질의 작용으로 이야기와 인물을 담아낸 기록 안에는 시간과 장소의 흔적까지 얼룩져 담겨있다.  

한국 영화사에서 최초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이자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이었던 홍은원은 여성 영화인이 거의 없었던 1950~60년대 영화현장에서 스크립터에서 시작해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영화음악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한 여성 영화인이었다.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50도 못되어 태양을 맴도는 위성같은 존재로 떨어졌다’고 기록으로 남겼을 것이고, 신수원 감독이 〈여자만세〉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전까지는 잊혀 졌고, 마침내 〈오마주〉에서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선지식으로 또각또각 걸어온다.

지완의 아들이 “엄마, 영화 하지 마. 아빠가 뭐라는 줄 알아? 꿈꾸는 여자랑 살면 외로워 진 데. 엄만 엄마 꿈만 중요해”라고 대들더라도 “자넨 끝까지 살아남아”라며 조각났던 필름을 예전 방식으로 이어 붙여 다시금 영화로 되살려낸 옥희의 격려는 영화 속 지완, 영화를 만든 신수원, 그리고 그 영화 안에서 살아난 홍은원, 영화 속 영화 안에서 시대와 맞서는 여판사 진숙을 이으며 우리 모두에게 깨달음을 전한다. 여성 영화인으로 산다는 것, 그 생생한 현실을 돌파하는 예술과 인간의 경지를. 영화 복원을 마친 지완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더 이상 그림자는 두렵지 않고, 자살했을까 걱정했던 이웃집 여자는 집으로 돌아왔고, 아마도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

성철 스님이 이르시기를 ‘삶은 꿈이고,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영화는 꿈이다. 그리고 삶을 담은 영화를 보는 것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오마주〉는 바로 그런 꿈, 그런 삶,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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