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에 대해 생각하다 

중국 VIP특사 판다 찾기 위한 코믹극
테마파크서 VIP인 판다네 가족 말고
일반 동물들 자연서 살아갈 자유 박탈
윤회 안에서 우리는 동물과 같은 존재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의 한 장면.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의 한 장면.

아마도 동물계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건 판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이언트 판다일 것이다. 냉전시대부터 지금까지 ‘죽의 장막’이라며 쉽게 곁을 주지 않던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특별히 외교적으로 화해와 친교를 맺는 나라에 보내는 외교 사절은 스포츠 선수나 문화예술계 명사나 정치인이나 과학자보다도 더 각별하게 바로 판다를 통해 이뤄졌다.

자이언트 판다는 멸종 위기에 있는 희귀한 동물인데 딱 중국 특정 지역에만 있어서 아무나 볼 수는 없는데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캐릭터 상품으로는 아주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볼 수 있으려면 여러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만 하는 존재다. 중국으로부터 아주 까다로운 절차와 과정을 통해 수입이나 매매, 기증 또는 입양이라는 어떤 말로도 다른 나라에 갈 수 없다. 오직 ‘임대’라는 형식으로 보내고, 보낸 나라에서 제대로 잘 돌보는 지도 늘 점검 받고, 그러다 중국 쪽에서 보살핌이 허술하다고 도로 내놓으라고 하면 그동안 들인 비용과 시간이 얼마든 다시 반환해야 한다. 금이야 옥이야 보살펴 번식에 성공해서 새끼를 보더라도 성장하면 그 새끼는 반드시 중국으로 보내야 한다.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으니 말 그대로 판다는 중국이 다른 나라에게 보내는 최고의 선의를 담은 정치적 사절이다. 그러니까 〈미스터 주: 사라진 VIP〉에서 김태윤 감독이 말하는 ‘VIP’  칭호가 딱 들어맞는 동물계 최고의 셀러브리티라고 할 만하다.

불교에서 이르는 중생은 사람만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뭇 생명을 이르는 말이다. 뭇 생명이란, 그리고 중생제도와 성불도 인간만이 누리는 특혜가 아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유정이든 무정이든 간에 각각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고, 법(法, Dharma) 즉, 진리의 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범종과 목어와 북과 운판을 울려 사람 뿐 아니라 날짐승, 산짐승, 물 속 짐승까지 두루 성불하고 제도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은 이런 가르침과는 달리 참으로 다른 생명들에게 야박하고 가혹하다. 어릴 때 귀여운 맛에 집에 들였던 개나 고양이도 성가시다거나 병이 들었거나 늙었다고 내다 버려 유기견, 유기묘로 거리를 떠돌게 하는 일도 예사지만, 동물을 상대로 그저 재수 없다거나 자기 분풀이로 해코지 하는 학대와 범죄의 양상은 처참할 지경이다. 더 나아가 강력 범죄에 대한 자료를 보면 동물을 학대하던 자는 사람에게도 폭력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살인에 이르기까지.

그뿐인가? 살아있는 동물을 철창 안에 가두고 구경거리로 내 보여 돈을 버는 ‘동물원’ 사업이 테마파크부터 체험 농장, 라쿤 카페 등등 여기저기 많기도 많다. 그런 동물들은 원산지가 어디든 한 두 세대를 거치며 아예 동물원에서 태어나 우리 바깥은 겪어보지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동물들이 다 판다처럼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조차 ‘갈비뼈 사자’라고 불리는 정도로까지 평생을 뼈만 남도록 앙상하게 방치되기도 하고, 영물로 불리는 호랑이가 인간 때문에 근친 교배로 태어나 기형으로 태어나면 구경꾼조차 만날 기회 없이 콘크리트 장벽 안에서 어떤 생명체와의 교감도 없는 생명 학대를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동물원이라는 공개 시설이 아니라 민간에 있는 동물들은 더 참혹하게 다루어진다. 역대급이라는 올 폭염에 민간인이 천정이나 그늘도 없는 창살에 가두고 몰래 키우던 사자 ‘사순이’가 평생 처음 우리를 빠져 나가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가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죽은 것도 ‘인간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한다. 자기 발과 이빨로 사냥 한 번 해본 적 없던 사순이도 갈비뼈 사자 바람이처럼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이렇게 동물을 함부로 할 권리가 인간에게 과연 인간에게 있는 것일까? 

〈미스터 주: 사라진 VIP〉는 뭇 생명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이성민)를 초등학생 딸은 미스터 주라고 부르곤 한다. 에이스 정보요원답게 주태주 요원은 철저하고 깔끔한 사람이다. 아침마다 먼지 하나 없이 청소된 집에서 운동하고, 보풀 하나까지 다 떼어내고서야 옷을 차려 입는다. 그런 성격이다 보니 동물이라면 아주 질색이다. 털도 있고, 침도 튈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주태주 요원을 “도와줘요, 미스터 주”라고 급하게 전화로 불러낸 딸이 요청한 그 도움이 다른 일도 아니고 바로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보호해 달라는 것이니 기겁할 노릇이다. 낯선 고양이는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하고 있으니 아빠가 ‘탐정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 딸은 주인을 찾아달라며 맡기고 학원에 간다. 그러나 동물도, 딸의 부탁도 하찮게 생각한 미스터 주는 고양이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그게 뭐 별거냐 하는 마음으로.

곧 관리 요직으로 승진을 앞둔 미스터 주가 실적을 내세우려고 맡은 임무는 소원해진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풀게 될 중요한 외교 행사에 특사로 파견된 VIP를 경호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특사가 특별해도 아주 특별한 존재인 것이 문제다. 중국에서 귀하디 귀하게 여기는 바로 그 존재, 판다가 VIP특사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VIP는 ‘Very Impotant Person’의 VIP보다 더 특별한 ‘Very Important Panda’를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미스터 주: 사라진 VIP〉에서 특사로 경호를 받게 되는 자이언트 판다는 중국이 함부로 외국에 내보내지도 않고, 판다를 해치는 자는 중죄로 처벌하며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들여 보호하는 중국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귀여운 외모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으로도,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도 인기가 많은 자이언트 판다가 중국의 외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이렇게 중요한 VIP를 경호하는 일 정도는 별로 어려울 것 없이 그냥 적당히 해치워 버려도 될 일이거니 싶어 대뜸 맡았는데, 납치범들이 그런 허술한 경호를 뚫고 판다를 납치해 가면서 일이 꼬이게 된다. 딸이 주인을 찾아달라고 맡긴 고양이를 버려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미스터 주지만, 판다를 찾지 못한다면 요원으로서의 앞날이 캄캄한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게 되는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미스터 주가 버린 고양이는 그냥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었던지, 어느새 버려진 쓰레기통이 아니라 판다가 사람들과 만날 행사장인 동물원에서 경호를 빙자해 노닥거리던 미스터 주 뒤에 나타나더니, 그 다음부터 미스터 주는 동물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개나 고양이만이 아니라 어항 속의 물고기, 하늘을 나는 새, 동물원에 있는 온갖 동물들, 쇼핑센터에서 진열되어 팔리는 애완동물들 까지 동물이 참 많기도 많으니 그 동물들이 하는 말도 홍수처럼 밀려든다. 이런 소리를 다 듣게 된 것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벌이 될 수도 있고 상이 될 수도 있다. 하필 동물을 싫어하는 미스터 주에게는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당황스러운 상황인 것이 분명하지만.

〈미스터 주: 사라진 VIP〉는 이런 난처한 상황을 맞닥뜨린 미스터 주가 화약 냄새라면 줄행랑부터 치고 보는 군견 알리와 티격태격하며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펼쳐 보이는 가족영화다. 동물을 싫어하는 미스터 주와 동물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딸, 사람을 위해 봉사하도록 어릴 때부터 훈련받고 위험한 작전에 나갔다가 끔찍한 사고를 겪은 군견 알리, 동물원에서 사고를 목격한 고릴라와 납치 현장에서 도망친 알리를 거둬준 다른 동물들, 그리고 도시나 농촌 어디든 사람 곁에 있는 염소와 비둘기까지 여러 동물들은 나름의 개성과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미스터 주의 지원군이 된다. 영화의 요소요소에서 터지는 재미와 웃음도 이 동물 캐릭터들의 몫이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는 군견 알리나 납치된 판다 밍밍을 의인화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치환하는 대신, 등장하는 여러 동물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짚어보고, 동물을 이용한 산업이나 실험의 내막을 들춰내면서 동물 자체의 특징과 개성을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이런 재미를 더해 주는 것은 동물 각각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공이다.

미스터 주와 짝이 되는 알리 역할에 신하균, 사랑스러운 특사 판다 역할에 유인나가 목소리 연기를 맡은 것은 주연급이라 그럴만한 캐스팅이라고 한다면, 한 장면씩에만 등장하는 햄스터의 목소리는 관록의 연기자 이순재, 떠돌이 동물들을 이끄는 앵무새 목소리에는 걸쭉한 입담으로 유명한 김수미, 시골 농가에서 마주친 흑염소와 동물원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고릴라는 〈기생충〉으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선균과 이정은 등등 목소리만으로 존재감이 남다른 연기자들이 영화 곳곳에서 씬 스틸러로 등장하기 때문에 동물 캐릭터와 목소리 연기자 캐릭터의 조합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국영화에서 흔치 않은 동물과 대화한다는 설정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어필할 것인지 고민했다. 한국영화의 기술이라면 이를 구현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흥미로운 사건과 공감 가능한 스토리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는 김태윤 감독은 〈미스터 주: 사라진 VIP〉를 통해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는 동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대기업 테마파크 안에서도 아주 특별히 VIP로 대접받는 푸바오네 판다 가족 말고 다른 동물들은 그냥 자연 안에서 살아갈 자유, 생을 누릴 권리조차 없는 세상, 돌고 도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우리가 그들과 같은 존재라는 깨우침으로 다른 사순이가 총 맞아 죽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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