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단, 세상을 구하다 

​​​​​​​스카우트 모델로 한 영화 ‘스미스 씨…’ 
소년단 ‘보이레인저’ 이끄는 스미스 씨
정치인이 되며 부조리와 맞서는 이야기
세상에 진실을 알린 건 소년단의 소식지
언론 장악, 통제해도 진실 가릴 수 없다

영화 의 한 장면. 
영화 의 한 장면. 

한꺼번에 한 단체의 이름으로 전세계에서 이토록 많은 청소년들이 모여 짧지 않은 기간 함께 지내는 행사는 흔치 않다. 더구나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니라 텐트를 치고 자연 안에서 먹고 자며, 자신들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소비’나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교류’와 ‘소통’, ‘체험’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행사라니 참 뜻이 좋은 행사가 바로 ‘잼버리’다.

원래 잼버리는 민족, 문화 그리고 정치적인 이념을 초월하여 국제 이해와 우애를 다지는 보이스카우트의 세계 야영대회인데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4년 주기로 열리는 국제 대회다 보니 참석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보이 스카우트나 걸 스카우트에서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하고, 참가비도 마련해야하고, 잼버리가 열리는 시기에 딱 참가 가능한 나이대여야 한다.

그러니 여기 참가하려는 청소년들은 몇 년씩 소속 지역 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기금 마련행사를 열어 쿠키를 구워 팔거나 기념품을 만들어 팔거나 하는 방식으로 모금도 하고, 저축도 하며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된다. 올해 그 잼버리가 우리나라에서 열렸고, 특히 이번 잼버리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첫 국제 대규모 행사이기도 했으니 얼마나 기대들이 컸을까?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잼버리는 개영식 전부터 걱정스럽더니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며 개최돼 여러 논란거리들을 남긴 채 예정된 기간을 채우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행사가 되었다. 폭염이나 태풍은 하늘의 일이라지만, 이 시기 늘 있는 자연재해는 대비했어야 할 일이었으니 예외적 사건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준비부족과 운영미숙으로 생긴 나머지 모든 문제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조직위의 문제, 그러니까 장관이 세 명이나 공동 책임자로 있는 중앙정부와 몇 년 전부터 잼버리 유치에 사활을 건 지방자치단체 모두의 잘못인 것이다.

그나마 잘못이 불거졌을 때 바로 두 팔 걷고 수습에 나선 것은 민간이었다. 기업과 종교단체, 그리고 일반 시민들. 그 가운데 불교계의 지원도 두드러졌다. 

사실 불교계는 잼버리 파행이 있기 전부터 지원과 참여를 준비해 왔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지난해 한국스카우트연맹으로부터 잼버리대회 동안 한국불교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템플스테이를 운영해달라고 요청받아 대회기간인 8월1일부터 12일까지 새만금 잼버리대회장 델타존에 템플스테이관을 두고 170여개국, 4만3000여 명의 잼버리 참가 청소년과 지도자들에게 연등만들기, 합장주만들기 등 불교문화체험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 관련 정보 등을 제공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또한 대회 기간 중에 잼버리 영외과정 활동을 위해 새만금 인근 사찰인 선운사와 금산사, 내소사 등지에서 템플스테이를 통해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도 되어있었다. 영국, 미국 등이 새만금 시설과 운영 문제로 먼저 퇴영하고, 이어서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지나게 되면서 인해 잼버리 새만금 행사장이 아예 행사를 포기하게 되면서부터는 전국 147개 사찰이 참여 청소년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이런 과정에서 참여 청소년들은 청소년들대로, 개최국 국민인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자식을 다른 나라에 보낸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고생하고 상처받은 행사가 된 것은 어떻게 해도 보상도, 만회도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 언론은 제대로 된 보도를 전하지 않은 채, 주최측 보도자료 중심의 자화자찬 기사만 내다가 참가 자녀들로부터 현장 상황을 전해들은 외국 부모들이 먼저 문제를 삼고서야 뒤늦게 현장 소식을 전하는 모습으로 영 신뢰를 받지 못했다.

이렇게 ‘스카우트’라는 청소년 모임이 등장해서 소년단 활동이 어른들의 잘못조차 바로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고전 영화가 있다. 영화에서 소년단은 ‘보이레인저’라는 가상의 단체로 나오지만 그 모델은 보이 스카우트다.

할리우드 최고의 해로 꼽히는 1939년에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비롯해 무려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며 흥행 바람을 시상식장까지 몰고 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밀려 고작 원작상(포스터) 1개가 상을 받는데 그친 영화가 있다. 이 흑백영화는 그러나 잊혀지기는 커녕 미국영화연구소가 미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해서 꼽은 가장 위대한 미국 영화 100편에 드는 고전이 되었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라는 제목에서 보듯 아주 미국적인 인물 스미스 씨가 미국 정치판의 수도 워싱턴에서 벌이는 좌충우돌 고군분투 아메리칸 드림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름부터 평범하기 그지없는 시골 소년단 보이레인저의 단장 스미스 씨는 아이들과 들판을 헤집고 다니는 순진하고 착한 소시민, 세상물정 어두운 촌놈이다. 이런 스미스가 상원의원이 되어 의회로 가게 된 건 순전히 어수룩해 보여서다.

정치권이랑 재력가가 야합해서 부당한 법안을 통과시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떡고물 나눠먹자고 쑥덕거리던 찰나에 스미스 씨가 사는 잭슨시의 상원의원 둘 가운데 하나가 덜컥 죽어버렸는데, 그 자리에 ‘땜빵’으로 데려다 허수아비로 세워놓기 딱 좋은 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잭슨시의 또 다른 상원의원인 조세프 페인은 잭슨시 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새로운 상원의원을 뽑으라고 지시한다. 새로운 의원이 될 사람 됨됨이에 대한 조건은 딱 하나, 페인과 그의 재정적 후원자인 짐 테일러의 댐건설 계획을 방해하지 않을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지사는 고민 끝에 보이레인저 단장인 제퍼슨 스미스를 후보로 내세운다. 아이들과 다람쥐나 잡으러 쫓아다니는 순박한 촌뜨기야말로 정치판의 꼭두각시 역할로 적격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의원들이 나라와 국민과 후손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일을 외면하고 권력과 금권, 당리당략에 매달려 똘똘 뭉친 판이다. 그들 다수 의원들은 이 초짜 정치인을 만만히, 아니 우습게보았다. 그래서 그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선배 정치인입네’ 하고 나서 훈계도 하고,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 미디어를 동원해 그를 짓뭉개버리려 한다. 그런데 스미스 씨는 물러서기는커녕 주저앉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꿋꿋하게 서서 버텨낸다. 잠도 안자고 무려 24시간 동안 내리 연설을 하면서.

이 고지식한 의원에게 힘이 되는 건 조무래기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만든 소식지뿐이다. 그런데도 스미스가 필사적으로 서있는 까닭은 의원의 의사발언권이 그의 권리이기 때문이며,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까닭이 정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며, 자기가 버티고 있어야 바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뜻과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페인은 스미스를 등원시키지 않으려고 음모를 꾸미지만, 스미스는 비서 선더즈의 도움으로 페인과 테일러의 음모를 알게 되고 상원 회의에 등원한다. 댐 건설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하여 스미스는 발언권을 양보하지 않는 한 계속 발언할 수 있다는 국회발언권(필리버스터)을 이용해서 24시간에 걸친 연설을 이어나간다. 음모에 빠진 스미스에게 적대적이던 여론이 차차 스미스에게 유리해지자 테일러는 언론을 매수해서 온갖 흑색선전을 퍼붓는다. 진실을 알리려는 스미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려는 순간 페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음모를 고백하고 스미스는 최후의 승리를 쟁취한다.

스미스가 구리기 그지없는 댐 건설 법안통과를 막아내기 위해 24시간 버티고 서서 연설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거대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는 스미스의 외로운 싸움을 소년단 소식지에 담아 방방곡곡에 퍼뜨리고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 민중이 들고 일어나 정의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아직 이 땅에서는 동화일까? 국민에게 행정안전부가 야외활동을 삼가라는 땡볕 아래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위해 청소년들을 몇 시간씩 대기하게 하고, 고생하러 온 아이들이니 텐트 칠 자리가 진창이든, 날씨가 폭염이든, 스치기만 해도 화상을 남기는 벌레든, 화장실 위생 문제든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아직도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는 동화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겪는 문제보다 그 행사에 대한 정치인들의 동정이나 발언만 보도하는 언론에게도 그럴 것이다.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에서 거대언론이 진실에 대해 입을 다물거나 사실을 왜곡할 때, 그 횡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펼쳐 보인 소식지였다.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한다고 목소리를 틀어막을 수 없고, 진실을 가릴 수도 없었다.

잼버리의 파행을 겪은 스카우트 참여 청소년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나중에 더 조사하며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었던 장소인 새만금이 어떤 곳이었는지. 그곳은 원래 뭇 생명들이 깃들어 사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갯벌이었는데, 개발과 건설이라는 인간의 욕심이 정치라는 권력의 욕망과 만나 망가뜨린 거대한 수렁이라는 것을. 스카우트의 이상과는 맞지 않는 파괴의 지형이었다는 것을.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에서처럼 이 청소년들도 자신들의 체험을, 그리고 거기서 알게 된 진실을, 또 앞으로 해야 할 옳은 일을 찾고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만금도, 청소년들도 두루 가장 나은 미래를 향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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