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 성파 대종사 휘호 ‘이법위사(以法爲師)’ 장식

1920년 발간한 〈축산보림〉 계승
500호에 발간호 당시 표지 재현
〈등불〉 〈보궁〉 〈통도〉 명칭변경
진우 스님 “포교 중흥기 이끌어”

통도사가 월간 〈통도〉 500호 발간을 기념하며 특집호를 발간했다. 사진은 불교계 최초 불교종합잡지 〈축산보림〉 창간호 표지를 그대로 담아 500호를 기념한 〈통도〉 표지.
통도사가 월간 〈통도〉 500호 발간을 기념하며 특집호를 발간했다. 사진은 불교계 최초 불교종합잡지 〈축산보림〉 창간호 표지를 그대로 담아 500호를 기념한 〈통도〉 표지.

한국불교 최초 사찰 홍보지 〈축산보림(鷲山寶林)〉의 전통을 이어온 통도사 월간 사보 〈통도〉가 발간 500회를 맞았다.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현덕)는 7월 월간 〈통도〉를 통해 500호 발간을 기념하고, 창간호부터 이어온 역사를 고찰해 창간 정신을 잇겠다는 다짐을 알렸다.

500회를 기념하며 발간한 〈통도〉에는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 대종사의 휘호 ‘이법위사(以法爲師, 진리로써 스승을 삼아라)’가 첫 장을 장식해 독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했다. 이어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등불〉은 통도사의 살아있는 역사를 기록한 불교기록유산”이라며 “이에 앞서 1920년대 이미 발간한 〈축산보림〉, 〈조음〉을 통해 통도사는 선진화된 사찰 잡지의 효시를 선보였다. 불교 잡지는 시대를 앞서가며 민족계몽과 민중교화에 앞장서 왔으며 포교 중흥기를 이끌어 전법사의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전했다.

월간 〈통도〉는 1981년 10월 15일 〈등불〉로 창간되었고 이후 〈보궁〉과 〈통도〉 등 명칭을 바꾸며 역사를 이어왔다. 창간호의 발간사에 따르면 〈통도〉는 대중 포교를 위한 불법의 전령사 역할을 담당할 의지를 담고 있다.

발간사에는 “1500여 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 그 진수를 담은 문헌과 자료는 다분히 많으나, 인연이 없는 중생들은 그를 대할 기회가 없고, 설사 대한다 해도 지극히 난해한 한자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심오한 철학적 논리는 대중으로 하여금 거리감만 조성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 조그마한 원고가 인연이 되어 불법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 입문의 계기가 되고 귀의한 분들께 신심을 돈독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없는 보람이 되겠다”고 밝혔다.

또한 2호부터는 동화를 연재했고 오랫동안 대표 코너로 삼았다. 특징은 오직 한글로만 구성해 어린이들이 편히 읽고 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에 대해 〈통도〉 편집위원회는 특집호를 구성하며 “현존하는 사찰 소식지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사보의 효시이자 동시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 호흡한 민족 기록물”이라며 “창간호 발기문은 불법 홍포지로 나아가야할 〈등불〉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월간 〈통도〉는 1920년 1월 15일 통도사에서 발간한 최초의 불교종합잡지 〈축산보림〉이 효시다. 〈축산보림〉의 축산(鷲山)은 통도사를 둘러싸고 있는 영축산이며 보림(寶林)은 보배의 숲을 의미한다. 〈통도〉 500호를 맞아 발간한 특집호 표지는 〈축산보림〉의 창간호 표지로 날아오른 독수리와 영축산이 배경으로 담겼다.

〈축산보림〉은 구하 스님이 대표로 발간한 불교종합잡지로 1919년 3·1운동 이후 이듬해 발간해 역사 속에서 민족 계몽운동의 선구자로 앞장섰다. 〈축산보림〉은 특히 불교 잡지로 통도사 소식을 전했을 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담는 문화잡지 역할을 담당했다. 〈축산보림〉에는 〈조선문학사〉와 한국 최초 추리소설 〈혈가사〉 등을 담아 민족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려 노력한 흔적이 있다.

〈통도〉 편집위는 “불교를 통해 민중을 계몽하고,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부처님의 정법을 전하려 했던 오롯한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월간 〈통도〉에 유효하게 전승되고 있다”며 “우리는 지령 500호를 넘어 100년의 역사를 이어가는 기록물을 함께 쓰고 있다. 이 기록 속에 많은 이들이 찾고자 하는 바가 있었고, 그 많은 인연들은 물음에 답하고자 부단히 원력을 쏟았으며 그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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