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엄마를 구하라 

말레이시아 초 웨 준 감독 〈걸신포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넷팩상 수상작
우란분절 설화 바탕한 스토리텔링 눈길
현대 가족 불화, 코로나 이후 희망 담겨

말레이시아 초 웨 준 감독의  한 장면.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넷팩상을 수상했다.
말레이시아 초 웨 준 감독의 한 장면.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넷팩상을 수상했다.

세간에서는 절기로 계절을 알고, 영화계에서는 영화제로 계절을 느낀다. 국내 영화제 가운데 봄을 여는 영화제가 전주국제영화제라면 여름의 대표적인 영화제는 연혁으로나 대중적 인지도로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감독, 프로듀서, 연기자, 영상산업관계자, 학자들이 모이고, 시네필들이 모이고, 영화제를 개최하는 도시의 시민들과 어울려 ‘이상해도 괜찮아’라는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즐기는 것이 영화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 만이라 더 각별하고, 더 반가웠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복원된 고전 명작, 스타 감독의 신작뿐 아니라 세계 신진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들, 특히 미국 상업영화 위주로 돌아가는 상업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나라의 특색 있는 장르 영화들을 볼 수 있다. 찬사도 있고, 상도 있고, 만남도 있다. 그리고 각 문화권에 따라 종교적 배경이 드러나는 작품도 있고, 그 가운데는 불교적 사상과 역사가 바탕이 되는 작품도 있다.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소개된 말레이시아 초 웨 준 감독의 〈걸신포차〉는 오랜 불교문화와 스토리텔링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영화다. 계절에 딱 어울리게 세간에서는 백중, 불가에서는 우란분절이라고 하는 절기와 목련존자의 이야기가 영화 배경이 되는 인물들을 움직이고 생각하게 하는 이 영화는 올해 넷팩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음력 7월 15일을 세시풍속에서는 ‘백중’이라고 하고 불가에서는 특별히 ‘우란분절’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백종·중원·망혼일이라고도 한다. 여름이 한창인 이 무렵이 되면 과일이며 채소가 많이 나와 백가지 곡식과 푸성귀 종자를 갖추어 놓을 수 있어서 백종이라고 했다. 또 중원이라고 하는 까닭은 1월 보름인 상원과 10월 보름인 하원, 그리고 그 사이에 7월 보름인 중원날에 삼원이라는 초제를 지내는 도가의 세시풍속에서 비롯된 풍속이 불교에까지 이어진 내력이 있어서이다. 

도교의 중원절인 이날, 불가에서 우란분회 공양을 하는 풍속이 있어서 우란분재라고도 하는데, 특히 중화권에서는 음력 7월을 귀신의 달이라 여겼으며, 그 가운데 날인 중원절에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혼이 산 자를 찾아온다 하여 고인들을 위한 빈자리와 정성껏 마련한 식사를 준비하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까지는 널리 퍼진 풍속이었으나 조선시대 이후로는 사찰에서만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조상을 기리는 의례를 추석에 차례로 치르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우란분절에 절에서는 재(齋)를 올리고 공양을 드렸으며, 민간에서는 100가지 과실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남녀가 모여 음식을 먹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각 가정에서는 한창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차례를 올리고 백중잔치를 하며 조상을 기렸고, 백중날 하루뿐 아니라 그 앞뒤로 큰 장이 섰는데 이를 백중장이라 했다. 

아마도 농사가 기본이었던 문화권에서는 봄부터 여름까지 농번기로 쉴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 바쁜 와중에 백중날이 되면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그날 하루는 모든 일을 멈추고 머슴에게도 휴가와 삯을 주어 백중장에 가서 하루를 즐기도록 했다고 하니 오늘날의 여름휴가와도 같은 절기였을 것이다. 백중장에서는 씨름판과 장치기 등의 놀이도 펼쳐져 청년들의 재미도 끌고 사기도 북돋워 주었으며,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은 소나 가마에 태워 마을을 돌면서 노동의 가치를 귀히 여기고, 청년에게 어깨 펼 자리를 펼쳐주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풍습을 여전히 이어가는 말레이시아 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걸신포차〉가 수상한 넷팩상은 아시아영화진흥기구인 넷팩(NETPAC)이 수여하는 상이다. 넷팩 멤버 및 문화산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SF, 스릴러, 코미디, 판타지, 드라마까지 장르는 넘나드는 작품들 가운데서 최고 아시아 영화를 선정한다.〈걸신포차〉는 2년 전,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에서 열렸던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산업프로그램인 B.I.G 행사 가운데 기획 개발 예정인 작품들에게 제작에 필요한 지원과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행사인 ‘NAFF프로젝트 마켓’에 〈헝그리 고스트 다이너〉라는 제목으로 참여해 NAFF상을 수상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2년 만에 감독의 미래였던 기획안이 완성된 작품이라는 현재가 되어 영화제에서 최고의 아시아 영화라는 인정을 받으며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젊은 감독들이 영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획안 발표의 기회와 영화계 멘토로부터 조언을 받고 제작비를 마련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성장을 위한 지원을 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젊은 영화인들에게 이렇게 부모, 선배, 친구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는 것이 영화제가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의미이자 가치이다. 〈걸신포차〉는 바로 이렇게 영화제를 통해 프로젝트가 싹이 트고 완성된 작품이다. 한국 영화관객들이 자주 볼 기회가 없는 말레이시아 영화지만, 불교적 세계관과 코로나 상황에서의 봉쇄와 거리두기, 청년 실업, 가족 간의 오해와 화해, 풋풋한 청춘들의 만남, 도시와 달리 서로서로 이웃끼리 다 알고 지내는 지방의 인간관계들이 빚어내는 영화적 재미가 전혀 낯설지 않은 친근함을 빚어내는 만듦새를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도시에서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보니라는 젊은 여성이다. 보니가 장사를 마치고 트럭을 정리하는 어느 여름날 밤, 느닷없이 외삼촌이 찾아온다. 외삼촌에게 차를 대접하고 얘기 좀 나누려는데 영업시간 마쳤으니 빨리 정리하라는 관리인의 독촉을 상대하고 돌아서보니 찻잔은 깨져 바닥에 흩어져있고 외삼촌은 그새 사라져 버렸다.

보니는 어렸을 때 중원절에 젊은 엄마를 여의었다. 엄마 제사를 치르다가 중원절 잔치가 한창이던 동네를 헤매다가 집을 잃었던 보니를 찾아서 다정히 대해준 사람이 바로 외삼촌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니의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말수도 적어 서로 살갑지 않은 사이로 지내 온 지 오래지만, 어린 시절부터 보니는 외삼촌과 각별한 정을 쌓아 왔다.그런 외삼촌이 갑자기 찾아왔다가 몇 마디 말만 나누고 사라져 버리자 문득 보니는 트럭을 몰고 고향으로 향한다. 막상 고향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와 외삼촌이 운영하던 식당은 문을 닫고 물건들을 정리하는 참이었다. 그리고 외삼촌은 이미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르기 직전이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코로나 상황에서 장사가 어려워져 은행 빚만 쌓인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핑계로 보니와 가까이 하는 것도 어색해 할 만큼 데면데면하게 대하다 보니 트럭에 아버지를 태우고 길을 나섰던 보니는 홧김에 아버지를 도로 한가운데서 내리라고 하고서는 도시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하필 코로나로 봉쇄령이 내려 도로가 통제된 상황이라 어디 갈 곳도 없는 보니는 셔터가 내려진 가게 앞에 트럭을 세우고 잠이 든다. 이렇게 틀어진 보니에게 외삼촌이 찾아오고, 보니를 절로 이끈다. 그렇게 꿈속인 듯 환상인 듯 헤매던 보니는 엄마가 배고파 걸신이 든 아귀가 된 것을 알게 된다. 엄마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보니도, 절을 지키는 스님도, 아버지도 각각 중양절을 맞이하게 된다.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영화 안에서 갈등의 고비마다 엄마가 죽었던 어린 날 중원절 축제에서 보았던 목련존자 인형극이 실마리처럼 펼쳐진다. 

〈우란분경〉을 보면 부처님의 10대 제자인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아귀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아귀지옥에서 구해내고자 음식을 준비하여 가지고 가서 어머니께 올렸으나 어머니가 생전에 지은 죄업이 너무도 두터웠기에 음식은 어머니의 입에닿자마자 뜨거운 불길로 변해 버렸기에 목련존자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간청하며 어머니의 영혼을 구제할방법을 여쭈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르시기를 어머니의 죄의 뿌리가 깊어목련존자 혼자의 힘으로는 구제할 수 없으니 음력 7월 15일 하안거가 끝나는 날에여러 곳에서많은 스님들이 모였을 때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을 올리면 불보살과 여러 스님들의 위신력으로 어머님께서 해탈할 수 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고, 이를 따라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구원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 우란분절인 백중날에 성현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면 조상의 영가들이 구원받아 지옥을 벗어날 수 있고, 살아있는 부모의 여생이 행복하게 되며, 이승을 떠난 부모는 좋은 국토에 태어나서 무량한 복락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 인형극은 대중적인 불교 설화 가운데 하나다.

〈걸신포차〉는 이렇게 오랜 목련존자 이야기를 씨줄로 삼아 현대를 사는 청년들의 부모와의 불화, 말레이시아의 여러 민족 가운데 불교문화를 뿌리로 하는 중화권 지역의 특성, 코로나 상황에서 거리두기가 아니라 오히려 이해와 화해로 나아갈 계기를 만들어가는 희망적 대중의 발원을 영화에 담고 있다. 

이 환상적인 영화가 이번 수상을 계기로 영화제에서뿐 아니라 일반 대중이 쉽게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그리고 곧 다가올 우란분절에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서처럼 부모자식 사이에 소통하고, 돌아가신 이들을 기쁜 마음으로 기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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