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암 20년 주석 중인 ‘산골 노승’ 
향봉 스님 전하는 ‘사유의 궤적’들
담백하며 맛깔스런 문장에 매료돼
흔치 않은 글맛에 가슴이 따뜻해져

향봉 지음 / 불광출판사 / 1만7000원
향봉 지음 / 불광출판사 / 1만7000원

“마음을 열어 누군가와 말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군불 지피듯이 이해를 넓혀갈 수 있는 디딤돌과 버팀목이 그리운 오늘이다. 행복과 자유, 그리고 빛을 향해 떠나는 게 인생의 나그넷길이다. 그러나 빛은 짧고 어둠은 길게 허무의 그림자처럼 누워 있다. 젊어서도 늙어서도 빛과 그림자는 타는 목마름으로 외로움의 터널에 갇혀 헐떡이는 호흡처럼 더러는 흔들리고 더러는 방황하며 철이 든다.”

1980년대 베스트셀러 〈사랑하며 용서하며〉로 필명을 드날렸던 향봉 스님이 우리 앞에 다시금 ‘산골 노승의 글쓰기’를 내놓았다. 

향봉 스님은 잊힌 스님이다. 젊은 시절 한때, 세상 무서울 게 없던 시절도 있었다. 불교계 권력의 실세 역할도 해보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뒤늦게 철이 들어’ 마흔 무렵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15년간 인도와 네팔, 티베트, 중국을 떠돌며 구도행을 이어갔다. 이후 돌아와 20년째 익산 미륵산 사자암에 머무르며, 홀로 밥 지어 먹고, 글 쓰고, 산책하며 산다. 그렇게 70대 중반의 노승이 됐다.

향봉 스님의 글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담백하지만 맛깔스럽다. 유려하지는 않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그런데 순간순간 울컥해진다. 유쾌하게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며 입가에 미소가 번지다가도, 어느새 가슴이 먹먹하고 절절해진다. ‘눈물방울 두어 방울’ 적시지 않고는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흔하지 않은 글맛이다. 오랜만에 눈이 맑아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스님이 겪어온 삶의 역정과 치열한 구도기 속에서, 진리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자유인의 삶’이 드러난다. 산골 노승 향봉 스님은 말한다. 

“무엇이든 나누면 기쁘고 덜어내면 가뿐하다. 있으면 있는 대로 행복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자유롭다.”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함의 여유와 당당함의 결기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진정한 자유인의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은 향봉 스님의 ‘구도기’이자 ‘깨달음의 기록’이다. 1장은 젊은 날의 자화상, 2장은 산골 사자암의 일상, 3장은 치열한 구도행의 흔적, 4장은 확철하게 깨친 진리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향봉 스님이 이끄는 대로 웃다가 울다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한층 성장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삶의 본질적인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된다.

“나는 누구이고, 이 세상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 답을 섣불리 말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을 곁에 두고 오래도록 곱씹다 보면 답은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책 속의 밑줄 긋기

별것 아닌 것들의 소소한 행복이 나를 기쁘게 하고 들뜨게 한다. 산이 쩡쩡 울릴 만큼 바위벽의 얼음이 녹아내리면, 여전(旅錢) 한 닢 마련 없이도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남은 미역국에 밥 말아 먹으니 세상이 배 안에 담겨 부족함 없이 행복하다. 누군가 법당의 부처님 앞에 사과 한 알을 놓고 가, 그 사과로 후식까지 즐기고 있으니 이만하면 산골 늙은이의 화려한 점심을 마친 셈이다. 75p

어떤 사상과 철학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간다. 그러므로 우리네 삶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고 빛과 어둠이 뒤엉키며 종교의 신앙마저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열 명의 애인이 있어도 채울 수 없고 주머니가 빵빵해도 허기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집착하지 말 일이다. 218p

향봉 스님은… 익산 미륵산 사자암 주지. 상좌도 공양주도 없이 홀로 밥 지어 먹고, 글 쓰고, 산책한다. 백양사로 출가했고, 해인사 선방을 거쳐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부사장을 지냈다. 조계종 총무원 포교부장, 총무부장, 중앙종회 사무처장,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불교계 ‘실세’로 활동하기도 했다. 반면에 1973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서, 수필집 〈사랑하며 용서하며〉가 60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세를 떨쳤다. 〈작아지는 아이〉, 〈무엇이 이 외로움을 이기게 하는가〉, 〈일체유심조〉, 〈선문답〉 등 20여 권을 펴냈다. 20년째 사자암에 머무르며 한가로운 노승으로서 평화와 자유 누리며 살고 있다.
향봉 스님은… 익산 미륵산 사자암 주지. 상좌도 공양주도 없이 홀로 밥 지어 먹고, 글 쓰고, 산책한다. 백양사로 출가했고, 해인사 선방을 거쳐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부사장을 지냈다. 조계종 총무원 포교부장, 총무부장, 중앙종회 사무처장,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불교계 ‘실세’로 활동하기도 했다. 반면에 1973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서, 수필집 〈사랑하며 용서하며〉가 60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세를 떨쳤다. 〈작아지는 아이〉, 〈무엇이 이 외로움을 이기게 하는가〉, 〈일체유심조〉, 〈선문답〉 등 20여 권을 펴냈다. 20년째 사자암에 머무르며 한가로운 노승으로서 평화와 자유 누리며 살고 있다.

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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