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선양해온 정통 수좌
스스로를 ‘초보’라고 칭하며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격려
“인생에 ‘다했다’는 건 없어”

오늘 특별한 법문을 많이 준비했는데 양산 통도사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싹 다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말로써 법어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조계종 제15대 종정예하 중봉 성파 대종사가 지난해 3월 서울 조계사에서 종단의 신성과 법통을 상징하는 자리에 오르면서 내린 첫 법어의 시작이다. 스님은 어려운 화두나 선사의 어록 대신 찬란한 전통문화를 선양하고 복원하는 데 매진하자고 당부했다.

이처럼 성파 스님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내보인 것은 스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봉암사 태고선원 등에서 26안거를 성만한 정통 수좌이면서도 스님은 늘 전통문화와 예술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20004월 통도사 서운암에 무위선원을 개원한 이래 스님은 선농일치 정신을 선양하고 통도사에 차밭을 재건했으며, 감나무밭을 일구고 야생화를 심었다. 20여 년간 직접 도자기를 굽고 16만 도자대장경을 조성해 장경각에 봉안하기도 했다. 또 천연염색과 새로운 옻칠 기법을 개발하는 등 전통문화 계승에 늘 앞장섰다.

일이 공부고 공부가 일이라는 스님의 짧은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스님의 삶과 삶을 대하는 자세를 표현한 것으로, 이 표현 자체가 곧 책 이름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로 탄생했다. 책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가 성파 스님을 만나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설하진 않았지만 스님이 들려주는 40년간의 삶 이야기에서 왜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지, 왜 일이 곧 공부이고 공부가 곧 일인지 알 수 있는 지혜가 담겼다.

스님은 책에서 나는 출가 이후로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다.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늘 행복하다고 말한다. 일이 공부이고 공부가 일인 삶을 살아야 행복하다는 의미에서 책 제목도 성파 스님이 직접 지었다.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 대종사.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 대종사.

나는 통도사에 내 집을 갖다 놓은 후로 계속 나날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인생에서 다했다는 것은 없어요. 지금도 나는 초보라. 지금도 모르는 것뿐이고,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할 뿐입니다. 아직 안 본 것도 많고, 안 들은 것도 많고, 나날이 새로운 것들인데요.” -‘마음이 무엇인가중에서

성파 스님은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에 걸쳐 한 가지 이루기도 어려운 일들을 연달아 개척해왔다. 스님은 스스로 나는 500살 인생을 산다고 말한다. 수행에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즉 단번에 경지로 뛰어넘는 것처럼 다른 일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시간을 줄여서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다양한 장르에 무모하리만치 용감하게 뛰어들 수 있었던 비결로는 콩깍지론을 이야기한다.

꽃이 떨어지면 바로 작은 열매가 달리는 다른 과일과 달리, 콩은 꽃이 떨어지고 달리는 콩깍지 속에 콩알이 없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콩알이 생기고 커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할 때 주춤하거나 겁먹지 말고 우선 계획을 짜놓고 안을 채우라는 말이다.

무소유를 해야 훌륭한 스님이 된다. 그런 말은 내가 일찍부터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정반대라. 나는 욕심이 대적이다. 무소유와는 정반대라. 욕심이 대적이다. 큰 대() , 도적 적() . 큰 도둑놈이라. () 나는 이루고자 하는 거라. 소유하고자 하는 거라. 무소유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소유하고자 하는 거라. 내 이 생이 있는 한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체가 소유라. 안 그러면 눈 감아버리지, 왜 밥을 먹고 약을 먹나. 그래서 나는 소유가 엄청 나. 남의 것도 내 거라.”
-‘무소유? 나는 욕심이 천하의 대적중에서

스님은 욕심이 대적’ ‘무소유가 아니라 삼라만상이 내 소유라고 역설적으로 말하지만 스님의 욕심은 정신적인 것이다.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욕심, 국민이 사찰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마음껏 즐기며 안식을 얻기 바라는 욕심이다. 스님이 해온 일은 과거에 사찰을 중심으로 이어졌으나 근대화 이후 사찰에서도, 민간에서도 사라진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출가자로서 도자기, 천연 염색, 옻칠 민화, 된장 등을 하는 것에 대해 외도한다는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스님은 그 일들을 행복하게 수행해왔다.

종교인들이 보면, 내려다보면서 가르치듯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는 그런 거 없어요.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따라오라는 것도 아니라. ‘나는 이렇게 일한다그뿐이라.”

스님의 말은 내가 이렇게 해봤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권유로 들린다. 모두가 스님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일과 공부를 하나로 여기는 자세로 산다면 행복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다는 의미.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스님이 시대에 건네는 화두이자 권유이며 응원이고 격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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