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역경원 〈불교성전〉서 길어 올린
금과옥조 경구, 특유 감성으로 ‘사유’
이불재 풍광과 어우러진 사유 좇으면
어느덧 작은 힐링 순간들이 찾아와

부처님 인생응원가/ 정찬주 지음/ 동국대출판문화원/ 1만5000원
부처님 인생응원가/ 정찬주 지음/ 동국대출판문화원/ 1만5000원

부처님 말씀은 불자들에게는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다. 하지만 그 경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자주의’의 함정에 빠진다. 우리는 그 말씀을 곱씹고 명상하고 사유하며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사유를 참조하며 공감하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된다. 

전남 화순 쌍봉사 인근의 작은 산당 이불재(耳佛齋)에서 자연에 깃들어 살아가는 작가 정찬주는 부처님 말씀을 바탕으로 스스로 명상하고 사유했던 결과들을 담아낸 〈부처님 인생응원가〉를 최근 발간했다. 

정찬주 작가의 명상산문집 〈부처님 인생응원가〉는 동국역경원 〈불교성전〉에서 길어 올린 주옥같은 경전 구절에 이불재를 품은 자연, 그리고 작가 특유의 담박하고 따뜻한 사유가 더해졌다. 이를 통해 〈부처님 인생응원가〉는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불재의 일상을 간접적으로나마 함께하며 잠시나마 치유의 시간을 갖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순간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펼쳐낸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복잡한 머릿속에 찰나의 청량함을 선사하는 쉼표를 던진다.

책 속 이불재의 일상은 매순간 정답고 한가롭다. 봄에는 벚꽃과 홍매화, 여름엔 수련과 노란 창포, 가을엔 배롱나무 붉은 꽃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감나무에 열린 감을 따고 벼 이삭 익어가는 향기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다. 겨울엔 부쩍 손님의 발길이 잦다. 밤새 내린 눈을 대나무비로 쓸다 보면 풍경소리와 함께 반가운 얼굴이 사립문 너머에 닿는다.

정찬주 작가.
정찬주 작가.

정 작가는 책을 일컬어 “남도산중 이불재에서 생활하면서 사유한 것들을 부처님 말씀으로 가져와 조견(照見)해 보고 내 나름대로 스스로 갈무리한 글”이라 소개했다. 이불재 마당을 거닐고 사립문을 여닫는 일상에 부처님 가르침을 담아냈고, 계절의 변화를 보고 만지고 들으며 찰나의 생각을 경구에 녹였다. 

그리운 이와 문자와 서신으로 안부를 나누는 순간에도 부처님 법문이 함께 했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그저 소소하지만은 않다. 〈불교성전〉에서 찾아낸 부처님 가르침에 정찬주 작가 특유의 사유가 더해져, 찰나의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인생응원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기준으로 4부로 구성됐다. 〈불교성전〉에서 추려낸 구절들은 ‘부처님 말씀과 침묵’으로 인용했고, 앞뒤로 ‘마중물 생각’과 ‘갈무리 생각’을 담았다.

구절을 ‘부처님 말씀과 침묵’으로 표현한 이유에 대해 정 작가는 “내가 느낀 바를 비추어 본 거울 같은 부처님 말씀들”이라며 “굳이 말씀과 침묵이라고 한 까닭은 말씀 너머 침묵의 의미까지 헤아려보라는 주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중물 생각’은 작가가 이불재에서 날마다 맞닥뜨리는 유·무정물을 보고 느낀 바를 메모해 둔 글이며, ‘갈무리 생각’은 부처님 말씀에 비추어 본 내 사유를 소소한 일상에 녹여 낸 생각들이다.

“누구나 다 현실존재로서 각자의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 터. 그런데 때로는 그 일상이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기 마련. 그럴 때 부처님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묵묵히 비추어보면 위로받고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갖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펴내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그러한 소망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작가의 말

작가의 산방 이불재의 다른 명칭은 ‘무염산방(無染山房)’이다. 이는 정찬주 작가의 영원한 스승 법정 스님이 내려준 명칭이다. 

〈부처님 인생응원가〉에는 작가가 이불재에서 체득한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無染)’ 깨달음도 담겼다. 매순간 어딘가에 휩쓸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염’의 순간이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속엔 그 ‘무염’의 이치가 있다. 

책 속의 밑줄 긋기

“수련 꽃은 어린아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는 듯 하다. 함박꽃은 50대 농부 부부가 논에 모를 심고 나서 웃는 모습이다. 자주달개비 꽃은 어린 여중생들이 교복을 입고 웃으면서 재잘거리고 있는 듯하다. 노란 창포 꽃은 저물녘마다 범종을 치는 스님의 소박한 미소 같다. 나는 기어코 뒤뜰에 핀 장미꽃 두어 송이를 화병에 꽂고서 웃는다. 얼마 전에 입적한 틱낫한 스님께서는 미소 짓는 순간에는 누구라도 부처님이 된다고 말했다. 부처님은 사랑도 미움도 초월한 꽃과 같은 분이 아닐 수 없다.”
-여름,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좀 불행한 일이다. 거기에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아집의 감옥을 경계해야 한다. 모르고 있는 것들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겸손하게 침묵할 때 세상은 비로소 입을 연다.”
-여름, ‘태산목 꽃그늘 아래서’

“이래저래 시간은 흐르고 옥잠화는 또 지고 말겠지. 무심히 피고 지는 옥잠화야말로 나에게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문 〈금강경〉으로는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이고 산스끄리뜨 금강경으로는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을 내라’라는 뜻이다. 설산의 눈처럼 깨끗한 옥잠화가 무심히 피고 지듯 아무리 좋은 무엇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했다는 생각에 머물지 말아야만 되지 않을까 싶다.”
-가을, ‘자비심이 곧 여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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