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 발달로 생활 안락해졌지만
그로 인한 환경파괴, 기후위기 초래
배달용기, 비닐봉지 등 쓰레기 양산
버리는 게 아니라 숨기는 것에 불과

보살은 원인, 중생은 결과 두려워 해
기후위기라는 결과 아닌 원인 살펴야
현 상황 만든 것은 자신임을 인지해야
지구의 고통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온다 

장마를 앞두고 연일 뉴스에서 “이번 장마는 역대급으로 비가 많이 올 것이다”, “7월 한 달은 3일을 빼고 비가 올 것이다”라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얼마 전 괌을 강타한 태풍이 돌연 경로를 일본으로 바꿔 또다시 큰 피해를 입혔다. 이처럼 올해도 장마와 태풍 등 기후문제에 관한 불안한 뉴스가 벌써부터 이어지고 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며 우리의 모든 생활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하고 편리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편리함을 맛본 인류는 그보다 더 편하기를 원하고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특별한 날에 식사준비의 수고를 줄이기 위해 온 가족이 외식을 나가 추억을 쌓았으나, 경제가 발달하며 월급날이 되면 으레 아버지가 사온 통닭으로 기억되는 집 안에서의 특식으로 변모된다. 그러다가 폭발적인 생활편의의 발달과 함께 집 안의 구성원이 줄어들고 식사를 차리는 것조차 번거로워지며 배달음식이라는 것이 정착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식사문화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당연히 예측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 변화 속에는 큰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쓰레기 문제다. 과거에는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식사의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배달앱으로 음식을 시키고 다 먹고 나면 비닐봉지에 일회용 식기를 담아 버린다. 즉 치우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버린다는 개념은 그저 지금 내 앞에서만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사실은 다른 곳으로 치우는 것이다. 과연 어디로 치우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한국에 살지만 더 확장해서 보면 지구에 산다. 다시 말해 그 쓰레기들을 치울 곳이 내 주변을 떠난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쓰레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날이 점차 더워짐에 따라 나만 시원하면 된다는 생각에 오후부터는 모든 집과 회사에서 냉방 기구를 사용하고,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기 위해 가까운 거리도 꼭 차로 다니는 모습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 곳곳에는 이 편리함이라는 것에 의해 자신만을 생각한 무의식적인 이기주의가 정착해버린 것이다.

‘보살외인 중생외과(菩薩畏因 衆生畏果)’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있다.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한다’는 뜻으로, 지금 우리가 하는 걱정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무분별적으로 행동했던 것들이 이제 우리 앞에 결과가 되어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매년 더 큰 걱정을 하며 그 순간만을 모면하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이 지구에서 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구에 사는 생명이 우리 인간만이 아니며, 또한 우리만이 지구에서 사는 마지막 인간인 것도 아니다. 그저 시절인연으로 이 시기에 우리가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어그러진 지구의 자연환경과 그에 따른 기후문제는 어쩔 수 없다. 우리가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그 극복책을 강구해야 하는 건 변함없지만, 이제부터는 이러한 문제를 유발한 원인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알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지구가 오염되어 아프고 고통스러워한다면, 그 아픔과 고통은 고스란히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만 지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한다면 내일은 늦는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종이컵의 사용을 줄이고, 에어컨 대신 창문을 열며, 배달박스의 비닐테이프를 떼어내는 작은 수고로움을 실천한다면, 반드시 내일의 우리에게 보다 안락하고 쾌적한 삶의 터전을 스스로 마련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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