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년 전 조성…고미술 경매서 발견
지역 고미술상 인수…진고지에 반환

돌아온 신장상을 설명하는 호쥬 스님. 사진출처=오이타 신문
돌아온 신장상을 설명하는 호쥬 스님. 사진출처=오이타 신문

일본 큐슈섬의 동북부였던 분고(豊後)지역에서 조성되어 어느샌가 유출되었던 신장상이 인터넷 고미술 경매를 계기로 본래 봉안됐던 지역을 귀향했다. 6월 2일,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우여곡절 끝에 귀향한 신장상에 대해 보도했다.

현대의 오이타현에 해당하는 과거 분고 지역에 복수로 존재했다고 전하는 진고지(神護寺). 현재는 단 1개소만이 그 사명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하순 오이타(大分)시에 소재한 진고지 측에 타 현의 미술계 인사의 제보가 들어왔다. 제보에는 진고지의 것으로 보이는 신장상이 인터넷 옥션에 출품되어 있다는 것. 사찰측은 제보를 받은 즉시 확인에 나섰다.

진고지의 주지 호쥬 노리타카 스님은 “신장상의 좌대 뒷면을 촬영한 사진 속에 ‘분고 오나와군 다카다무라 진고지’라는 묵서가 있었다. 다카다무라는 현재 사찰이 소재한 인근지역의 옛 이름”이라며 신장상이 사찰과 인연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회상했다.

출품된 신장상은 약사여래불을 협시하는 12신장 중 하나인 ‘미기라대장(迷企羅大將)’. 좌대를 포함하여 높이 81cm, 무게 5kg의 목재입상으로 몸 전체에 옻칠이 올라가 있어 큰 훼손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부 붉은색으로 채색한 흔적도 남아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먹으로 추정되는 안료가 칠해져 흑색으로 보인다. 특히 눈에는 옥안(玉眼)이라 불리는 수정제 눈동자가 상감되어 있어 더욱 생생한 상호를 표현하고 있다.

신장상의 좌대 안쪽에 사찰의 이름과 함께 1549년 9월 15일이라는 날짜가 먹으로 쓰여 있어 조성시기도 가늠할 수 있다. 진고지 측은 “본 사찰은 1527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신장상의 묵서가 정확하다면 이 상은 사찰이 창건되고 나서 조성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진행된 경매에서 신장상은 히로시마에 소재한 고미술 전문 회사에 낙찰됐으나 주지스님의 연락과 설득 끝에 진고지 측에서 재구입하여 반환이 결정됐다. 회사 측은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 예경의 대상인 신장상이 원래 봉안돼있던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반환의 계기를 밝혔다.

현재 진고지의 본존은 아미타여래로 약사여래와는 관계가 없고, 사찰에 남은 자료에서도 12신장이나 약사여래상을 봉안했다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또 묵서에 쓰인 오나와군의 경우 현재 사찰 소재지의 인근지역명이나 해당 지역에는 다른 진고지라는 사찰이 현존하지 않는다. 호쥬 스님은 “과거 분고 지역에 진고지라는 사찰이 복수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존하는 이 진고지와 이 신장상이 직접적인 인연이 없을지라도, 본래 봉안됐던 지역에서 해당 사찰명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을 대표해 불상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며 불상을 환수한 의의를 전했다. 시의 문화재위원회 역시 “과거 시내에 또다른 진고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인정하기 어려우며, 이 신장상이 현존하는 진고지의 것이었는지도 불명”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호쥬 스님은“메이지 시대에는 불교를 폐지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당시 많은 불상과 사찰이 파괴되었다. 이 신장상 역시 그런 광풍에 휩쓸린 것 아닌가 추정된다”면서 “그러나 여러 어려움을 이기고 돌아온 신장상의 모습을 지역민 모두가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신장상은 보호케이스에 안치, 진고지 본당에서 대중에게 공개 중이다.

박영빈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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