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처럼 옷 깁다가 문득 佛法에 마음 열리는 것
가장 법답고 아름답게 부처님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그림=최주현 
그림=최주현 

사월초파일은 아기 싯다르타가 어머니 마야왕비에게서 태어난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날을 부처님 오신 날이라 부릅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을 굳이 ‘오신 날’이라 부르는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귀한 분이 오셨으니 서둘러 맞으러 나가야겠지요. 그런데 부처님에게는 당신을 맞이하는 화려한 연회보다 더 기쁘게 받아들이는 환영 인사법이 따로 있었습니다. 

‘무엇이 오신다는 말일까? 오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맞이하는 이 ‘나’는 무엇일까?’
수보리 존자처럼 옷을 깁다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에 사무쳐서 부처님 평소 가르침에 마음이 탁 열리는 것, 부처님 오신 날에 가장 법답고 아름답게 부처님을 맞이하는 의식입니다. 부처님,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부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제자 아난을 거느리시고 마을로 들어오셔서 탁발을 하셨는데, 어느 날부터 부처님을 뵐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나자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부재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안타까워 아나율 존자가 하늘눈으로 온 세상을 두루 살펴보다 부처님을 찾아냈습니다. 부처님은 저 위의 하늘, 그러니까 제석천의 세계인 삼십삼천(도리천)에서 지내고 계셨습니다. 룸비니 동산에서 당신을 낳고 7일 만에 세상을 떠나 천상의 신으로 태어난 생모 마야부인을 만나 법문을 들려주고 아울러 천상의 신들에게도 진리를 들려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찾았습니다. 찾았습니다. 부처님은 바로 저 삼십삼천 도리천에 계십니다.”
아나율에게서 이 소식을 들은 목련 존자가 천상으로 올라갔지요. 지상의 사람들이 얼마나 부처님을 그리워하는지 알려서 하루라도 빨리 인간 세상으로 오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천상으로 올라간 목련 존자에게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부터 7일 뒤에 상카시아국 큰 연못가로 내려가겠다.”

목련 존자는 서둘러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부처님이 오신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너도 나도 기쁨에 겨워 환호성을 질렀지요.
“부처님이 오신다! 여래께서 오신다!”
“우리 모두 7일만 참읍시다. 다시 부처님을 뵐 수가 있습니다.”

그날로부터 상카시아국 큰 연못가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나라의 왕들은 군사들까지 총동원하였습니다. 마치 나라에 외국의 국가원수가 방문하면 가장 멋진 의장대 사열을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세력을 맘껏 부리며 가장 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려 하였지요. 부처님이 오신다는데 그 누가 환영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천상에서는 하늘의 꽃을 뿌리며 분위기를 돋우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우리에게 오시는 부처님에게 올릴 소중한 공양물을 들고서 연못가에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지요. 

스님들도 저마다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부처님을 맞으러 연못가로 나아갔습니다.
누가 가장 먼저 부처님을 맞이할 것인가?

연못가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이 행운의 주인공이 누구일지도 궁금했습니다. 귀한 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사람은 전생에 헤아릴 수 없는 복을 쌓아야 그럴 수 있으리란 생각도 했지요. 

약속대로 7일째 되는 날 홀연히 연못가에 세 갈래 보석 길이 하늘로부터 지상으로까지 펼쳐졌습니다. 제석천이 부처님의 무사귀환을 위하여 천상의 신들에게 명한 것입니다. 가운데 황금 길은 부처님이 밟고 지상으로 내려오시는 길이요, 양쪽으로 은과 수정으로 만들어진 길은 부처님을 호위하는 제석천과 범천이 밟고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이어진 보석 길을 밟고 내려오시는 부처님 앞으로 사람들이 앞 다투어 나아갔고 부처님은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외로웠던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빠진 이가 한 사람 있었지요. 조금 떨어진 라자가하의 기사굴산 산기슭에서 옷을 깁고 있던 수보리 존자입니다. 부처님이 자리를 비운 석 달은 지상의 스님들에게는 안거 석 달 기간이었고, 안거를 마치면 스님들은 너나없이 손수 자신의 옷을 살펴 수선하는 것이 의무였지요.

부처님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수보리 존자는 서둘러 바느질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서 바느질을 도중에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수보리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뵈려고 하는 부처님은 과연 무엇인가? 눈 귀 코 입 몸 뜻을 지닌 존재가 부처님인가? 또 달려가서 맞이하려는 이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땅 물 불 바람의 4대로 이루어진, 덧없기 짝이 없고 그저 연기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천상에서 오신다는 저 부처님도, 맞이하려고 나아가려는 이 나도 실체가 없어 텅 빈 것인데, 이렇게 텅 빈 것이라면 과연 오는 것은 무엇이고 맞이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일까?’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일러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부처님에게 절하려거든/눈앞에 보이는 형상은/덧없다 관찰하여라.
과거 부처님들도/미래 부처님들도/현재의 부처님처럼 모두가 덧없는 것이다.
부처님에게 절하려거든/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그리고 지금 현재 이 모두가 텅 비었다고/‘나’라고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여라.”

수보리 존자는 거듭 생각했습니다. 
‘모든 법은 비고 고요하니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부처님’일까?’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수보리 존자는 깊이 허리를 숙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진실한 법의 덩어리(법신)에 귀의하리라.”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옷을 깁기 시작했습니다.(<증일아함경> 제28권)

연못가에 드리워진 세 갈래 보석 길을 밟고 내려오신 부처님은 대중에게 말씀하셨지요. “나를 진정으로 가장 먼저 맞이한 사람은 수보리이다.”

사월초파일은 아기 싯다르타가 어머니 마야왕비에게서 태어난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날을 부처님 오신 날이라 부릅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을 굳이 ‘오신 날’이라 부르는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귀한 분이 오셨으니 서둘러 맞으러 나가야겠지요. 그런데 부처님에게는 당신을 맞이하는 화려한 연회보다 더 기쁘게 받아들이는 환영 인사법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미령 불교 강사, 경전 이야기꾼
이미령 불교 강사, 경전 이야기꾼

‘무엇이 오신다는 말일까? 오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맞이하는 이 ‘나’는 무엇일까?’

수보리 존자처럼 옷을 깁다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에 사무쳐서 부처님 평소 가르침에 마음이 탁 열리는 것, 부처님오신날에 가장 법답고 아름답게 부처님을 맞이하는 의식입니다. 부처님,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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