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도 한 때 전륜성왕의 길 고민해
중생 구제 방편으로 정치 역할 인정
민주 정치 공동체 구현이 ‘정법정치’

한국 정치판서 ‘정치 공동체’ 붕괴돼
극단·배척·닫힌 정치, 판치는 상황

붓다 고민한 전륜성왕이 필요한 시대
연기의 지혜로서 민주시민이 되는 것
이 시대 전륜성왕, 행동하는 민주시민

오늘날의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해 ‘정치 공동체’가 붕괴되었다는 개탄의 소리가 매우 높다. 정치와 공동체라는 단어는 서로 짝이 될 수 없는 기름과 물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와 별반 다름이 없다. 미국 작가 맥켄(H.L. Macken)은 미국 정치인들에 대해 “선한 정치가란 정직한 도적만큼이나 생각할 수 없는 표현”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이를 어쩌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치를 폐기하지 않고 용인하고, 나아가 정치에 흥미를 느끼고 정치가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은 정치는 공동생활의 불가피한 조건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욕망, 이익 그리고 가치관을 실현할 기회의 장을 마련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라고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도 한때 정치인의 길을 고뇌했다. 초기 경전 <쌍윳다니카아>의 내용을 인용해 본다.
 
어느 때 붓다는 코살라국 설산 지방 어느 숲속 암자에 머물러 계셨다. 붓다는 혼자 조용히 명상하고 계실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왕이 되어 남을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도 없고, 남의 것을 빼앗거나 빼앗김을 당하는 일도 없고, 남을 슬프게 할 일도 없고 스스로 슬플 일도 없도록, 한결같이 법대로 행하고 법이 아닌 것은 행하지 않는 통치를 하면 어떨까?”

붓다가 이런 생각을 하자 악마는 기뻐하며 전륜성왕이 되기를 유혹했지만, 사람의 욕심을 다 채우기 어렵다며 그 유혹을 뿌리쳤다. 자비와 비폭력에 대한 붓다의 마음에는 정치 방편에 대한 고뇌가 서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붓다는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는 방편으로 정치의 역할을 크게 인정하였다. 또한 정치권력의 타락과 통치자의 위험성을 잘 파악하고 여러 왕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다. 

붓다는 중생구제의 길에 전륜성왕의 역할, 바로 정치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전륜성왕은 붓다 탄생 시 이미 깊은 인연을 맺었고 수많은 불전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불교가 현세 지향적, 실천 지향적 성격이 강한 종교라는 것을 나타낸다. 붓다는 유위법(有爲法)으로서 세속제(世俗諦)로서 정치의 역할을 중시했다. 이것은 바로 민주적인 정치공동체를 구현하는 정법정치에서 구현되는 것일 것이다. 정법 정치의 핵심은 연기론적 세계관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여기서 중도의 정치, 관용의 정치, 열린 정치가 나온다. 지금 한국 정치는 극단의 정치, 배척의 정치, 닫힌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연기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어둠 속에서 밝음을 보고, 선을 보면서 악을 본다. 극단을 피하고 집착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양극단을 동시에 함께 보는 것이다. 즉, ‘잠자리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순수한 상대성에서 진정한 절대성이 나온다. 이러한 지혜에서 전륜성왕의 길이 나올 것이다. 
 

붓다가 주저한 전륜성왕의 길을 이제 한국 불자가 실천해 보자. 그것은 연기의 지혜로서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제 전륜성왕은 어떤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깨어남으로 행동하는 민주시민이다. 사족 하나. 한국정치 마당의 용어가 하도 심해 <천수경>의 ‘정구업진언’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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