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2월 15일은 부처님 열반재일
열반, 죽음 아닌 번뇌가 없는 상태
‘대반열반경’엔 인간적 풍모 보여줘
  
마지막 공양 올린 춘다를 위한 변호
“최후 보시한 공덕은 매우 수승하다”
만찬서 유다 저주한 예수와는 차별돼
마지막 순간까지 중생 연민이 담겨 

음력 2월 15일은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재일이다. ‘열반’은 죽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불어 끈다(吹滅)’는 뜻으로 번뇌의 불길이 꺼진 고요한 상태, 즉 최상의 경계를 말한다. 부처님의 열반 당시를 잘 묘사해놓은 경전이 있는데, 〈대반열반경〉이다. 〈대반열반경〉은 장아함 2권∼4권에 해당하며, 부처님께서 만년에 열반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영취산을 출발해 코티 마을∼나다카 마을∼상업도시 베살리∼입멸 장소인 쿠시나가라에 도착해 열반할 때까지의 여정을 그대로 묘사한 경전이다. 이 경에서 부처님의 인간적인 풍모가 드러나 있는데, 내용을 보기로 하자.  

부처님께서 베살리를 지나면서 아침 일찍, 발우를 들고 마을로 탁발하러 나갔다. 베살리 마을을 돌며 탁발 공양을 마치고 마을을 나오면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부처님께서 마치 코끼리가 사물을 바라보듯 지긋이 베살리 마을을 돌아보며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나는 늙고, 몸이 많이 쇠하였다. 아난아! 나의 육신은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의해 매여 있는 것처럼 겨우 움직인다.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할지라도 이별하고 헤어지는 때가 있느니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다. 머지않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다.” 

이렇게 쿠시나가라로 향하는 과정 중에 파마 마을에 도착한다. 부처님께서 마을의 대장장이 춘다의 소유지인 망고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춘다가 부처님께 공양청을 하여 제자들과 함께 춘다의 집으로 갔다. 춘다는 부처님께 스카라 맛다바라는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드신 후, 피가 섞인 설사를 계속하셨다. 병이 조금 차도가 있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쿠시나가라로 향해 출발하자고 말씀하셨다.

이후 부처님과 제자들이 쿠시나가라로 향해 가는 동안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을 모이게 한 뒤 교단을 염려하고, 마지막 진리를 설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공양을 올린 춘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여러 비구들이 ‘춘다가 올린 공양을 드시고 부처님께서 입멸했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아난아, 춘다에게 이런 비난이 쏟아진다면, 춘다에게 이렇게 위로하여라. ‘춘다여, 조금도 후회할 것 없소. 당신이 올린 최후 공양을 드신 뒤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는 것은 당신에게 경사스러운 일이오. 부처님께 최후로 보시한 공덕은 다른 어느 때 공양보다도 매우 수승한 공덕이오. 그 공덕과 복덕이란 장수하며, 다음 세상에 좋은 세계에 태어나고, 안락을 누리며, 명예를 얻고, 천계에 태어날 수 있는 복덕이다.’ 아난아, 이렇게 춘다를 위로하고 변호해 주어라.” 

아무리 위대한 성자이지만, 당신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에게 쏟아질 비난까지 염려하고 있는 분이 부처님이시다. 미국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1921∼1980)은 부처님의 최후 식사와 예수의 최후 만찬을 이렇게 비교하고 있다. 

“부처님은 대장장이 춘다가 만들어 준 음식을 맛있다며 고마워 하셨다. 또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춘다의 공양으로 인해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춘다를 비난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12인의 제자 중 한명인 유다를 저주하며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분명히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마태복음〉)’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에서도 아버지가 자식 걱정하듯 모든 중생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 다른 종교는 교주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지만, 불교는 부처님 열반을 기준(佛紀)으로 하는 이유가 바로 최고의 완성, 그리고 최상의 인격을 갖춘 분이기 때문이다. 바로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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