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딩어 교수 “행복은 ‘관계’에 있다”
부, 명예, 학벌 추구는 불행 가져와

믿지 않는 정보 외면하는 ‘확증편향’
우리 사회 ‘관계의 황폐화’ 가속시켜
세계 속 폭력과 갈등 확증편향 원인

붓다 강조한 ‘연기’, 현 시대에 필요
분별심과 집착 경계… 열린사회 지향

계묘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 언론에서는 지구촌 삶의 문제와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해에 대한 희망을 그려 보고자 하는 바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소재로 선택한 것은 ‘행복’과 ‘확증 편향’에 관한 특집인데 붓다 가르침의 가치를 새삼 확인해 주는 내용이다.

윌딩어(R.Waldinger) 하버드 의대 교수는 85년간 하버드 학생과 빈민 청년, 그리고 그 자손 2000여 명의 삶을 추적해 “행복은 부, 명예, 학벌이 아닌 ‘관계’에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위의 내용은 규범적인 교훈 비슷하게 익히 들어온 내용이다. 그래도 새삼 새로운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실제 삶은 부, 명예, 학벌의 지나친 추구로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 삶의 양식에 나타나고 있는 관계는 점점 가파르고 메말라가고 있다.

‘관계의 황폐화’가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확증 편향’이다. 확증 편향은 자신의 견해, 신념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무시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확증 편향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근현대사에 확증 편향으로 인한 인류의 비극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극단적인 이념대립과 갈등도 그러하다.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갈등은 집단적인 확증 편향으로 일어나는 것이 태반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이번 조사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확증 편향증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 사회운동 영역에서 일찍이 거론되어 온 것이지만 그 실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의 황폐화는 개인의 행복을 훼손시키고, 집단 간의 갈등과 폭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관계의 황폐화 현상을 보면서 붓다의 지혜가 가슴에 다가온다. 붓다 지혜의 핵심인 연기론적 세계관은 모든 존재가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이다. 너와 나 그리고 모든 그들은 상호 의존해 존재하고 또한 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구조는 이원적으로 사물을 보는 데 익숙하다. 주체와 객체, 나와 너, 선과 악 등 이분법적 사유 틀은 우리의 혼란을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연기론은 이러한 이분법적 요소들을 통합하여 연기적 질서를 제공한다. 연기론은 상대주의적 존재론으로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 무조건적인 것을 거부한다. 따라서 분별심과 그에 대한 집착을 경계한다. 그만큼 열린 마음과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레비나스(E.Levinas)가 주창한 ‘타자 윤리’는 바로 연기론적 사유 틀에서 나온 것이다. 타자 윤리는 인간을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관념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엉키고 느끼며, 서로 나누고 고통받는 몸적 존재로 이해한다. 
 

따라서 인간의 윤리는 관념적 선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배려하는 실천을 향한다. 자아론적 윤리에서 벗어나 관계 중심의 윤리, 감성적 윤리로의 길을 열었다. 서로가 인드라망의 그물코에 걸려 사는 삶의 길에 타자 윤리가 있다. 

이러한 타자 윤리는 타자뿐만 제대로 자기를 위한 것이다.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자비행이다. 붓다 가르침의 최종 목표는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중생의 행복이다. 지구촌과 우리 사회의 행복을 위해 붓다의 가르침을 펼칠 방편은 무엇인가. 모든 불자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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