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어느 날 문득 2

종정은 그날 꿈을 꾸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동굴이 분명했다. 사내 둘이 보였다. 천둥이 치는가 했더니 벼락이 사내들을 향해 쏟아졌다. 사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허공을 날던 검은 석관 하나가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그대로 푸른 천에 덮였다.

잠시 후 한 사내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눈빛이 형형하고 깡마른 청년이었다. 헌 누더기를 걸쳤으나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뒤쪽으로 사원이 솟아올랐다. 장엄할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한 사원이었다. 하늘에서 낙엽이 떨어져 그 사원에 쌓이고 있었다.

석관을 잡고 울고 있던 초로의 사내가 눈물이 흥건하게 번진 눈을 들어 동굴로 젊은 사내를 건너다보았다. 그들 사이에 석관이 놓여 있었다.

난타(難陀)다!

종정은 젊은 사내를 건너다보고 선 초로의 사내를 보며 꿈속에서 그렇게 부르짖었다. 난타라고 한다면 석가모니 붓다의 이복동생이다. 종정이 그를 본 일이 없고 보면 왜 그가 난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며칠 후, 스님 둘이 발소리를 죽이며 종정실로 다가갔다. 그들은 종정을 보좌하는 비구들이었다.

종정실로 들어간 그들은 종정에게 밀랍으로 봉인된 종이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인도 뉴델리 천추사원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날아온 소식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해 메일로 전문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고집스럽게도 그런 편리함은 이곳에서 용인되지 않았다. 여전히 중요한 문건은 예전의 묵은 모습 그대로 전해졌다.

종정이 봉인을 확인한 후 촛불을 가져오게 하여 밀랍을 녹여 편지를 뜯었다.

속에는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던 아디카야 검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고 쓰여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남기신 성물이 사라졌다고?

종정은 이상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업무 인수를 마쳐야 했으므로 자신의 거처로 갔다.

아랫사람들로부터 업무를 인수하면서 종정은 이상한 편지들을 발견했다. 역시 밀랍으로 봉인되었다 뜯긴 것들이었는데 인도 천추 사원으로부터 전해진 것들이었다.

종정은 편지들을 읽었다.

그 속에는 성물로 인하여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죽어 나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신문 기사와 함께 동봉된 편지도 있었다.

인도 뉴델리안 신문사의 기자 오오스마라는 사람이 쓴 기사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그 성물을 탐내어 접근했다가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증언을 기사화한 것이었는데 증언한 이들은 하나 같이 보았다고 했다. 성물 가까이 다가들자 성물을 지키듯이 선 한 사내의 모습을. 초로의 사내가 무서운 눈길로 석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종정은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꿈에 보았던 난타의 모습을 떠올렸다.

꿈을 꾸던 날 종정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잠이 들었었고 앞서 꿈에 본 난타를 다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사내의 모습이 점차 변하였다. 사내의 모습이 점점 젊어져 청년으로 변하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니 한때 자신의 근영을 그린 바 있는 이지안 금어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지만, 이지안 금어가 자신의 근영을 그릴 때 데리고 왔던 청년이 틀림없었다.

그가 왜?

다음 날 종정은 아랫사람을 시켜 교계 신문사 국장을 불렀다. 그는 국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석가모니 붓다께서 남기신 성물이 사라졌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인도로 가 취재해봄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종정은 석가모니 붓다께서 남기신 성물을 조사하다 보면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종정실을 나온 국장은 그 사실을 바로 사장에게 보고했고 곧바로 이주석 기자를 불렀다.

3

글을 읽고 난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 국장님!

국장도 비시시 웃었다.

-지금 소설 쓰십니까?

-글쎄, 이 기자가 그렇게 긁어 놓았다니까.

-그 애 원래 그런데 관심이 많은 애 아닙니까. 윤회라던가 뭐 그런 것에... 그러다 그런 소릴 들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해.

국장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해요?

-종정 예하께서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며 도대체 그 성물이 어디로 사라져버렸느냐는 것이지. 인도 정부에서도 고개를 내젓는 마당이고...

-그럼 왈리인가 원리인가 하는 후손들은요? 그런데 정말 그런 칼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나도 들어보질 못했는데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렇잖아도 인도 정부에서 조사를 했다는데 왈리의 후손들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하고 칼이 든 석관 속은 비었더라는 것이야.

-그런데 석관에 근접하다가 보았다는 사내는 뭡니까? 난타라고 했나요? 그가 누구인가요?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이복동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네. 석존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여동생이 왕비가 되었잖아요. 내가 알기에 그녀의 아들이 이복동생일 텐데요?

-맞아. 그가 바로 난타야.

-그런데 그가 왜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 종정 예하도 그렇다고 하더군. 그런 꿈을 꾸긴 했는데 성물을 지키는 꿈속의 사내가 난타라는 생각만 들었다는 것이야. 문제는 그 난타라는 초로의 사내가 한때 종정 예하의 근영을 그렸다는 이지안 금어 스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야.

나는 또 하하하고 웃었다.

-지금 꿈이 이상하다는 겁니까? 그 성물이 어떻게 되었느냐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까? 종정 예하라고 개꿈 꾸지 말라는 법이 없고 보면...?

-그러니 이상하다는 것이야.

-정말 이상한 것도 많네요. 왜 그런지 몰라. 그런 것이 미망이라는 것을 알만한 분들이...

국장이 자신이 생각해도 멋쩍은지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홰홰 내저었다.

나도 모르게 너무 말을 함부로 했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어 국장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종정 예하는 이지안 금어의 아들이 그 검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그 말 아닙니까?

국장이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참 이상하긴 이상하네요.

그러면서 나는 국장의 눈치를 살폈다.

국장이 눈을 감았다. 낭패함을 어쩌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눈을 떴다.

-문제는 종정 예하야. 이지안 금어의 아들이 거기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야.

나는 그만 또 하하 웃고 말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또 느물거리고 말았다.

-무슨 소린지 원.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망가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 우리더러 그 꿈 확인하러 가라?

-어떡하겠어. 종정 예하께서 그러시니…

기관지이다 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런 말 같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 혀를 츱 찼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하는 말이 나오려다가 꿀꺽 도로 넘어갔다.

-도대체 천추사원이 어디에 있는 절이랍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내가 물었다. 이상하지만 엇나갈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누구 명령인가. 만약 거역했다가는 어떤 조치가 들어올지 모른다. 잘못하면 국장이 신문사를 그만두거나 평기자로 강등되거나 지방으로 좌천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윗분들의 감정이 좋지 않은 마당이다. 신문 구독자가 줄어들었다며 영업국장이 하루가 멀다 하고 총무부에 드나드는 마당이다.

국장이 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뉴델리에 있는 이곳의 말사라고 해. 그곳에 가면 금원이라는 스님이 있다는데 아마 그 양반이 소문의 진상을 알아내어 전문을 보낸 모양이야. 뭐 인도에 있는 그 절 지을 때 이지안 금어가 그곳 탱화를 맡았던 모양인데 그때 아들이 따라가 있었던가 봐.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인도에서 석존이 남긴 칼이 발견되었다? 그 칼이 지금 인도 어딘가에 있다. 종정 예하께서 꿈에 석존의 이복동생인 난타를 보았고 그 사람이 이지안 금어 스님의 아들로 변하더라. 그런데 묘하게 인도의 천추사원에서 전문이 왔더라.

-맞아.

-글을 읽어보니 대충 짐작은 할 수 있겠던데 그 칼인지 검인지 있다는 데가 어디라고 했어요? 스 뭐라고 하던데...?

알고 있으면서도 억지를 부리듯 내가 물었다. 인도라는 나라. 그 나라가 그런 나라였다. 그동안 한두 번 갔다 온 곳이 아니었다. 신통력이나 불가사의한 일에 대한 낭설이 널린 곳이 그곳이었다. 그곳은 불교의 개조인 성인이 살아생전 활동한 곳이요 힌두신앙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낭설도 저들 마음대로 만들어내고 근거를 들이대고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떠도는 곳이 그곳이었다. 헛소문을 쫓아 한두 번 속아온 것이 아니었다. 죽을 고생을 하며 찾아가 보면 헛소문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국장은 또 엉뚱한 헛소리에 휘둘리고 있었다.

-스리나가르.

국장이 속을 감추는 듯한 말투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곳은 뉴델리가 아니잖아요?

내가 볼멘소리를 내었다.

-맞아. 자세한 건 모르겠고...

-그곳 어디라고 해요?

-적어 두긴 했는데, 암튼 그 어디쯤이라고 해.

-그 성물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라고 했나요? 왈리?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물었다.

-맞아. 처음엔 왈리라는 사람이 보관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보물을 찾아내는 이들이 다시 찾아내었다고 하더군. 테르텐이라고 하던가?

-테르텐? 들어본 것 같네요.

-예로부터 성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동시대에 받아들여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면 비밀한 장소에 감추어 두는 일이 있었다고 해. 이를 비장문헌(秘藏文獻)이라고 한다는데 이 문헌은 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 어떤 종교든 성현들은 그 시대에 이해될 수 없는 것이면 오히려 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동굴이나 바다 밑, 사원, 호수 같은 곳에 숨겼다고 하니까. 심지어 인간의 의식 속에 숨긴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소위 사자의 서라고 일컬어지는 바르도 쉐돌이 그 좋은 예라고 하더군. 그 문헌은 석존에 의해 파드마삼바바의 의식 속에 숨겨졌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파드마삼바바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자신의 의식 속에서 그것을 끄집어내었다는 것이야. 그는 그것을 문헌으로 남겼고 현대에 이르러 위대한 테르텐 릑진 카르마 링파에 의해 티베트 북부지방의 한 동굴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야. 그 문헌을 찾아낸 이가 곧 파드마삼바바의 후생이었다는데…〈계속〉

▶한줄요약

종정 스님은 인도 뉴델리 천추사원으로부터 석가모니부처님이 남기신 성물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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